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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정보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살인

[대전지법 2006. 10. 18. 선고 2006고합102 판결 : 항소]

【판시사항】

[1]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요건으로서 침해나 위난의 현재성 여부의 판단 방법
[2] 평소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이나 학대를 당해오던 피고인이 잠자고 있는 남편을 살해한 사안에서, 살해 당시 객관적으로도 피고인 등의 법익에 대한 침해나 위난이 현존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의 성립을 부정한 사례

【판결요지】

[1]
형법 제21조 제1항에 규정된 정당방위로 인정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고,
형법 제22조 제1항에 규정된 긴급피난으로 인정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이 있어야 하며, 위와 같은 침해나 위난의 현재성 여부는 피침해자의 주관적인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이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어떤 행위의 위법성을 예외적으로 소멸시키는 사유라는 점에 비추어 그 요건으로서의 침해나 위난의 현재성은 엄격히 해석·적용되어야 한다.

[2] 평소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이나 학대를 당해오던 피고인이 잠자고 있는 남편을 살해한 사안에서, 사회심리학자의 견해(이른바 ‘학대나 폭력의 지속적인 재경험’)나 오랜 기간 동안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려온 피고인의 특별한 심리상태를 수긍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살해 당시 객관적으로도 피고인 등의 법익에 대한 침해나 위난이 현존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의 성립을 부정한 사례.

【참조조문】

[1]
형법 제21조 제1항,
제22조 제1항
[2]
형법 제21조 제1항,
제22조 제1항,
제250조 제1항


【전문】

【피 고 인】

【검 사】

이영철

【변 호 인】

변호사 박범계

【주 문】

피고인에 대한 형을 징역 3년으로 정한다.
이 판결 선고 전의 구금일수 195일을 위 형에 산입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5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피고인에게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한다.
압수된 아령 1개(증 제1호)를 몰수한다.

【이 유】

【범죄사실】

피고인은 1976년경부터 남편인 피해자 공소외 1(48세)과 동거하다가 1984년경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함께 생활하여 왔는데, 상당한 기간 동안 사소한 정도의 부부싸움의 수준을 넘어 피해자로부터 가끔씩 심한 폭행이나 학대를 당해 오던 중,
2006. 4. 6. 00:00경 대전 유성구 (상세 주소 생략)(피고인의 집)에서, 술에 취해 귀가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욕설을 하면서 손바닥으로 피고인의 가슴을 밀치고 안방으로 도망가는 피고인을 쫓아가 다시 손바닥으로 피고인의 가슴을 밀어 침대에 넘어지게 하고 그곳에 있던 애완견을 들어 피고인의 얼굴에 집어던지고, 계속하여 피해자의 폭행을 피하기 위하여 애완견을 안고 안방 화장실로 숨어들어가 문을 잠근 피고인에게 피해자가 “문 열어”라고 소리치며 화장실 문을 두드리면서 “너 이년아. 너 거기 숨어있는 거 다 안다. 공소외 2(장인) 그 개자식하고 그 황가년(장모)하고 다리 한 짝 없는 니 오빠, 그 병신새끼하고 내일 꼭 죽이겠다. 씨부랄년, 개같은 년, 젖탱이도 한 짝 없는 년, 지 몫도 못 타오는 년, 거머리처럼 붙어서 내 피나 빨아먹는 년.”이라는 등으로 한참 동안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폭언을 거듭하자, 평소 피해자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이나 학대를 당해오면서 형성된 만성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중등도의 우울증 및 충동조절의 장애 등으로 말미암아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같은 날 02:00경 피해자가 욕설을 하지 아니하고 집 안이 조용해지자 안방 화장실에서 나와 안방 문 앞에서 거실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거실에 있는 소파 위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잠자고 있는 피해자를 본 순간 피해자를 향한 그간의 분노감이나 적대감이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한데다가 피해자가 이제는 자신의 친정 식구들마저도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느닷없이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소파 옆 마룻바닥에 놓여있던 철제 아령 1개(증 제1호)를 두 손으로 집어들고 피해자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피해자의 왼쪽 머리 부분을 3회 가량 힘껏 내리쳐 피해자를 두개골 함몰 분쇄골절상 등으로 즉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방법으로 살해하였다.

【증거의 요지】

1. 피고인과 증인 공소외 3, 4, 5가 이 법정에서 한 각 진술 
1.  검사가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
 
1.  검사가 작성한 공소외 4에 대한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1.  의사 김용섭이 작성한 시체검안서와 의사 강신몽, 김재권이 공동으로 작성한 부검감정서의 각 기재
 
1.  치료감호소장이 작성한 정신감정결과 통보의 기재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 법조와 형의 선택
형법 제250조 제1항(유기징역형 선택)
 
2.  법률상 감경
형법 제10조 제2항, 제1항, 제55조 제1항 제3호(심신미약자)
 
3.  미결 구금일수의 산입
형법 제57조
 
4.  집행 유예
형법 제62조 제1항(아래의 ‘양형의 이유’ 참조)
 
5.  보호관찰
형법 제62조의2 제1항, 제2항 본문
 
6.  몰수
형법 제48조 제1항 제1호

【변호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

1. 변호인의 주장
변호인은, 피고인이 당시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극도의 공포와 흥분 등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므로, 형법 제21조 제3항 등에 의하여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를 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2.  판 단 
가.  형법 제21조 제1항에 규정된 정당방위로 인정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고, 형법 제22조 제1항에 규정된 긴급피난으로 인정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이 있어야 하며, 위와 같은 침해나 위난의 현재성 여부는 피침해자의 주관적인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이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어떤 행위의 위법성을 예외적으로 소멸시키는 사유라는 점에 비추어 그 요건으로서의 침해나 위난의 현재성은 엄격히 해석·적용되어야 한다. 비록 이 사건에서 변호인이 내세우는 바와 같은 사회심리학자의 견해(이른바 ‘학대나 폭력의 지속적인 재경험’)나 오랜 기간 동안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려온 피고인의 특별한 심리상태를 수긍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범행 당시 객관적으로도 피고인 등의 법익에 대한 침해나 위난이 현존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를 전제로 하여 이러한 위법성 소멸사유를 내세우는 듯한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  위와 같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으로 인정될 만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상(즉, 객관적으로 볼 때 침해나 위난의 현재성을 인정할 수 없는 이상), 과잉방위( 형법 제21조 제2항)나 과잉피난( 형법 제22조 제3항, 제21조 제2항)을 인정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살해할 의도로 피해자를 때려 즉사하게 한 행위를 과잉방위나 과잉피난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 2001. 5. 15. 선고 2001도1089 판결 참조). 따라서 이를 전제로 하여 형법 제21조 제3항, 제22조 제3항 등에 터잡아 책임 소멸사유를 내세우는 듯한 변호인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다.  한편, 이른바 오상방위나 오상과잉방위에도 형법 제21조 제3항이 적용 또는 유추적용된다고 볼 만한 근거를 찾아 볼 수 없으므로, 오상방위나 오상과잉방위에도 형법 제21조 제3항이 적용됨을 전제로 하는 듯한 변호인의 주장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양형의 이유】

고귀한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엄벌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피고인에 대한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피고인은 초범이고, 10여 년 동안 지속적이면서도 일방적으로 피해자로부터 당해 온 가정폭력이나 학대 때문에 형성된 ‘중등도 우울증 에피소드’ 또는 그로 인한 충동조절의 장애 등으로 말미암은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인정된다.
② 피고인의 이러한 정신장애 때문에 피고인에 대한 교정이나 피고인의 원만한 사회복귀를 위하여는 엄정한 형의 부과 못지않게, 피고인에 대하여 꾸준하고도 적절한 정신과 치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③ 피고인과 피해자 슬하의 두 자녀들은 이렇듯 비극적이고도 엄청난 결과가 초래된 데에는 피해자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나 잘못이 있다는 점을 공감하면서, 자신들에게는 피해자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어머니)인 피고인의 갱생과 조속한 가정 복귀를 소망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렇듯 불행한 결과의 피해자 측이기도 한 자녀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피고인에 대한 징역형을 즉시 집행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피해자의 누나로서 피고인의 시누이이기도 한 공소외 6은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이 조속히 가정으로 복귀하여 불쌍한 자녀들을 위하여 이제부터라도 어머니 노릇을 제대로 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피력한 바 있다.).
④ 이 법원의 심리결과,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배려, 피고인의 재활의지 등과 더불어 피고인에 대하여 적절한 입원치료 등이 병행된다면 피고인에 의해 혹시 저질러질지도 모를 재범의 위험이나 자살의 위험은 현저히 줄어들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⑤ 따라서 피고인을 지금 당장 가족들로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격리하기보다는, 가정과 사회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배려하는 것이 피고인 본인은 물론 그 자녀들에게도 보탬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판사 박관근(재판장) 김세용 장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