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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정보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손해배상(기)(한센병 환자의 국가배상청구 사건)

[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230535 판결]

【판시사항】

[1]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환자로부터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아야 하는지 여부(적극) 및 동의 등의 전제로서 환자에게 설명하여야 할 사항 / 의료행위 주체가 설명의무를 소홀히 하여 환자로 하여금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한 경우,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국가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통제해 온 국립 소록도병원 등에 소속된 의사 등이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을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하기 위한 요건 및 국가가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채 한센인들을 상대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한 경우,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 여부(적극)
[3]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甲 등이 국가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통제해 온 국립 소록도병원 등에 입원해 있다가 위 병원 등에 소속된 의사 등으로부터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음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
[4]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경우 / 장애사유가 소멸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 및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상당한 기간’의 범위

【판결요지】

[1] 환자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의료행위를 선택할 권리를 보유한다. 따라서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환자로부터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아야 하고, 동의 등의 전제로서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환자가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만일 의료행위 주체가 위와 같은 설명의무를 소홀히 하여 환자로 하여금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하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2] 국가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통제해 온 국립 소록도병원 등에 소속된 의사나 간호사 또는 의료보조원 등이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서 그에 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지 아니하였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위와 같은 침해행위가 정부의 정책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여야 하며, 침해행위의 상대방인 한센인들로부터 ‘사전에 이루어진 설명에 기한 동의(prior informed consent)'가 있어야 한다. 만일 국가가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채 한센인들을 상대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였다면 설령 이러한 조치가 정부의 보건정책이나 산아제한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3]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甲 등이 국가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통제해 온 국립 소록도병원 등에 입원해 있다가 위 병원 등에 소속된 의사 등으로부터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음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의사 등이 한센인인 甲 등에 대하여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법률상 근거가 없거나 적법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수술이 행해진 시점에서 의학적으로 밝혀진 한센병의 유전위험성과 전염위험성, 치료가능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한센병 예방이라는 보건정책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 甲 등이 수술에 동의 내지 승낙하였다 할지라도, 甲 등은 한센병이 유전되는지, 자녀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등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동의 내지 승낙한 것으로 보일 뿐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국가는 소속 의사 등이 행한 위와 같은 행위로 甲 등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한 사례.
[4]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한편 채권자에게 위와 같은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에도 채권자는 장애사유가 소멸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원인,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된 사유 및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기까지의 경과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나, 소멸시효 제도는 법적 안정성의 달성 및 증명 곤란의 구제 등을 이념으로 하는 것이므로 적용요건에 해당함에도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한다. 따라서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하고, 특히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는 매우 특수한 개별 사정이 있어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

【참조조문】

[1] 헌법 제10조, 민법 제750조, 제751조
[2] 헌법 제10조, 제12조 제1항, 제17조, 제36조, 제37조 제2항,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민법 제750조, 제751조
[3] 헌법 제10조, 제12조 제1항, 제17조, 제36조, 제37조 제2항,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민법 제750조, 제751조, 구 전염병예방법(1963. 2. 9. 법률 제127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9조(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1조 제1항 참조), 구 전염병예방법(1976. 12. 31. 법률 제299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1항(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제2호, 제3호, 제4호 참조), 제29조 제2항(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1조 제3항 참조),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1979. 6. 21. 보건사회부령 제62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6조(현행 삭제), 구 모자보건법(1986. 5. 10. 법률 제3824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8조 제1항 제2호(현행 제14조 제1항 제2호 참조),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4] 민법 제2조, 제162조, 제166조, 제766조 제1항

【참조판례】

[1] 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공2009상, 849) / [4]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공2011하, 1515),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공2013하, 1077)


【전문】

【원고, 피상고인】

별지 원고 명단 기재와 같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화우 외 4인)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최상철 외 5인)

【원심판결】

광주고법 2014. 10. 22. 선고 2014나11542 판결

【주 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가.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였다.
(1) 1873년경 한센균이 발견된 이래 1900년대 초반에 이미 한센병은 유전병이 아니라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보편적으로 알려졌다. 한센병은 1941년 특효약 답손(DDS)이 발명된 이후 완치가 가능한 질병으로 분류되었고, 국내에 답손(DDS) 치료기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1950년대 초반부터 한센병은 완치가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1980년대부터는 2~3종의 약을 복합적으로 단기간 내에 강력하게 투여하는 MDT(multidrug therapy, 답손, 크로파지민, 리팜피신 등의 약을 병용하여 치료하는 복합화합요법)를 사용하여 대부분 완치되고 있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한센인들에 대한 강제격리정책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피고도 1954년에 전염병예방법을 제정하면서 한센병을 비교적 전염력이 낮은 제3종 전염병으로 분류하면서도 다른 제3종 전염병인 결핵이나 성병 등과 달리 한센병에 대하여는 강제격리정책을 유지해 왔다. 이는 한센병이 다른 전염병과 달리 외모에 변형이 생기고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심하다는 이유에 기인한 것이다.
(2) 한센병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발병하고, 한센병 환자들의 교육수준은 낮은 편으로 대부분 무학이거나 초등학교 졸업자였으며, 직업도 대부분 무직이거나 농업, 수산업 종사자들이었다. 따라서 한센인들 스스로 한센병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거나 인권 관련 교육을 받을 기회는 사실상 없었고, 정보나 교육의 제공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대부분 수용시설에서 피고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3) 피고는 한센인들에게 막연히 한센병은 치유된다고만 교육하였을 뿐 한센인들을 사실상 강제적으로 격리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1954. 2. 2. 법률 제308호로 제정되어 1957. 2. 28. 시행된 구 전염병예방법 제29조는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수용을 명시하고 있었고, 이후 개정된 구 전염병예방법(1963. 2. 9. 법률 제1274호로 개정되어 1963. 3. 12. 시행된 것)은 이를 완화하여 한센병 환자 중 주무부령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격리수용하는 것으로 규정하였으나(제2조 제1항, 제29조 제2항), 주무부령인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1977. 8. 19. 보건사회부령 제570호로 제정된 것)은 제16조에서 한센병 환자 중 ‘자가치료를 함으로써 타인에게 전염시킬 우려가 있는 자’ 또는 ‘부랑·걸식 등으로 타인에게 전염시킬 우려가 있는 자’를 강제격리수용의 대상이 된다고 규정함으로써 한센병 환자는 대부분 강제적인 격리수용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피고의 정책 등으로 인하여 한센인 스스로도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한 질환으로서 특히 자식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심지어는 유전될 수 있다고 오해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정책은 일반인으로 하여금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함과 아울러 한센인들에게는 열등감과 외부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4) 피고는, 피고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통제해 온 국립 소록도병원, 익산병원(소생원), 부산용호병원(상애원), 안동성좌원, 칠곡병원(애생원) 등(이하 ‘피고 산하 병원 등’이라고 한다)에서 남녀를 엄격히 구분하여 수용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1949년 무렵부터 일제강점기에 시행하던 것과 같이 정관절제수술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부부동거를 허용하였는데, 한센병 환자에 대하여 정관절제수술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부부사(夫婦舍)를 제공하는 정책은 1990년대까지도 유지되었기 때문에 부부동거를 원하는 남성은 정관절제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5) 피고 산하 병원 등에서 임신과 출산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정책 역시 1990년대까지 유지되어 임신한 여성이 굳이 출산을 원한다면 퇴원하여야 했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낮고 장기간 수용생활을 한 한센인들로서는 갑작스럽게 퇴원하여 정착촌이나 일반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자립능력이 부족했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상존하는 외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큰 데다 기존의 생활터전을 잃는다는 상실감도 있었기 때문에 퇴원을 선택하기 힘들었고, 퇴원을 원하지 않는 임신 여성은 결국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6) 원고들은 모두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들로서, 피고 산하 병원 등에 입원해 있다가 1950년경부터 1978년경까지 사이에 피고 산하 병원 등에 소속된 의사나 간호사 또는 의료보조원 등(이하 ‘피고 소속 의사 등’이라고 한다)으로부터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7) 2007. 10. 17. 법률 제8644호로 제정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한센인피해사건법’이라고 한다)에 따라 설치된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는 원고들이 피고 산하 병원 등에서 격리수용되어 있는 기간 동안 피고 소속 의사 등으로부터 강제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들을 같은 법에서 정한 한센인피해사건의 피해자로 결정하였다.
 
나.  원심은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1973. 2. 8. 법률 제2514호로 제정된 구 모자보건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한센인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가 있으면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으나 위 법 시행 전에는 피고가 한센인에 대하여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할 법률상 근거가 없었고, 한편 위 법에는 특정 질환자에 대하여 불임수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조항이 있었으나 위 조항에 따라 정관절제수술이 시행되었다는 점에 관해서는 아무런 주장·증명이 없다고 전제한 다음, 나아가 피고 소속 의사 등이 원고들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서까지 강제적으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우나, 설령 피고 소속 의사 등이 원고들의 명시적 혹은 묵시적 동의 또는 승낙하에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동의나 승낙이 위와 같은 한센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한센인들이 처해있던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환경, 한센병에 관한 한정된 정보 등에 기한 것이라면 이를 한센인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결국 피고가 원고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이 사건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표면적인 동의에도 불구하고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어서 원심은, 피고 소속 의사 등이 원고들에 대하여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한 것은 헌법상 보장된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 것으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다.  (1) 환자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의료행위를 선택할 권리를 보유한다. 따라서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환자로부터 그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아야 하고, 그 동의 등의 전제로서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만일 의료행위 주체가 위와 같은 설명의무를 소홀히 하여 환자로 하여금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하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피고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서 그에 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지 아니하였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위와 같은 침해행위가 정부의 정책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여야 하며, 침해행위의 상대방인 한센인들로부터 ‘사전에 이루어진 설명에 기한 동의(prior informed consent)'가 있어야 한다. 만일 피고가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채 한센인들을 상대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였다면 설령 이러한 조치가 정부의 보건정책이나 산아제한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2)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원심이 설시한 바와 같이 피고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인 원고들에 대하여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 등은 법률상의 근거가 없거나 그 적법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이 사건 수술이 행해진 시점에서 의학적으로 밝혀진 한센병의 유전위험성과 전염위험성, 치료가능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한센병 예방이라는 보건정책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그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 등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 설령 원고들이 위와 같은 수술에 동의 내지 승낙하였다 할지라도, 원고들은 한센병이 유전되는지, 자녀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등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동의 내지 승낙한 것으로 보일 뿐 그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는 그 소속 의사 등이 행한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옳다.
같은 취지의 원심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가.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등 참조).
한편 채권자에게 위와 같은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에도 채권자는 그러한 장애사유가 소멸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원인,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된 사유 및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기까지의 경과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나, 소멸시효 제도는 법적 안정성의 달성 및 증명 곤란의 구제 등을 이념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적용요건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한다. 따라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하고, 특히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는 매우 특수한 개별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한센인피해사건법에 따라 2010. 6. 24.부터 2012. 6. 27.까지 사이에 원고들에 대한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진 사실, 그런데 원고들에 대한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인 2009. 8. 6. 이미 한센인피해사건법에 보상금 지급규정 등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가 제18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사실, 위 법률에 따라 설치된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도 2013년경에 발행한 보고서에서 한센인피해사건법의 개정 등을 통한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을 촉구한 사실 등을 인정하였다.
이를 기초로 하여 원심은, 한센인피해사건법에 의한 피해자 결정을 받은 원고들에게는 그 결정 시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한 다음, 나아가 원고들이 피고의 입법적 조치를 통한 피해보상 등을 기대하였으나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자 비로소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사정이 있으므로,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 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소멸시효 완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 지] 원고 명단: 생략]

대법관 박병대(재판장) 박보영 권순일(주심) 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