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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정보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손해배상(기)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판시사항】

[1] 국가배상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에 적용되는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인
민법 제766조 제1항에 정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의 의미와 그 판단 방법

[2]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 기준
[3] 이른바 ‘거창사건’으로 인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4]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른 배상청구권을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한 경우,
구 예산회계법 제96조에 의하여 시효소멸하는지 여부(적극)

[5] 국회의 입법행위 또는 입법부작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위법행위에 해당하는 경우

[6] 국회에서 법률안을 심의하거나 의결한 사정만으로 신뢰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1]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 규정에 따른 배상책임을 묻는 사건에 대하여는
같은 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단기소멸시효제도가 적용되는 것인바, 여기서 가해자를 안다는 것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가해 공무원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공법상 근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한 일반인이 당해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행해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족한 사실까지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라 함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하고,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 있어서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2]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앞서 본 바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또한 위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3] 1951년 공비토벌 등을 이유로 국군병력이 작전수행을 하던 중에 거창군 일대의 지역주민이 희생된 이른바 ‘거창사건’으로 인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4]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 규정에 따른 배상청구권은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권리로서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문 개정되었다가 2006. 10. 4. 법률 제8050호 국가재정법 부칙 제2조에 의하여 폐지된 것으로서, 2006. 12. 31.까지 시행된 것) 제96조 제2항,
제1항이 적용되므로 이를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할 때에는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5]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의회민주주의하에서 국회는 다원적 의견이나 각가지 이익을 반영시킨 토론과정을 거쳐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통일적인 국가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으로서 그 과정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입법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국회의원의 입법행위는 그 입법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굳이 당해 입법을 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같은 맥락에서 국가가 일정한 사항에 관하여 헌법에 의하여 부과되는 구체적인 입법의무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입법에 필요한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고의 또는 과실로 이러한 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등 극히 예외적인 사정이 인정되는 사안에 한정하여 국가배상법 소정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으며, 위와 같은 구체적인 입법의무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애당초 부작위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

[6]
헌법 제53조에 따라서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을 대통령이 공포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서 법률이 확정되면 그 규정 내용에 따라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새로운 법규가 형성될 수 있지만, 이와 같이 법률이 확정되기 전에는 기존 법규를 수정·변경하는 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없고, 다원적 의견이나 각가지 이익을 반영시킨 토론과정을 거쳐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통일적인 국가의사를 형성하는 국회에서 일정한 법률안을 심의하거나 의결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률로 확정되지 아니한 이상 국가가 이해관계자들에게 위 법률안에 관련된 사항을 약속하였다고 볼 수 없으며, 이러한 사정만으로 어떠한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참조조문】

[1]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제8조,
민법 제766조 제1항
[2]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제8조,
민법 제2조,
제766조 제1항
[3]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제8조,
민법 제2조,
제766조 제1항
[4]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제8조,
구 예산회계법(2006. 10. 4. 법률 제8050호 국가재정법 부칙 제2조로 폐지) 제96조(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 참조)
[5]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6]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헌법 제53조

【참조판례】

[1]
대법원 1989. 11. 14. 선고 88다카32500 판결(공1990, 31),
대법원 1999. 9. 3. 선고 98다30735 판결,
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0다22249 판결(공2002하, 1777),
대법원 2008. 1. 18. 선고 2005다65579 판결(공2008상, 225) / [2]
대법원 1999. 9. 17. 선고 99다21257 판결,
대법원 2001. 7. 10. 선고 98다38364 판결(공2001하, 1815),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공2002하, 2849),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공2005상, 950),
대법원 2007. 3. 15. 선고 2006다12701 판결(공2007상, 534) / [4]
대법원 1996. 12. 19. 선고 94다22927 전원합의체 판결(공1997상, 75),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57856 판결(공2001상, 1202),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6다70929, 70936 판결 / [5]
대법원 1997. 6. 13. 선고 96다56115 판결(공1997하, 2157)


【전문】

【원고(선정당사자), 상고인】

【피고, 피상고인】

대한민국

【원심판결】

부산고법 2004. 5. 7. 선고 2001나15255 판결

【주 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선정당사자)들이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 경과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거창사건 자체로 인한 희생자들 및 유족들의 위자료 청구 부분에 관하여(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 규정에 따른 배상책임을 묻는 사건에 대하여는 같은 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단기소멸시효제도가 적용되는 것인바, 여기서 가해자를 안다는 것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가해 공무원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의 간에 공법상 근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한 일반인이 당해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행해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족한 사실까지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고 ( 대법원 1989. 11. 14. 선고 88다카32500 판결, 대법원 1999. 3. 23. 선고 98다30285 판결 등 참조),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라 함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며,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 있어서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 대법원 1999. 9. 3. 선고 98다30735 판결, 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0다22249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1997. 12. 12. 선고 95다29895 판결,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그러나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대법원 1999. 9. 17. 선고 99다21257 판결, 대법원 2001. 7. 10. 선고 98다38364 판결 등 참조),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앞서 본 바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위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원심이 그 채택 증거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1951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지리산 공비들이 경찰 등을 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 직후에, 피고 소속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은 1951. 2. 9.부터 1951. 2. 11.까지 그 지역주민 수백 명을 사살하였다(이하 ‘거창사건’이라 한다).
(2) 헌병대가 거창사건에 대하여 수사하던 중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1951. 3. 29. 국회에서 이를 폭로하여 1951. 3. 30. 국회가 내무부 등과 합동으로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였는데, 신성모 국방장관과 경남지구계엄사령부 민사부장 소외 1 대령 등은 현장을 은폐한 다음 위 9연대 수색소대로 하여금 공비로 위장하여 총격을 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회조사단의 현장조사를 저지할 것을 지시하였고, 이러한 방해로 인하여 국회조사단은 1951. 4. 7. 그 현장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철수하였다.
(3) 위와 같은 국방장관 등의 진상 은폐 기도에 따라, 정부는 1951. 4. 24. 거창사건 희생자 187명은 모두 공비들과 통모하였다는 이유로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당하였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4) 그러나 신성모 국방장관은 그 직후 해임되었고, 국회는 1951. 5. 14. 거창사건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하였으며, 거창사건에 관한 재수사를 토대로 열린 중앙고등군법회의는 1951. 7. 27. 형사재판을 개시한 다음 1951. 12. 16. 관련 책임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여 무기징역 등을 선고하였다.
(5) 일부 국회의원과 유족들은 1954. 음력 3. 3. 현장에 방치된 희생자들의 유골을 화장하고 박산골에 합동묘를 만들어 매장하였으며, 국회 진상조사단이 1960. 5.경 다시 현지조사를 한 다음, 유족들은 1960. 11. 18. 위 합동묘소 위령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6) 그런데 이른바 5·16 군사혁명정부는 1961. 5. 18.경 원고 1 등을 구속하고, 1962. 6. 15.경 위 위령비문을 정으로 지워 땅에 파묻어 버린 다음 합동분묘의 봉분을 파헤쳤는데, 위 합동묘는 1967년경 복구되었으나,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들의 경우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말까지 그 유족이라는 이유로 공무원 등에 임용되지 못하고 거창사건의 언급에 관한 감시를 받았다.
(7)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들은 1980년 이후부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게 위령비 원상회복 및 희생자 명예회복과 배상을 진정·호소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고, 1989. 10. 17. 거창사건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발의되었으나 1992. 5. 29. 제13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8) 그 후 국회는 1995. 12. 18.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거창특별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는데, 거창특별법에 의하면 ‘거창사건 등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사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의결하고( 제3조), 유족의 합동묘역관리사업이 추진되는 경우에 정부가 그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제8조), 희생자나 유족들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정부는 거창특별법 제8조에 따라 거창사건 합동묘역조성사업에 총 예산 174억 5,600만 원을 책정하여 1999년부터 재정지원을 하였고, 위 합동묘역조성사업은 정부의 재정지원하에 2003. 6.경 완공되었다.
(9) 한편, 거창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하여 보상금 등을 지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거창특별법 개정법률안이 2004. 3. 2.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으나,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2004. 3. 23.(원심판결에는 2004. 3. 25.로 기재되어 있으나 오기로 보인다) 전쟁 중에 일어난 민간인 희생의 보상에 대해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폭 넓게 형성되지 않았고, 거창사건에 대한 보상이 향후 국가재정에 커다란 부담으로 적용할 것이 예상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위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다.  위 청구 부분의 주장요지는 피고 예하의 군인들의 불법행위로 거창사건 희생자들이 사망함으로 인하여 발생한 희생자 본인들과 그 유족인 원고(선정당사자)들 및 선정자들(이하 이를 합하여 ‘원고들’이라고 한다)의 정신적 고통에 관하여 피고가 국가배상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고 국가 소속 행정부의 국방장관 등이 거창사건의 발생 직후에 그 진상을 은폐하고자 시도한 적이 있으나, 그 후 피고 소속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1951. 5. 14. 거창사건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하였고, 중앙고등군법회의가 거창사건의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을 진행하여 1951. 12. 16. 유죄판결을 선고한 점 등 제반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은 적어도 위 유죄판결이 선고된 시점에는 거창사건의 손해와 가해자 및 그 가해행위가 불법행위인 점 등을 모두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로부터 3년이 도과하여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될 때까지( 의용민법 제724조 전문 및 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되고 1960. 1. 1. 시행된 민법 부칙 제8조 등 참조) 피고 국가가 원고들의 권리 행사나 시효의 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그런 조치가 불필요하다가 믿게 할 만한 언동을 하였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거나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상당한 사정이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또한, 우리 법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민간인이 헌법 및 국가배상법 등에 근거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하여 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계속 유지하여 왔는데, 비록 거창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중대하고 피해자의 범위도 넓어 상당한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거창사건 희생자들의 신원(伸寃)을 위한 진상규명이나 피해배상을 위하여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규정한 헌법상 명시적인 입법위임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렇다면 거창사건 희생자들의 사망에 관하여 현행 국가배상법의 규정보다 국가의 배상책임을 확대한다든가 혹은 이에 관하여 국가로 하여금 희생자 유족들에게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는 취지의 특별법을 제정할 것인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헌법상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하고 법률안을 의결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국회( 헌법 제49조, 제53조, 제54조 등 참조)와 집행기관으로서 국가 예산을 편성·집행하고 법률안을 공포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 및 행정부( 헌법 제53조, 제54조, 제89조 등 참조)가 국민 전체의 여론과 국가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재량의 범위 내에서 정책적으로 판단할 문제로 보아야 하고, 6·25 사변을 전후하여 경북 문경이나 전남 함평 등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유사사건에 관한 법적 규율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헌법의 해석상 거창사건에 관하여 위와 같은 특별법을 추가로 제정해야 하는 구체적인 입법의무가 국가에게 부과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헌법재판소 1996. 6. 13. 선고 93헌마276 결정, 헌법재판소 2003. 5. 15. 선고 2000헌마192, 508(병합) 결정 등 참조}. 한편, 거창특별법의 경우 사망자 및 유족들의 명예회복 등을 목적으로 제정된 것일 뿐 관련자들에 대한 금전지급 등에 관한 규정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고, 현행 국가배상법과는 별개의 입법정책적 차원에서 거창사건에 관하여 국가로 하여금 일정한 보상금 등을 지급하도록 규정한 거창특별법 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적이 있다든가 혹은 국가에게 일정한 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심의된 적이 있다는 점 등의 사정만으로는 원고들의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청구권의 시효가 완성된 이후에 피고가 그 시효의 이익을 포기하거나 그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으며(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법적 성격에 관한 대법원 1992. 12. 24. 선고 92누3335 판결 등 참조), 6·25 사변을 전후하여 발생한 다른 유사사건 희생자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볼 때 원고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
 
라.  그렇다면 국가배상법의 해석상 피고 국가가 원고들의 위 청구 부분에 대하여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현 단계에서 거창사건에 관한 국가의 후속조치는 국민 전체의 여론과 국가 재정, 유사사건의 처리문제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입법정책적 판단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입법이 선행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법원이 법리적인 문제점을 초월하여 우리 헌법상 권력분립원칙에 위배되는 판단을 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피고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인 원심판결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가배상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오해 등 재판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거창사건 이후의 상황에 대한 유족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에 관하여 
가.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 규정에 따른 배상청구권은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권리로서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문 개정되었다가 2006. 10. 4. 법률 제8050호 국가재정법 부칙 제2조에 의하여 폐지된 것으로서, 2006. 12. 31.까지 시행된 것) 제96조 제2항, 제1항이 적용되므로 이를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할 때에는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57856 판결,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6다70929(본소), 2006다70936(반소)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2다56031 판결,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원심은 그 채택 증거에 의하여 그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 국가가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말까지 원고들을 비롯한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들에 대하여 저질렀다는 불법행위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이에 관한 5년의 장기소멸시효가 이미 완성하였고, 나아가 이 사건 소제기시점인 2001. 2. 17.로부터 역산하여 그 장기소멸시효기간인 5년 이내에 피고가 거창사건에 관련하여 원고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적극적인 가해행위를 하였다는 점 등에 대하여 아무런 주장·입증이 없다는 이유로 이에 관한 원고들의 청구 부분을 모두 배척하였다.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소제기시점인 2001. 2. 17.로부터 역산하여 5년의 기간 동안 원고들에게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법률상의 장애사유 등이 존재하였다고 볼 수 없는 이 사건에서,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인 원심의 조치는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가배상법상 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오해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
 
나.  상고이유 제3점에 대하여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의회민주주의하에서 국회는 다원적 의견이나 각가지 이익을 반영시킨 토론과정을 거쳐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통일적인 국가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으로서 그 과정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입법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국회의원의 입법행위는 그 입법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굳이 당해 입법을 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위법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고 ( 대법원 1997. 6. 13. 선고 96다56115 판결 등 참조), 같은 맥락에서 국가가 일정한 사항에 관하여 헌법에 의하여 부과되는 구체적인 입법의무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입법에 필요한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고의 또는 과실로 이러한 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등 극히 예외적인 사정이 인정되는 사안에 한정하여 국가배상법 소정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으며, 위와 같은 구체적인 입법의무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애당초 부작위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될 여지가 없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거창사건 희생자들의 신원(伸寃) 등을 위하여 원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적인 판단문제로서 이에 관하여 피고 국가가 구체적인 입법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피고 국가가 현재까지 이러한 특별법을 제정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거창사건 이후 유족들에 대한 관계에서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같은 취지의 원심판결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심리미진 내지 판단유탈, 입법의무 불이행에 의한 불법행위에 관한 법리오해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  상고이유 제4점에 대하여
헌법 제53조에 따라서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을 대통령이 공포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서 법률이 확정되면 그 규정 내용에 따라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새로운 법규가 형성될 수 있지만, 이와 같이 법률이 확정되기 이전에는 기존 법규를 수정·변경하는 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없고, 다원적 의견이나 각가지 이익을 반영시킨 토론과정을 거쳐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통일적인 국가의사를 형성하는 국회에서 일정한 법률안을 심의하거나 의결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률로 확정되지 아니한 이상 국가가 이해관계자들에게 위 법률안에 관련된 사항을 약속하였다고 볼 수 없으며, 이러한 사정만으로 어떠한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거창사건 희생자들의 신원(伸寃) 등을 목적으로 제정된 거창특별법의 경우 국가배상법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입법정책적 차원에서 제정된 것으로서, 거창사건에 관하여 국가로 하여금 일정한 보상금 등을 지급하도록 규정한 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다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인하여 법률로 확정되지 아니한 적이 있다는 등의 사정만으로 피고 국가가 원고들에게 그 개정안에 관련된 사항을 약속하였다거나 어떠한 구체적인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원고들에게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구체적인 신뢰이익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상태에서 피고 국가가 원고들의 신뢰이익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판결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신뢰이익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에 관한 법리오해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
 
3.  결 론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들이 부담하도록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영란(재판장) 김황식 이홍훈(주심) 안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