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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결정례정보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민법 제809조 제1항 위헌제청

[전원재판부 95헌가6, 1997. 7. 16.]

【판시사항】

1. 同姓同本인 血族사이의 婚姻을 금하고 있는 民法 제809조 제1항의 위헌 여부
2. 재판관 5명이 單純違憲 의견이고 재판관 2명이 憲法不合致 의견인 경우의 主文表示

【결정요지】

1. 가. 재판관 김용준,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 재판관 신창언, 재판관 이영모의 單純違憲意見
중국의 同姓禁婚 사상에서 유래하여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法制化되고 確立된 同姓同本禁婚制는 그 制度 生成 당시의 國家政策, 國民意識이나 倫理觀 및 經濟構造와 家族制度 등이 婚姻制度에 반영된 것으로서, 忠孝精神을 基盤으로 한 農耕中心의 家父長的, 身分的 階級社會에서 社會秩序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自由와 平等을 根本理念으로 하고 男女平等의 觀念이 정착되었으며 經濟的으로 고도로 발달한 産業社會인 현대의 自由民主主義社會에서 同姓同本禁婚을 규정한 民法 제809조 제1항은 이제 社會的 妥當性 내지 合理性을 상실하고 있음과 아울러 “人間으로서의 尊嚴과 價値 및 幸福追求權”을 규정한 憲法理念 및 “個人의 尊嚴과 兩性의 平等”에 기초한 婚姻과 家族生活의 성립ㆍ유지라는 憲法規定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男系血族에만 한정하여 性別에 의한 차별을 함으로써 憲法上의 平等의 원칙에도 위
반되며, 또한 그 立法目的이 이제는 婚姻에 관한 國民의 自由와 權利를 제한할 “社會秩序”나 “公共福利”에 해당될 수 없다는 점에서 憲法 제37조 제2항에도 위반된다 할 것이다.
나.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의 憲法不合致意見
民法 제809조 제1항이 憲法에 위반된다는 결론에는 多數意見과 견해를 같이 한다. 그러나 同姓同本制度는 수백년간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 민족의 婚姻風俗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倫理規範으로 터잡게 되었고 婚姻制度는 立法府인 國會가 우리민족의 傳統, 慣習, 倫理意識 등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立法政策的으로 결정하여야 할 立法裁量事項이므로, 비록 위 條項에 違憲性이 있다고 하여도 憲法裁判所가 곧바로 違憲決定을 할 것이 아니라 立法形成權을 가지고 있는 國會가 우리민족의 婚姻風俗, 倫理意識, 親族觀念 및 그 변화 여부, 同姓同本禁婚制度가 과연 社會的 妥當性이나 合理性을 완전히 상실하였는지 여부, 그 制度의 改善方法, 그리고 同姓同本禁婚制度를 폐지함에 있어 現行 近親婚禁止規定이나 婚姻無效 및 取消에 관한 규정을 새로 정비할 필요는 없는지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새로이 婚姻制度를 결정할 수 있도록 憲法不合致決定을 하여야 한다.
2. 이 사건 法律條項이 憲法에 違反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재판관 7명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나, 재판관 5명은 單純違憲決定을 宣告함이 상당하다는 의견이고 재판관 2명은 憲法不合致決定을 宣告함이 상당하다는 의견으로서, 재판관 5명의 의견이 多數意見이기는 하나 憲法裁判所法 제23조 제2항 제1호에 규정된 “法律의 違憲決定”을 함에 필요한 審判定足數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憲法不合致의 決定을 宣告한다.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反對意見
同姓同本禁婚制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檀君건국초부터
전래되면서 慣習化된 우리 민족의 美風良俗으로서 傳統文化의 하나이며, 비록 1970년대 이래 급속한 經濟成長에 따라 우리의 社會環境이나 意識이 여러 면에서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의 婚姻慣習이 本質的으로 변하였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 家族法은 그 특성상 傳統的인 慣習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 중 어느 범위에서 이를 立法化하여 강제할 것인가는 立法政策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立法者의 판단이 명백히 비합리적이라고 판단되지 않는 이상 이를 違憲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인바, 民法 제809조 제1항은 傳統的인 婚姻慣習을 法制化ㆍ强制化함으로써 社會秩序를 유지하고자 함을 立法目的으로 하며, 傳統文化라는 역사적 사실과 傳統文化의 계승이라는 憲法的 理想에 부응한다. 그리고 國民의 幸福追求權 즉, 婚姻의 自由와 相對方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自由 등도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本質的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法律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또한 傳統文化의 계승이라는 한계내에서만 보장된다 할 것인데, 이 사건 法律條項의 立法目的의 正當性을 긍정하는 한 이 條項이 配偶者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그 본질을 침해한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 立法手段이나 方法의 適切性 및 法益侵害의 均衡性도 문제되지 아니하고, 傳統慣習의 法制化라는 입장에서 이 사건 法律條項을 둔 것이므로 이를 合理性이 없는 恣意的 男女差別이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사건 法律條項은 過剩禁止의 원칙이나 恣意的 差別禁止의 원칙에 반하여 국민의 基本權을 제한한다거나 婚姻과 家族生活에 관한 憲法 제36조 그밖의 憲法原理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제청법원 서울가정법원 (1995. 5. 17. 95호파3029 내지 3036 위헌제청)
제청신청인 (95헌가6 사건) 1. 박○선
2. 박○자
(95헌가7 사건) 3. 김○복
4. 김○자
(95헌가8 사건) 5. 박○현
(95헌가9 사건) 6. 양○우
7. 양○연
(95헌가10 사건) 8. 이○윤
9. 이○미
(95헌가11 사건) 10. 박○성
(95헌가12 사건) 11. 이○재
12. 이○선
(95헌가13 사건) 13. 최○한
14. 최○옥
제청신청인들 대리인 변호사 김 흥 한
당해사건 서울가정법원 95호파2070 내지 2077 혼인신고불수리처분에 대한 불복

【참조조문】

憲法 제9조, 제10조, 제11조 제1항, 제36조 제1항, 제37조 제2항
憲法裁判所法 제23조
(審判定足數) ① 생략
② 裁判部는 終局審理에 관여한 裁判官의 過半數의 贊成으로 事件에 관한 決定을 한다. 다만, 다음 各號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裁判官 6人 이상의 贊成이 있어야 한다.
1. 法律의 違憲決定, 彈劾의 決定, 政黨解散의 決定 또는 憲法訴願에 관한
認容決定을 하는 경우
2. 생략
民法 제809조
(同姓婚 등의 禁止) ① 생략
② 男系血族의 配偶者, 夫의 血族 및 기타 8寸 이내의 姻戚이거나 이러한 姻戚이었던 者 사이에서는 婚姻하지 못한다.
民法 제813조
(婚姻申告의 審査) 婚姻의 申告는 그 婚姻이 제807조 내지 제811조 및 전조 제2항의 規定 기타 法令에 違反함이 없는 때에는 이를 受理하여야 한다.
民法 제815조
(婚姻의 無效) 婚姻은 다음 各號의 경우에는 無效로 한다.
1. 생략
2. 當事者間에 直系血族, 8寸 이내의 傍系血族 및 그 配偶者인 親族關係가 있거나 또는 있었던 때
3. 當事者間에 直系姻戚, 夫의 8寸 이내의 血族인 婚姻關係가 있거나 있었던 때
民法 제816조
(婚姻取消의 事由) 婚姻은 다음 各號의 경우에는 法院에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1. 婚姻이 제807조 내지 제811조의 규정에 위반한 때
2.~3. 생략
戶籍法 제76조
(婚姻申告의 記載事項) ① 婚姻의 申告書에는 다음 事項을 記載하여야 한다.
1. 當事者의 姓名, 本, 出生의 年月日 및 本籍
2.~5. 생략
6. 當事者가 同姓同本일지라도 血族이 아닌 때에는 그 事實
7. 생략
②~③ 생략
婚姻에관한特例法(1977. 12. 31. 법률 제3052호, 1987. 11. 28. 법률 제3971호)
婚姻에관한特例法(1995. 12. 6. 법률 제5013호) 제1조
(目的) 이 法은 民法 제809조의 規正에 위반하여 婚姻 또는 事實上의 婚姻關係에 있는 者의 婚姻에 관한 特例를 規正함을 目的으로 한다.
婚姻에관한特例法(1995. 12. 6. 법률 제5013호) 제2조
(적용대상) 이 法은 이 法 施行 당시 민법 제809조의 規正에 위반하여 婚姻 또는 事實上의
婚姻關係에 있는 者에 대하여 적용한다. 다만, 民法 제815조 제2호 및 제3호에 해당하는 者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婚姻에관한特例法(1995. 12. 6. 법률 제5013호) 제3조
(民法의 適用排除) 이 法의 적용을 받는 者에 대하여는 民法 제809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婚姻의 申告를 한 때에는 同條의 사유로 인한 婚姻의 取消를 請求할 수 없다.
婚姻에관한特例法(1995. 12. 6. 법률 제5013호) 제4조
(婚姻申告의 特例) ① 이 法의 적용을 받는 者가 戶籍法에 정한 바에 따라 婚姻의 申告를 할 때에는 大法院規則이 저아는 바에 의하여 필요한 書類를 첨부하여야 한다.
② 戶籍公務員은 제1항의 申告가 있는 때에는 民法 제815조 제2호 및 제3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지의 여부를 大法院規則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調査하여야 한다.
婚姻에관한特例法(1995. 12. 6. 법률 제5013호) 附則 
① (施行日) 이 法은 公布후 20日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② (有效期間) 이 法은 1996年 12月 31日까지 효력을 갖는다. 이 法 效力滿了日 이전에 申告된 이 法 적용대상자의 婚姻에 대하여는 그 후에도 民法 제809조의 사유로 인한 婚姻의 取消를 請求할 수 없다.

【참조판례】

1. 1990. 9. 10. 선고, 89헌마82 결정
2. 1992. 2. 25. 선고, 89헌가104 결정

【전문】

【주  문】


1. 민법 제809조 제1항

(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2. 위 법률조항은 입법자가 1998. 12. 31.까지 개정하지 아니하면 1999. 1. 1. 그 효력을 상실한다.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위 법률조항의 적용을 중지하여야 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서울가정법원은, 동성동본

(同姓同本)

인 자와 혼인하려 하는 제청신청인들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아니한 처분에 대하여 그들이 불복을 신청한 위 각 당해사건에서, 민법 제809조 제1항의 위헌여부가 그 사건들의 재판의 전제가 된다 하여 1995. 5. 17. 각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하였고

(95호파3029 내지 3036)

, 그 각 결정서는 모두 같은 달 29. 우리 재판소에 접수되었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민법 제809조 제1항

(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

의 위헌여부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809조

(동성혼 등의 금지)

 ①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2. 제청법원의 위헌심판제청이유와 제청신청인 등의 의견

가. 제청법원의 위헌심판제청이유

이 사건 법률조항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게끔 보장하는 헌법 제10조의 정신을 침해하고 또 모든 국민의 법 앞에서의 평등과 불합리한 차별대우의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11조 제1항에 위반된다는 제청신청인들의 주장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나. 제청신청인들의 의견

(1) 우리나라의 전통도 아니고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한 것

에 불과하면서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에서의 혼인금지를 규정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다음과 같이 제청신청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 있어 자유로운 의사의 합치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혼인생활과 자녀의 출산, 양육은 향유할 수 있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제청신청인들은 불합리한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말미암아 법적인 부부가 되지 못함으로써, 행복추구권의 향유에 중대한 장애를 받고 있다.

둘째,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계

(男系)

혈족만을 문제삼고 있어 여성들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셋째, 제청신청인들은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말미암아 법률로 보호되는 혼인관계를 갖지 못함으로써, 실제의 가족생활에 있어서 의료보험, 각종 사회생활상의 급여, 가족수당 등 근로관계에서 오는 불이익, 상속 등 재산문제, 행정상의 신고 등 관계절차와 관련하여 심각한 장애와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36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제청신청인들이 향유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2)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는 이유로 보통 유전학적 이유와 이를 허용하는 경우 재래의 미풍양속과 전통문화에 어긋나서 사회질서의 혼란과 가족제도의 파괴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이 어떠한 유전학적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고, 나아가 이는 혼인의 성질에 비추어 남계혈족 뿐만 아니라 여계

(女系)

혈족의 문제도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져야 합리적이며,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금지 자체가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닌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고, 우리나라의 성씨

(姓氏)

의 발달사나 그 분포상황 및 사회상의 변천에 비추어볼 때 이미 사회규범으로서의 효력을 상실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그동안 3차례에 걸쳐 시행되면서 많은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사실혼을 구제하였던 “혼인에관한특례법”이 이 제도의 사실상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다. 유림(儒林)의 의견

(1)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는 제도는,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 아니고 고대로부터 선대를 통한 관습으로서 현재까지 내려온 제도로서, 지금도 우리 국민의 정서에 완전 부합하여 대다수의 국민이 그 제도의 존치를 바라고 있다. 이 제도는 그 생성ㆍ발전되어온 역사적 배경, 사회적 수용성, 입법목적, 사회질서에 대한 규율능력, 특히 핵가족화하여 갈수록 황폐하여지는 우리의 도덕관념 등에 비추어, 사회적 유용성을 가지며 우리 헌법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2) 원래 헌법이 규정하는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및 혼인의 자유 등은 무제한, 무조건적인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에 대한 합리적인 범위내에서의 제한은 부득이한 것인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호주

(戶主)

제도와 더불어 아직도 우리 가족법의 양대 지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으므로 이로 인하여 개인의 권리가 어느 정도 침해받는다 하여 곧바로 위헌으로 볼 수는 없다.

(3) 또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은 유전학적으로도 좋지 않다.

3. 판 단

가. 재판관 김용준,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 재판관 신창

언, 재판관 이영모의 단순위헌의견

(1) 금혼

(禁婚)

범위에 관한 민법규정

우리 민법은, 금혼범위에 관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제한 이외에도 제809조 제2항에서 “남계

(男系)

혈족의 배우자, 부

(夫)

의 혈족 및 기타 8촌 이내의 인척

(姻戚)

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일정한 범위내의 근친혼을 금지하는 이른바 금지혼의 대상을 정한 규정을 두고 있고, 제816조 제1호는 이에 위반한 혼인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이를 취소혼

(取消婚)

의 대상으로도 하고 있으며, 또 제815조 제2호와 제3호는 “당사자간에 직계혈족, 8촌 이내의 방계혈족 및 그 배우자인 친족관계가 있거나 또는 있었던 때”와 “당사자간에 직계인척, 부

(夫)

의 8촌 이내의 혈족인 인척관계가 있거나 또는 있었던 때”에는 그 혼인을 무효로 하여 무효혼

(無效婚)

의 대상이 되는 근친혼을 규정하고 있다.

결국 우리 민법은 ① 당사자간에 직계혈족, 8촌 이내의 방계혈족 및 그 배우자인 친족관계가 있거나 또는 있었던 때

(제815조 제2호)

, ② 당사자간에 직계인척, 부

(夫)

의 8촌 이내의 혈족인 인척관계가 있거나 또는 있었던 때

(같은 조 제3호)

, ③ 남계혈족의 배우자, 부

(夫)

의 혈족 및 기타 8촌 이내의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제809조 제2항)

사이의 혼인은 이를 무효로 하거나 금지함으로써, 부계

(父系)

와 모계

(母系)

의 최소한 8촌 이내의 혈족이거나 혈족이었던 자 및 8촌 이내의 인척이거나 인척이었던 자 사이의 혼인은 무효이거나 금지되고 있는바, 이와 같이 법률에 의하여 금지되는 근친혼의 범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의 다른 주요국가의 입법례와

대비해 보면 매우 넓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이에 더하여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은 그 촌수의 원근

(遠近)

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이를 모두 금지하고 있고, 민법은 이러한 혼인을 취소혼의 사유

(제816조 제1호)

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 혼인신고 자체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제813조, 호적법 제76조 제1항 제1호ㆍ제6호 참조)

. 따라서 동성동본인 혈족은 서로가 아무리 진지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 촌수를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먼 혈족이라 하여도 혼인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제도의 위헌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우선 이 제도가 생기게 된 연유를 비롯한 그 역사적 정착과정과 그 사회적 기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동성동본금혼제

(同姓同本禁婚制)

의 정착과정과 그 사회적 기반

자료에 의하면 동성동본금혼제가 우리나라에서 정착하게 된 역사적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원래 동성금혼

(同姓禁婚)

은 중국의 주대

(周代)

부터 시작되어 한대

(漢代)

에 이르러 완성된 종법제

(宗法制)

와 함께 확립된 제도로서 남계혈족 즉 본종

(本宗)

은 백대

(百代)

에 이르더라도 일가

(一家)

로 대한다는 혈연관계를 중요시하는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라 볼 수 있고, 이와 같은 사상은 고려중기부터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다만 중국의 경우는 동성

(同姓)

은 모두 동종

(同宗)

으로 보아 혼인을 금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동성동본

(同姓同本)

인 경우에만 동종으로 보아 혼인을 금지하였다.

이 제도의 정착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유학

(儒學)

의 영향이 커지기 이전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혼인방식에 관하여 중

국 삼국지

(三國志)

위지

(魏志)

동이전

(東夷傳)

예조

(濊條)

에 “동성금혼

(同姓禁婚)

”이라는 기록이 있기는 하나, 그 의미에 관하여는 후대의 동성금혼과 같다고 볼만한 뚜렷한 다른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삼국사기

(三國史記)

나 삼국유사

(三國遺事)

에 의하면 신라

(新羅)

의 왕실과 귀족사회에서는 골품제

(骨品制)

라는 혈연집단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근친간의 내혼제

(內婚制)

가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高麗)

에서도 최소한 중기에 이르기까지는 신라와 같이 왕실에서 내족혼이 행하여지다가 고려 정종

(靖宗)

12년

(1046년)

5월 동성혼의 자

(子)

에게 벼슬길이 금지되고, 그후 문종

(文宗)

35년

(1081년)

부터 근친혼금지령이 나타나면서부터 왕실이나 민간에서 근친혼 내지 동성혼이 금지되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처벌에 관한 규정이 없는 권고적인 것에 불과하였으며, 그후에도 몇번에 걸친 근친혼 금지의 조치가 있었으나 그 금지범위는 4촌 내지 8촌에 한하였다고 자료에 적혀 있다.

조선

(朝鮮)

은 유학을 건국이념으로 하면서 명률

(明律)

을 의용하였고 그 결과 동성동본금혼의 원칙이 서서히 세워지게 되었으나, 이 원칙이 보편성과 실효성을 가진 규범으로 발전된 것은 조선후기 영조조

(英祖朝)

에 이르러 속대전

(續大典)

예전

(禮典)

혼가조

(婚嫁條)

에 동성이본혼

(同姓異本婚)

까지를 금지함에서 비롯되었고, 조선말 형법대


〔刑法大典, 광무(光武) 9년, 1905년


에서는 다시 동성동본혼만을 금지하면서 위반자에 대하여 형벌까지 부과하였다.

한편, 이와 같이 동성동본혼을 금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민

(常民)

의 경우는 물론 반가

(班家)

에서조차 동성동본간에 혼

인을 한 사례를 문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내혼제가 아닌 외혼제로서 동성동본금혼제가 실제로 법제화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고, 더욱이 그 확립시기는 17세기 후반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관계자료에 의하여 살펴보면 이러한 동성동본금혼제는 결국 그 제도 생성

(生成)

당시의 국가정책, 국민의식이나 윤리관 및 경제구조와 가족제도 등이 혼인제도에 반영된 것으로서, 그 윤리적, 국민의식적 기반은 충효정신을 숭상한 유학이었으며, 국가정책으로서는 왕조를 중심으로 한 신분적 계급제도의 정착이었고, 가족제도는 남계

(男系)

를 중심으로 한 족벌적

(族閥的)

, 가부장적

(家父長的)

대가족 중심의 가족제도이었으며, 사회경제적으로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한 농경중심의 사회이었는바, 그러한 사회에서 그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서의 기능을 하였던 것이라 볼 수 있다.

(3) 사회환경의 변화와 동성동본금혼제 존립기반의 동요

(가) 그러나 이러한 동성동본금혼제가 생성하여 정착할 수 있었던 시대와 비교하면 현대사회는 너무나 많은 사회환경의 변화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첫째,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이념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왕조를 중심으로 하여 유학이 발달하고 충효정신을 숭상하며 신분적 계급제도 및 남존여비사상에 기초한 족벌적, 가부장적 사회이었던 그 당시에 비하여, 현재의 우리사회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자유와 평등”을 근본이념으로 하며 신분적 계급제도와 남존여비사상을 배척한 자유민주주의사회로 탈바꿈하였고, 이에 따라 헌법도 제36조 제1항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의 바탕위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이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함을 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까지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맞추어 국민의 의식구조도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둘째, 혼인 및 가족관념의 변화와 남녀평등관념의 정착을 들 수 있다. 혼인이 1남 1녀의 정신적ㆍ육체적 결합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변화가 없다고 할지라도 국민 대다수의 혼인관

(婚姻觀)

이 주로 “집안

(家)

과 집안

(家)

간의 결합”이라는 관념에서 혼인당사자의 자유의사를 존중한 “인격 대 인격의 결합”이라는 관념으로 바뀌었고, 가족의 관념이나 형태도 대체로 가부장적 대가족에서 분화된 핵가족으로 바뀌었다. 친족사이의 유대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동성동본인 혈족이 “같은 집안”이라는 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점은 엄연한 현실이고, 특히 가족내의 가족원의 지위 내지 역할분담이나 그에 대한 의식이 현저히 달라졌으며, 또 건국 이래 꾸준한 여성교육의 확대로 인한 남녀평등관념의 정착은 매우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사회진출 내지 사회활동의 확대에 따른 그 지위의 향상과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이에 따라 남아선호

(男兒選好)

내지 가계계승

(家系繼承)

관념의 쇠퇴, 아들ㆍ딸을 구별치 않는 다자녀출산의 기피, 독신여성 및 이혼녀의 증가 등 여러가지 의식의 변화가 오고 있다.

셋째, 경제구조의 변화와 인구의 급격한 증가 및 그 도시집중화를 들 수 있다. 봉건적, 폐쇄적인 농경중심 내지 자급자족 원칙의 농경사회가 고도로 발달된 산업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은 중대한 사회환경의 변화이며, 이는 국민의 의식구조 및 그 가치관, 인생관, 행복관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사회환경의 변화에 대한 절대적인 가늠자라 할 것인데, 김해

(金海)

김씨

(金氏)

나 전주

(全州)

이씨

(李氏)

, 밀양

(密陽)

박씨

(朴氏)

와 같은 대성

(大姓)

의 경우 1985년도의 통계에 의하더라도 그 인구가 각각 3,892,342명과 2,379,537명 및 2,704,819명이 되어, 이제는 동성동본이라는 것이 금혼의 기준으로서 그 합리성을 인정받기가 어렵게 되었고, 특히 인구의 도시집중화와 관련하여 가

(家)

내지 본관에 관한 관념이 차츰 희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 민법제정 이후 사실혼관계에 있는 동성동본혼을 구제하고자 3회에 걸쳐 “혼인에관한특례법”

(1977. 12. 31. 법률 제3052호, 1987. 11. 28. 법률 제3971호, 1995. 12. 6. 법률 제5013호)

이 시행되었고, 이로써 사실혼관계에 있던 44,827쌍

(1978년 4,577쌍, 1988년 12,443쌍, 1996년 27,807쌍)

의 부부가 법적인 구제를 받았다는 사실은 위와 같은 변화를 극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즉 위의 통계는 위 특례법이 단지 동성동본으로서 혼인한 일부의 부부와 그 자녀들이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겪는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행되었다는 뜻을 넘어 이미 동성동본금혼제가 금혼규정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금혼규정의 주된 적용대상으로 볼 수 있는 신세대 미혼남녀간의 연애에 있어서 상대방의 본관을 미리 물어본다든가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어 결혼까지 약속할 무렵 서로의 본관이 같다는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바, 이는 이미 이 제도가 행위규제규범으로서도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제도의 발원지인 중국에서조차 이 사건 법률조항과 같은

금혼조항은 1930년대에 이미 폐지되었다.

(다) 또 민법 제781조 제3항은 “부모를 알 수 없는 자

(子)

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성

(姓)

과 본

(本)

을 창설하고 일가

(一家)

를 창립한다”고 규정하고 가사소송법 제2조 제1항 “나”목 (1)의 4는 이를 “가사비송사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바, 이 규정에 의하면 혈연과는 전혀 무관하게 동성동본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제도로 말미암아서도 동성동본이라는 것이 이제는 혈연관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의 기능까지도 상실하기 시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성동본자간의 금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가지 사회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동성동본금혼제의 존립기반이 이제 완전히 붕괴되었다고까지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그 존립기반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근본적인 동요를 하고 있음은 이를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동성동본금혼제를 법제도로서 더 이상 존치할 이유가 있는지의 여부는 헌법이념 및 규정에 의한 새로운 조명과 가치판단이 있어야 한다.

(4) 헌법이념 및 규정에서 본 동성동본금혼제 -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성

(가)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함으로써 모든 기본권의 종국적 목적

(기본이념)

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의 본질이며 고유한 가치인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인격권ㆍ행복추구권은 개인의 자기

운명결정권을 그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적

(性的)

자기결정권 특히 혼인의 자유와 혼인에 있어서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

(헌법재판소 1990. 9. 10. 선고, 89헌마82 결정 참조)

.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혼인제도와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원리를 규정한 것으로서 혼인제도와 가족제도는 인간의 존엄성 존중과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규정되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혼인에 있어서도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의 바탕위에서 모든 국민은 스스로 혼인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고 혼인을 함에 있어서도 그 시기는 물론 상대방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결정에 따라 혼인과 가족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나) 그런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조항은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을 그 촌수의 원근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모두 금지하고 민법은 이를 위반한 혼인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 혼인신고 자체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동성동본인 혈족은 서로가 아무리 진지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 촌수를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먼 혈족이라 하더라도 혼인을 할 수 없고 따라서 혼인에 있어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동시에, 그 제한의 범위를 동성동본인 혈족, 즉 남계혈족에만 한정함으로써 성별에 의한 차별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금혼규

정으로서의 사회적 타당성 내지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음과 아울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이념 및 규정과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성립ㆍ유지라는 헌법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할 것이고, 또 그 금혼의 범위를 동성동본인 혈족, 즉 남계혈족에만 한정하여 성별에 의한 차별을 하고 있는데 이를 시인할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에도 위반되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10조, 제11조 제1항, 제36조 제1항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그 입법목적이 이제는 혼인에 관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사회질서”나 “공공복리”에 해당될 수 없다는 점에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위반된다 할 것이다.

(5) 동성동본금혼제의 존치론에 대하여

(가)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을 허용하면 우생학 내지 유전학적으로 유해

(有害)

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보건대, 우선 동성동본금혼제는 결코 유전학적인 이유 내지 우생학적 이유로 정착된 제도가 아니며, 만약 유전학적인 이유로 근친혼을 금지하여야 한다면 이는 남계혈족 뿐만 아니라 여계

(女系)

혈족에게도 똑같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동성동본금혼제는 남계혈족만을 문제삼고 있을 뿐이며, 유전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민법에 의하여 금지되거나 무효로 되는 범위를 넘어서는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의 경우 유전학적인 질병의 발생빈도가 이성

(異姓)

간 또는 동성이본

(異本)

간의 혼인의 경우보다 특히 높다는 아무런 과학적인 증명도 없음이 밝혀져 있으므로, 이러한 주장은 동성동본금혼제를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나) 다음으로, 사회의 미풍양속과 전통문화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사회질서의 혼란과 가족제도의 파괴를 초래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보건대, 특정의 인간행위에 대하여 이를 국가가 법규범을 통하여 규제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관습이나 도덕에 맡길 것인가의 문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상호관계를 함수로 하여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결과를 달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결국은 그 사회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등에 의하여 결정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혼인관계의 강한 사회성으로 인하여 혼인에 관한 각종 규범 중 중요한 원칙들은 법이 이를 뒷받침하여야만 혼인에 의한 가족관계가 안정될 수 있으므로 전통적인 관습으로 이어온 금혼의 범위를 법으로 명백히 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서도 동성동본금혼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 제도의 사회적 기반 내지 현실적 타당성에 관한 고찰을 결여하고 윤리나 도덕관념도 시대에 따라 변천되고 역사의 발전법칙에 따라 발전한다는 것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동성동본금혼제 역시 만고불변의 진리로서 우리의 혼인제도에 정착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윤리나 도덕관념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서 그 시대의 제반 사회ㆍ경제적 환경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이 제도는 이제 더 이상 법적으로 규제되어야 할 이 시대의 보편타당한 윤리 내지 도덕관념으로서의 기준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밖에 없고, 헌법 제9조의 정신에 따라 우리가 진정으로 계승ㆍ발전시켜야 할 전통문화는 이 시대의 제반 사회ㆍ경제적 환경에 맞고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보편타당한 전통윤리 내지 도덕관념이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사건 동성동본금혼의 법률조항을 위헌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헌법의 이념이나 규정에 명백히 반하기 때문이며, 이를 위헌으로 본다 하여 헌법재판소가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혼인을 권장한다거나 기존의 보편타당한 윤리 내지 도덕관념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나.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의 헌법불합치의견

우리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론에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 하지만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하여 다수의견과 같이 곧바로 위헌결정을 할 것이 아니라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동본제도는 수백년간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민족의 혼인풍속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윤리규범으로 터잡게 되었고 이와 같은 혼인풍속, 윤리의식을 반영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을 입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족법 특히 혼인제도는 입법부인 국회가 우리민족의 전통, 관습, 윤리의식, 친족관념, 우생학적 문제 등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입법재량사항이다.

따라서 비록 이 사건 법률조항에 위헌성이 있다고 하여도 헌법재판소가 곧바로 위헌결정을 할 것이 아니라 입법형성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가 우리민족의 혼인풍속, 윤리의식, 친족관념 특히 국민의 혼인윤리의식이나 친족관념이 어떻게 얼마나 변화하였는지, 동성동본금혼제도가 과연 사회적 타당성이나 합리성을 완전히 상실하였는지, 동성동본금혼제도의 친족범위를 제한하여 합헌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없는지, 그리고 동성동본금혼제도를 폐지함에 있어 우

리민족의 혼인풍속이나 친족관념에 비추어 현행 근친혼금지규정이나 혼인무효 및 취소에 관한 규정을 새로 정비할 필요는 없는지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새로이 혼인제도를 결정할 수 있도록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여야 한다.

4. 결 론

위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을 제외한 그 나머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나, 재판관 김용준,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 재판관 신창언, 재판관 이영모는 단순위헌결정을 선고함이 상당하다는 의견이고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은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함이 상당하다는 의견으로서, 위 재판관 김용준 등 5명의 의견이 다수의견이기는 하나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2항 제1호에 규정된 “법률의 위헌결정”을 함에 필요한 심판정족수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이에 헌법불합치의 결정을 선고하기로 하는바, 위 법률조항은 입법자가 1998. 12. 31.까지 개정하지 아니하면 1999. 1. 1. 그 효력을 상실하고,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위 법률조항의 적용을 중지하도록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므로 이에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아래 5.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었다.

5.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가. 동성동본금혼제도와 가족법의 특징

(1)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가 다투어지는 이유는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하여 혼인이 금지되는 동성동본인 혈족의 범위에 제한이 없다는 점에 있다. 근친간의 혼인이 우생학적 또는 사회도덕적으로 유해하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고 따라서 근친혼을 금하는 것은 비교법적으로도 일반적인 현상이며 우리 민법도 제809조 제2항, 제815조 제2호ㆍ제3호, 제816조 제1호에서 근친혼 금지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동성동본인 혈족이기만 하면 그 원근을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혼인을 금지하고 있는바, 그것이 우생학적 이유 또는 사회도덕적 이유에 근거한 것이라면 앞서 본 규정들에 의한 제한이 있음에도 이에 더하여 동성동본의 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혼인을 금지하는 것을 합리화할 근거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2) 살피건대, 혼인은 남녀의 자유의사에 기한 결합이지만, 남녀의 자유의사에 기한 결합이기만 하면 모두 혼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즉, 관습ㆍ도덕ㆍ종교 등 사회규범에 의하여 정당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공인될 수 있는 남녀간의 결합만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혼인인 것이다. 근대적 혼인이 배우자 선택의 자유를 포함하는 혼인계약의 자유를 그 특징의 하나로 하면서도 혼인관계의 보호에 위와 같은 제도적ㆍ사회적 제약을 가하는 것은, 혼인관계가 단순히 남녀의 육체적ㆍ정신적 결합에 그치지 않고 혼인 및 자녀의 출산을 통하여 국가ㆍ사회의 기본 구성요소인 가족을 형성하는 지극히 사회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어서 그 사회 고유의 전통ㆍ풍속에 강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산관계 특히 거래관계를 규율하는 법이 사회경제사정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기술적ㆍ타산적이며 진보성을 가짐에 비하여 혼인관계를

포함한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법은 합리적으로만 형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전통ㆍ풍속에 강하게 지배되는 보수적ㆍ역사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성도 혼인관계를 규율하는 법의 이러한 특수성을 전제로 그 유래나 관습화의 정도, 입법화의 타당성, 현재의 여건 변화 등을 검토함으로써 그 위헌성을 가려야지 합리성이나 논리만을 잣대로 위헌성을 논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나. 동성동본금혼제도의 유래와 관습화

다수의견은 동성동본금혼제도는 중국의 주대

(周代 -기원전 1122년)

, 한대

(漢代 - 기원전 202년)

의 종법제

(宗法制)

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우리의 풍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기록 중 고증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동성동본금혼제는 기원전 2332년 단군건국초부터 불취동족

(不娶同族)

이라는 도덕률이 창설되고 예속

(濊俗 - 예는 기원전 128년 당시 우리 민족을 지칭하였다)

으로 전래되면서 관습화되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정착되어 왔던 점과, 신라와 고려시대에 이르러 일부소수계급인 왕족간에 근친혼이 성행되어 위 도덕률이 일시 훼손된 사례가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동성동본금혼이 제도화되면서 회복되었고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600여년 동안에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으로 관습화되었으며 우리의 전통문화로 이어져 왔던 점을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전통ㆍ관습ㆍ문화는 중국의 주대

(周代)

에 시작되어 한대

(漢代)

에 이르러 완성되었다는 종법제

(宗法制)

보다는 무려 1000여년전에 이미 정립되었다 할 것이며, 우리 민족 고래

(古來)

의 전통ㆍ관습ㆍ문화일 뿐, 위 종법제에서 유래된 것이라고는 보여지지 아니한다.

가사 위 종법제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어떤 차이를 가져 오는 것은 아니다. 즉 다수의견에 따르더라도 고려 중기 또는 후기부터는 그것이 우리 민족의 혼인관습으로 자리 잡았고 조선에 이르러 유교의 영향을 받아 강화되었다는 것이므로 이는 적어도 600년이상 지켜온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으로서 전통ㆍ관습ㆍ문화이기 때문이다.

다. 현실 여건의 변화와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

(1) 다수의견은 그 동안의 사회ㆍ경제적인 여건의 변화에 따라 이 사건 법률조항을 더 이상 존치시킬 근거가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살피면, 1970년대 이래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산업화ㆍ도시화와 교통ㆍ통신의 발달, 높은 수준의 서구적 교육 수혜자 및 여성의 사회적 진출의 확대, 인구의 증가와 전국적인 인구이동 및 도시집중 현상 등과 이에 따른 전통부락과 가족관계의 파괴, 전통적인 윤리의식이나 가족관의 변화, 배우자 선택방법의 변화

(연애결혼의 증대)

등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환경이나 의식의 변화가 있었다고 하여 불과 몇 십년만에 우리의 혼인관습이 본질적으로 변하였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 특히 혼인관계를 포함한 가족관계는 급격한 사회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바뀌지 않는 보수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동성동본금혼제는 오랜 전통ㆍ관습ㆍ문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료들은 단순한 여론조사보다는 국민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국민투표나 이 제도의 존폐를 서로 다르게 내세운 국회의원 총선거나 대통령 선거의 결과들과 같이 보다 공신력이 있는 자료들이라야 할 것이

나, 이러한 자료들이 없다. 따라서 동성동본금혼제도가 폐습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기존의 제도에 대한 반대자는 있는 것이므로 반대의 주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그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며, 우리 국민의 의식이 그렇게 까지 변하였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이는 그 동안에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개폐문제가 건국이후 1989. 12. 19.까지 몇 차례 논의된 바는 있지만 그 폐지의견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분명하다.

〔1948년 건국이후 1960년부터 실시된 민법 제정시에도 국회에서 오늘날과 같은 시비가 1954. 10. 26.부터 논란되었다. 즉 1956. 9. 5. 국회법제사법위원회 민법안심의소위원회는「동성불혼의 관습법은 폐하고 친족 또는 친족이었던 자간의 혼인만을 금지할 것. 단 배우자이었던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는 안을 성안하여 1957. 9. 11.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시켜 국회 본회의에 회부하였으나, 유림의 격렬한 반대와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내용의 유시가 있은 이후, 1957. 12. 5.에 국회 본회의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성안통과되었다. 이후 1975. 4. 9.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의가 민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동성혼 등의 금혼범위를 축소하자는 등의 내용으로 주장하고 나섰으나 이 개정안은「우리나라의 전래의 윤리관과 가족관념에 비추어 볼 때 현시점에서는 채택할 수 없다


는 이유로 폐기 되었으며, 그 대신 동성동본혼인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1977. 12. 31. 한시법으로서 혼인에관한특례법이 법률 제3052호 등으로 3차에 걸쳐 제정되어 왔다. 그 이후에도 가족법개정운동이 계속되어 왔고 1988. 11. 7.에는 위 개정안을 토대로 이를 보완하여 다시 개정안이 제출되었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인습(因習)과 사회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앞으로 더욱 연구검토하기로 하고 동성동본금혼제를 존치하기로 하는 대안(代案)을 성안하였고, 이를 1989. 12. 19. 국회 본회의에 회부하면서「명분을 유지했다고 하는 점에서 유림측이, 또 실리를 얻었다는 점에서 여성단체측이, 모두가 이 대안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만족해 ……


라는 제안설명을 하였으며, 이 대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특히 1989. 12. 19. 국회 본회의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을 존치하기로 결의함에 있어서 유림측과 여성단체측이 명분과 실리를 서로 취하여 모두 만족하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 제도가 아직도 존치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총의임을 증명하여 주는 자료가 된다고 할 것이다.〕

(2) 또한 다수의견은 동성동본간의 혼인신고를 한시적으로 받아 주는 혼인에관한특례법이 3회에 걸쳐 제정ㆍ시행된 사실을 보더라도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이미 그 합리적 근거를 상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나, 위 특례법이 3회에 걸쳐 제정ㆍ시행된 것은 이 사건 법률조항의 합리성에 대한 반성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즉 위 특례법들의 제정 이유는 이 사건 법률조항에 반하는 혼인관계가 법률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들의 자녀가 겪는 취학과 사회생활 등 면에서의 심각한 번뇌와 수모를 구제하고 아울러 사실상 혼인한 당사자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건네겠다는 데에 있지, 동성동본인 혈족간의 금혼의 벽을 무너뜨리자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라. 동성동본금혼제도와 법적 규제의 정당성

(1) 앞서 본 바와 같이 동성동본금혼제도는 우리 민족이 오랜 관습으로 지켜내려와 혼인에 관한 전통문화의 하나로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에 상응한 행동결정의 정당성이 의식되고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며, 가족법의 특성상 가족법은 이러한 관습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인바, 가족관계에 관한 관습 중 어느 범위에서 이를 입법화하여 강제할 것인가는 입법정책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입법자의 판단이 명백히 비합리적이라고 판단되지 않는 이상 이를 위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특정의 인간행위에 대하여 이를 국가가 법규정을 통하여 규제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관습이나 도덕에 맡길 것인지의 문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상호관계를 함수로 하여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결과를 달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결국은 그 사회의 시대적 상황ㆍ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등에 의하여 결정될 수 밖에 없는바

(헌법재판소 1990. 9. 10. 선고, 89헌마82 결정 참조)

, 관습이나 도덕에 맡겨야 할 사항에 대하여 국가가 법을 통하여 강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나 동성동본금혼제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혼인관계의 강한 사회성으로 인하여 혼인에 관한 각종 규범들 가운데 중요한 원칙들이 공적 제도 및 법에 의하여 뒷받침됨으로써 혼인에 의한 가족관계가 안정될 수 있는 것이므로 관습으로 이어온 금지혼의 범위를 법으로 명확히 하여 혼인관계의 유무효를 명백히 함이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하여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마. 이 사건 법률조항과 과잉금지의 원칙ㆍ행복추구권 및 평등권

(1)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하여 국민의 행복추구권 즉, 혼인의 자유와 상대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등이 제한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위와 같은 기본권도 국가적ㆍ사회적ㆍ공공복리 등

의 존중에 의한 내재적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헌법 제37조 제2항이 명시하고 있듯이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 공동체 목적을 위하여 그 제한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2) 그러므로 살피면, 혼인관계의 사회성으로 인하여 혼인관계의 질서는 사회질서와 매우 중요한 관련을 가지고 있고 혼인관계의 혼란은 곧 사회 내지 국가적인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통적인 혼인관습을 법제화ㆍ강제화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 할 것이고 그 법제화의 취지 및 그 효력이 이 사건 법률조항에 위반할 때에 혼인취소를 청구할 수 있음에 그치고

(민법 제816조 제1호, 나아가 민법 제820조는 혼인중 자를 출생한 때에는 취소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벌권의 발동이나 그 혼인이 당연무효에까지는 이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입법의 수단이나 방법의 적절성 그리고 법익침해의 균형성에도 문제가 되지 아니한다고 보여진다.

(3) 이 사건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주된 논거는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금혼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행복추구권 즉, 혼인의 상대방을 결정할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동성동본인 혈족간의 혼인을 금지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인구와 성씨의 분포 및 그 구성원의 수에 비추어 볼 때 혼인 상대방을 자유롭게 선택할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까지 이른다고 할 수는 없다. 동성동본인 혈족을 사

랑하여 혼인을 원하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의 배우자 선택권의 본질이 침해된다고 할지 모르나 그와 같은 논리라면 근친간에도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의 정당성을 긍정하는 한 이 사건 법률조항이 배우자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그 본질을 침해한다고 할 수는 없다.

(4) 또한 행복추구권은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한계내에서만 보장되고 있음이 헌법규정상 분명하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기에 앞서 헌법 제9조를 두어 전통문화의 계승에 관한 국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즉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에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규정하여 국민의 모든 기본권은 위 제9조 소정의 국가의무와의 상관관계하에서 보장됨을 분명히 하였다. 따라서 비록 이 사건 법률조항이 행복추구권을 제한하였다고 하더라도 행복추구권 규정의 바로 앞에 규정하고 있는 위 제9조의 이상을 이루기 위한 국가의 노력을 배제할만한 정도로 행복추구권을 제한한 것인지에 대하여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살피면, 행복추구권이란 소극적으로는 고통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를 추구할 권리, 적극적으로는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일반적으로 해석되고 있으나,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적 조건이나 때와 장소에 따라 그 개념이 달라질 수 있으며, 행복을 느끼는 정신적 상태는 생활환경이나 생활조건, 인생관, 가치관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이므로 일률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개념일 수 밖에 없고, 이와 같이 불확실한 개념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규정한데 대한 비판적 논의도 없지 아니하며 우리 헌

법은 인간의 기본권리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 사생활의 비밀의 자유, 환경권 등 구체적 기본권을 따로 규정해 놓고 있으면서 또 다시 그 개념이나 법적성격, 내용 등에 있어서 불명확한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것은 추상적 권리를 중복하여 규정한 것이고 법해석의 혼란만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어떻든 이 행복추구권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자연권적 권리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 규정과 밀접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모든 개별적, 구체적 기본권은 물론 그 이외에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하는 모든 자유와 권리까지도 그 내용으로 하는 포괄적 기본권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격을 지닌 행복추구권이라 할지라도 반사회적 내지 반자연적 행위를 금지하는 규범이나 전통문화로 인식되어 온 국민의 법감정에 반하여 이를 남용할 수 없음은 물론 타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거나 방해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것이며 적어도 국민의 의사에 정면으로 반하지 아니하는 한 전통ㆍ관습에 반한 행복추구권을 추구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앞서 본 바와 같은 전통문화라는 역사적 사실과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헌법적 이상에 부응하며 아직도 우리 사회의 유지수단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고 있을 뿐, 다수의견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회유지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고는 보기 어렵다.

(5) 다수의견은 이 사건 법률조항이 남계혈족만을 기준으로 동성동본인 혈족간의 혼인을 금하고 있으므로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가족법상 전통관습의 법제화라

는 입장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을 둔 것이므로 이를 합리성이 없는 자의적 남녀차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의 친족체계는 남계혈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고

(친족체계가 모계중심으로부터 부계중심으로 전환되어 형성되어 온 것은 인류 공통의 역사이다)

그러한 친족체계가 사회적, 경제적 그 밖의 요인의 변화에 의하여 남녀평등적 또는 여계혈족 중심으로 점차 변하여 갈 수는 있겠지만 오랜 역사에 걸쳐 형성되어 온 현재의 가족관계를 단순한 논리만으로서 평가하여 하루아침에 변혁시킬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6)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자의적 차별금지의 원칙에 반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거나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헌법 제36조 그밖의 헌법원리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1997. 7. 16.

재판장    재판관 김 용 준

재판관 김 문 희

주 심 재판관 황 도 연

재판관 이 재 화

재판관 조 승 형

재판관 정 경 식

재판관 고 중 석

재판관 신 창 언

재판관 이 영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