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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정보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살인

[서울고등법원 2016. 9. 13., 선고, 2016노562, 판결]

【전문】

【피 고 인】

【항 소 인】

피고인

【검 사】

박철완(기소), 박철완, 이계한(공판)

【변 호 인】

변호사 오병주 외 3인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1. 29. 선고 2011고합1600 판결

【주 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유】

Ⅰ 항소이유의 요지
1. 법리오해
 
가.  공소시효 완성 주장
피고인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류상으로만 기소를 하더라도 이는 부적법한 기소로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는 대한민국 관할권 내에 피고인의 신병이 확보된 때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이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나.  공소권 남용 주장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뚜렷한 새로운 증거의 수집 없이 이 사건 공소를 제기한 것은 소추재량권을 일탈한 것으로서 공소권의 남용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이다.
 
다.  확정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동일사건에 해당한다는 주장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에 대하여 판결이 확정된 범죄사실과 시간적, 공간적 범위가 동일하거나 그 안에 포함되어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다. 또 피고인에 대하여 유죄가 선고된 증거인멸죄의 경우 그 객체가 된 증거가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위 확정판결에서 피고인이 살인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규범적 판단이 이미 내려진 셈인데, 확정판결의 효력은 현실적 심판대상인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 뿐 아니라 잠재적 심판대상이 되는 사실에도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위 확정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새로이 공소제기를 하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하여 위법하다.
2. 사실오인
피고인은 피해자 공소외 6(이하 ‘피해자’라고만 한다)을 살해하지 않았고, 공소외 1과 살인을 공모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원심은 사실을 오인하여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는 위법을 범하였다.
3. 양형부당
원심이 선고한 형(징역 20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Ⅱ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1. 법리오해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인과 변호인은 원심에서 이 부분 항소이유와 같은 주장을 하여 원심은 판결문에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에 관한 판단”이라는 제목 아래 ‘1.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여부’, ‘2. 공소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3. 확정판결의 효력이 이 사건 공소사실에 미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자세하게 설시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였는바,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을 기록과 대조하여 면밀히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공소시효의 완성시점이나 검사의 소추재량권의 범위 또는 확정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 법리오해에 관한 피고인의 여러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2. 사실오인 주장에 대한 판단
 
가.  피해자를 칼로 찌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1) 판단의 기본방향
피해자는 피고인과 공소외 1만 있던 화장실에서 칼에 찔려 사망하였으므로, 피고인이나 공소외 1이 아닌 제3자가 피해자를 살해하였을 가능성은 없다. 피고인과 공소외 1은 서로 상대방이 피해자를 칼로 찔렀고, 자신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므로, 결국 피고인과 공소외 1 중 피해자를 칼로 찌른 사람이 누구인지 확정하기 위해서는 범행을 목격하였다는 피고인의 진술과 공소외 1의 진술 중 어느 쪽의 진술에 다른 쪽의 진술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배척할 만큼 충분한 신빙성이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피고인과 공소외 1 모두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일정 범위에서 허위 진술을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므로, 어느 쪽의 진술이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객관적 사실관계에 더 부합하는 논리적 개연성이 있는지, 그러한 객관적 사실관계에 비추어 해소되기 어려운 논리적 모순점은 없는지를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2) 범행 당시 상황에 관한 피고인과 공소외 1의 진술 요지
피고인의 진술에 따른 범행 당시 상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공소외 1을 따라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기 오른쪽 부분과 왼쪽 벽 사이에 기대 서 있었다. 공소외 1이 대변기 문을 열어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소변을 보고 있는 피해자의 오른쪽 목 부위를 칼로 찔렀다. 피해자가 왼손으로 상처 부위를 감싸며 돌아서자 공소외 1이 피해자의 가슴 부위를 찔렀고, 다시 왼쪽 목 부위를 찌른 다음 칼을 바닥에 버리고 화장실을 나갔다. 이후 피해자가 피고인 쪽으로 다가와 피고인은 세면대 오른쪽 부분에 등을 기댄 채 서서 두 손으로 피해자를 밀친 다음 바닥에 떨어진 칼을 들고 화장실을 나왔다.
반면 공소외 1의 진술에 따른 범행 당시 상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공소외 1은 화장실 세면기 앞에서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보았는데 피고인이 대변기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나오더니 갑자기 피해자의 오른쪽 목을 칼로 찔렀다. 놀란 공소외 1이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서 보니, 피해자가 돌아서서 피고인을 때리려는 순간 피고인이 이를 피하면서 피해자의 몸 부위와 왼쪽 목 부위를 계속 찔렀다. 이후 피고인이 공소외 1을 밀치면서 화장실을 빠져나갔고, 피해자가 구석부분에 쓰러질 때 공소외 1도 화장실을 나왔다.
(3) 범행 당시 상황에 관한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
위와 같은 범행 당시 상황에 관한 피고인과 공소외 1의 각 진술은 우선 목격자의 위치에 관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즉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은 세면기 오른쪽 부분과 벽 사이에 있었다는 것이고, 역시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공소외 1은 세면기 앞쪽 부분에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목격자의 행위에 관한 부분도 일부 차이가 있는데,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는 양쪽 목 부위와 몸통에 여러 차례 칼에 찔린 뒤 목격자인 피고인 쪽으로 왔고, 피고인은 양손으로 피해자를 밀친 다음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 화장실 밖으로 나온 반면, 공소외 1의 진술에 따르면 목격자인 공소외 1은 가해자가 화장실 밖으로 나간 다음 별다른 행위 없이 그대로 화장실을 나온 셈이 된다.
그런데 위 공소외 1의 범행 당시에 관한 진술은 범행 현장에 남은 혈흔에 비추어 보더라도 논리적 개연성에 특별한 문제점이 없는 반면, 피고인의 범행 당시에 관한 진술은 범행 현장에 남은 혈흔에 비추어 볼 때 쉽사리 해소되기 힘든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우선 세면대 위 오른쪽 부분과 세면기 안쪽 부분에 피가 묻어 있고, 그 피의 양이나 묻어 있는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범행 후 피해자가 화장실 왼쪽 구석 쪽으로 쓰러지기 전에 세면대 오른쪽 부분을 짚고 있는 상태에서 흘러내린 피가 묻은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의 진술과 같이 피고인이 목격자로서 피해자가 칼에 여러 차례 찔리는 동안 세면대 오른쪽과 벽 사이에 서 있다가 세면대 오른쪽에 기대어 피해자를 밀쳤다면, 세면기 위에 그와 같은 많은 양의 피가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피고인의 진술과 같이 피고인이 범행 당시 세면대 오른쪽과 벽 사이에 서 있었다면 피고인의 몸에 가려 피가 묻지 않은 부분(outline void pattern)이 있어야 함에도 실제로는 왼쪽 소변기부터 세면대까지 이르는 벽에 그러한 빈 부분이 없이 핏자국이 죽 이어져 있다.
피고인의 진술과 이러한 현장의 혈흔이 서로 모순되지 않으려면 피고인으로부터 밀쳐진 피해자가 피고인이 그 자리를 비킨 뒤 다시 세면기 쪽으로 다가와 세면기를 짚었어야 하는데, 부검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14%에 이를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급소를 9차례나 칼에 찔리면서 오른쪽 목 동맥가지와 왼쪽 목 동맥, 정맥이 각 절단되어 다량의 출혈을 일으켰고, 피고인의 경찰 진술(증거기록 75쪽)에 의하더라도 강하게 밀침을 당한 피해자가 다시 몸을 일으키거나 추스르고 세면대까지 올 수 있었을 것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한편 화장실을 누가 먼저 나갔는지에 관하여도 앞에서 본 것처럼 피고인과 공소외 1의 진술에 차이가 있지만, 피고인과 공소외 1 모두 가해자가 화장실을 먼저 나갔다는 점에서는 그 진술이 일치하고 있으므로, 화장실에서 누가 먼저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면 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중요한 준거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공소외 7은 수사기관에서 ‘공소외 1이 화장실에서 먼저 나오고, 이후 피고인이 나왔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증거기록 782쪽, 856쪽). 그러나 공소외 7은 그와 같이 목격한 경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친구 공소외 8과 같이 있다가 공소외 9가 와서 4층으로 올라가자고 하여 입구에 들어갈 때 공소외 1을 먼저 보고 그 이후에 피고인을 보게 되었다’라고 진술하였는데(증거기록 783쪽),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범행 이후에 비로소 공소외 9가 당시 ○○○ 가게 바깥쪽 발코니에 있던 일행들에게 △△△△△로 올라가자고 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공소외 7이 피고인이나 공소외 1이 범행직후 화장실에서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였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 공소외 9 역시 수사기관에서 공소외 1이 먼저 화장실에서 나왔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나(증거기록 272쪽), 선행 사건의 법정에서는 ‘담배 피우던 친구들과 △△△△△로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화장실에서 먼저 나왔는지 보지 못하였다’고 진술한 점(증거기록 391쪽)에 비추어 볼 때 공소외 9의 수사기관 진술은 믿기 어렵다.
오히려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이 공소외 3을 앞질러서 △△△△△로 가장 먼저 올라간 점, 공소외 1이 △△△△△로 올라가고 있던 공소외 9 일행을 뒤늦게 앞지른 점, 범행도구인 칼을 들고 범행장소인 화장실에서 나온 피고인 입장에서 범행을 부인하려면 반드시 피고인이 늦게 나온 것이 되어야만 하는 반면 공소외 1의 경우 범행을 부인하기 위해서 굳이 화장실에서 나온 순서에 대하여 허위로 진술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점을 종합하여 보면 공소외 1의 진술대로 피고인이 먼저 화장실에서 나오고, 그 다음에 공소외 1이 화장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범행 당시에 관한 각 진술과 범행현장의 혈흔이나 범행장소에서 나온 순서 등 객관적 사실관계를 비교해 보면, 피고인이 범행을 목격하였다는 진술은 이를 믿기 어렵고, 공소외 1이 범행을 목격하였다는 진술에 신빙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4) 범행 이후의 정황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범행 이후 정황은 다음과 같다.
① 피고인은 곧바로 4층 △△△△△로 올라갔고, 계단에서 먼저 올라가고 있던 공소외 3을 앞질렀다. 피고인은 △△△△△ 화장실에서 머리, 얼굴, 손에 묻은 피를 씻었고, 피가 묻은 셔츠를 벗어서 공소외 7에게 주고 공소외 3이 준 셔츠로 갈아입었으며, 공소외 3의 검은색 모자를 썼다.
② 공소외 9는 바깥쪽 발코니로 가서 그곳에 있던 피고인의 여자친구 공소외 5, 공소외 7, 공소외 8 등에게 함께 가자고 하여△△△△△로 올라갔는데, 올라가는 중에 공소외 1이 위 공소외 9 등을 앞질러 △△△△△로 올라갔다.
③ 공소외 1은 △△△△△ 홀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던 공소외 2, 공소외 9에게 다가가 웃으면서 ‘우리가 재미로 어떤 남자를 찔렀다(We just stabbed some dude in ○○○ for the fun of it)'고 말하였고, 자신의 셔츠에 핏방울이 묻은 것을 불평하기도 하였다.
④ 피고인은 △△△△△ 화장실에서 나와 공소외 5에게 함께 나가자고 하였으나 공소외 5는 피고인에게서 피냄새가 난다며 거절하였고, 피고인은 공소외 3, 공소외 7, 공소외 8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와 미군기지로 갔다.
⑤ 공소외 1은 피해자가 칼에 찔린 것을 확인하고 다시 △△△△△로 올라온 공소외 2로부터 ’네가 죽였지‘라며 추궁을 당하자 ’내가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범행을 부인하였고, 신고를 받고 구급차가 현장에 출동하였을 무렵 건물 밖으로 나와 여자친구인 공소외 4의 집으로 가서 공소외 4에게 ’화장실에서 피고인이 한국남자를 칼로 찔렀다‘고 말하였다.
⑥ 미군기지 영내에서 공소외 3은 공소외 7이 가지고 있던 피고인의 피 묻은 셔츠를 불태웠고, 피고인은 공소외 11과 자신의 피 묻은 바지를 바꿔 입은 다음 범행에 사용된 칼을 그곳 하수구 도랑에 버렸다. 기지 내 공소외 12에서 피고인은 피해자가 죽은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듣고 양손으로 머리를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공소외 5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서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며, 다음날 공소외 3으로부터 누가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서도 아무 말 하기 싫다며 답변을 회피하였다.
(5) 범행 이후 정황에 비추어 본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
위와 같은 범행 이후 정황에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역시 피고인이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공소외 1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 공소외 1의 경우 상의 외에 다른 곳에 피해자의 피가 묻었음을 알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반면, 피고인은 양손, 머리, 상의, 하의 등 온몸에 피해자의 피가 많이 묻었다. 피고인은 칼에 찔린 피해자가 자신 쪽으로 와 피해자를 밀치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피가 묻었다고 변명하나, 앞의 (3)항에서 살핀 바와 같이 범행 현장에 남은 혈흔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위와 같은 변명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 공소외 1이 자신에게 묻은 피해자의 피를 닦으려는 행동을 취하였음을 알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오히려 공소외 2와 공소외 9에게 범행을 자랑하면서 피해자의 피가 묻은 셔츠를 보여주기도 하였고, 자신의 말을 들은 공소외 2가 ○○○에 내려가서 피해자를 확인하고 다시 올라와 추궁할 때까지 범행장소와 같은 건물 4층에 있는 △△△△△에서 나가려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다. 이러한 범행 후 공소외 1의 태도는 직전에 같은 건물 1층에서 칼로 피해자를 9차례나 찔러 살해한 사람의 태도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반면 피고인은 범행현장인 ○○○ 화장실에서 나와 곧바로 4층 △△△△△ 화장실로 가서 머리와 얼굴, 양손에 묻은 피를 씻고, 피가 묻은 셔츠를 갈아입고 모자까지 빌려 쓴 다음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시간을 보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피고인의 행동은 직전에 칼로 피해자를 9차례나 찔러 살해한 다음 그 과정에서 몸에 묻은 피해자의 피를 닦아내고 최대한 빨리 범행 현장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라면 취할 것으로 기대되는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보인다.
㉰ 피고인은 공소외 3이 피고인의 피 묻은 셔츠를 불태우는 것을 내버려 두었고, 범행 도구인 칼을 하수구 도랑에 버리는 등 범인이 범행 후 증거를 인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을 취하였다.
반면 공소외 1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공소외 4를 만나러 갔고, 이후 집으로 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두어 어머니가 세탁하도록 하게끔 한 것 외에는 범행 후 증거인멸로 평가할 만한 별다른 행동을 취한 바 없을 뿐 아니라, 피고인의 진술에 따를 경우 공소외 1은 범행 도구인 칼을 피해자 옆에 내버려 둔 채 범행 현장을 이탈한 셈이 되는데, 공소외 1이 피해자를 칼로 9차례나 찔렀다면 이러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공소외 1은 △△△△△에서 범행 현장을 확인하고 이를 추궁하는 공소외 2에게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범행을 부인하였고, 곧바로 공소외 4에게 가서 피고인이 칼로 찔렀다고 말하였다. 반면 피고인은 △△△△△에서 여자친구인 공소외 5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다가 피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음에도 자신의 무고함을 설명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여자친구인 공소외 5나 가장 친한 친구인공소외 3으로부터 질문을 받고서도 자신이 아니라 공소외 1이 범인이라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피해자를 칼로 찌른 사람이 공소외 1이라면 현장에 같이 있던 피고인으로서는 억울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피고인이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6)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에 대한 평가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 통보지(증거기록 822쪽)의 기재에 의하면 1997. 4. 23. 피고인과 공소외 1에 대하여 실시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피고인의 범행 부인 진술에 대하여는 거짓으로 진단할 수 있는 특이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반면, 공소외 1의 범행 부인 진술에 대하여는 거짓으로 진단할 수 있는 현저한 반응이 나타난 것으로 되어 있음은 알 수 있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가 항상 진실에 부합한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검사를 받는 사람의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정황증거로서의 기능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므로(대법원 1987. 7. 21. 선고 87도968 판결 등 참조), 그와 같은 검사결과만으로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범행 당시의 상황이나 범행 이후 정황에 부합하는 공소외 1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
(7) 피해자를 칼로 찌른 사람의 확정
결국 앞의 (3)항, (5)항에서 살핀 바와 같이 범행 당시의 상황이나 범행 이후의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공소외 1의 목격진술에 신빙성이 있으므로, 피고인이 칼로 피해자를 찔러 살해하였음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
 
나.  피고인이 공소외 1과 범행을 공모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범행 전 ○○○에서 피고인이 소지하고 있던 칼을 꺼내어 햄버거를 자르는 데 사용함으로써 피고인이 칼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소외 1이 피고인에게 ‘아무나 칼로 찔러봐라’라고 말한 사실, 피해자가 화장실로 들어간 뒤 곧바로 공소외 1과 피고인이 함께 피해자를 따라서 화장실로 들어간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스스로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공소외 1은 피고인이 칼로 피해자를 여러 차례 찌르는 것을 보면서도 이를 제지하거나 피해자를 구호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앞에서 본 것처럼 범행 직후 공소외 1은 친구들에게 ’우리가 재미로 어떤 남자를 칼로 찔렀다‘라며 범행 사실을 과시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범행 전후 공소외 1의 행동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공소외 1과 공모한 데 따른 것임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
 
다.  소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고,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사실오인의 잘못이 없다.
3.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
이 사건 범행은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에 발생하였다. 당시 22세의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을 젊은 나이에 잃게 되었고, 피해자의 시간은 1997. 4. 3. 22:05경 영원히 멈추었다. 피해자는 칼로 9차례나 양쪽 목, 가슴 부위를 찔려 목 부위 동맥과 정맥이 절단됨에 따른 과다출혈로 사망하였는데, 사망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피해자의 가족은 피해자가 위와 같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것으로 인하여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오늘까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피해자가 더 이상 그들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슴 아픈 현실을 끊임없이 마주하며 고통 속에 지내왔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범행 직전에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있게 되었을 뿐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고, 피해자는 피고인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만한 원한은커녕 어떠한 잘못도 피고인에게 저지른 바 없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별다른 이유 없이 무고한 피해자를 위에서 본 것처럼 참혹하게 살해하였다.
피고인에게는 범행을 자백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침으로써 피해자 가족의 용서를 조금이라도 빌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범행 현장에 자신과 공범인 공소외 1만이 있었음을 기화로 범행의 책임을 공소외 1에게 떠넘기고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행태를 보였고,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가 누리지 못한 19년의 삶을 고스란히 살아 이제는 성인이 되어 본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당심에 이르기까지 진심으로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억울함만을 강변하는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범행 이후 20년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입은 피해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피고인에 의하여 취해진 바 없다.
이러한 이 사건 범행의 동기와 경위,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을 고려하면, 비록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만 18세 미만의 소년이었고, 공소외 1의 부추김에 의하여 충동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되었으며, 과거 증거인멸죄 등으로 1년 이상 복역하고, 미국으로부터 송환되는 과정에서 4년 이상 구금되어 있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심이 피고인에 대하여 무기징역형을 선택하고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에 따라 형을 완화하여 징역 20년의 형을 선고한 것이 피고인의 책임 정도에 비하여 지나치게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Ⅲ 결론
따라서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다만 원심판결 40쪽 밑에서 4, 5째 줄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여’는 ‘피고인이 이를 거부하여’의, 44쪽 밑에서 5째 줄 ‘피해자에게 거짓 반응이 나타나고’는 ‘공소외 1에게 거짓 반응이 나타나고’의 각 오기임이 명백하므로, 형사소송규칙 제25조 제1항에 따라 이를 각 직권으로 경정한다)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윤준(재판장) 이현석 이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