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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어음금

[대법원 1985. 11. 12. 선고 84다카2046 판결]

【판시사항】

이혼한 모의 자에 대한 후견순위

【판결요지】

부모가 이혼한 때에는 그 모는 전혼인중에 출생한 자의 친권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나
민법 제932조가 규정하는 직계혈족으로서 삼촌이내의 방계혈족보다는 선순위로 후견인이 될 수 있다.

【참조조문】

민법 제932조,
제909조 제5항


【전문】

【원고, 피상고인】

황정순

【피고, 상고인】

【원심판결】

광주지방법원 1984.9.18. 선고 84나263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 유】

1. 먼저 피고 법정대리인의 상고이유 제2점을 본다.
원심은, 피고의 법정대리인인 법정후견인은 그 생모인 소외 1이고 소외 배운기가 아니므로 법정후견인 배운기를 소외 1으로 정정하여 달라는 원고 주장에 대하여 판단하기를, 그 채택한 증거에 의하여, 피고는 혼인한 소외 2와 소외 1 사이에 1973.10.19 출생한 자인데 소외 1은 1981.5.14 소외 2와 이혼하여 그 가에서 제적되었고, 소외 2는 1982.8.24피고의 후견인을 지정함이 없이 사망하여 피고가 그 단독재산상속인이 되었으며, 피고의 배우자나 직계혈족은 없고 그 백부가 위 배운기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소외 1은 망 소외 2와 이혼한 이상 피고의 친권자가 될 수 없고 피고의 법정후견인은 위 배운기라 할 것이라 하여 위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이혼한 때에는 그 모는 전혼인중에 출생한 자의 친권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나( 민법 제909조 제 5 항), 민법 제932조가 규정하는 직계혈족으로서 삼촌이내의 방계혈족 보다는 선순위로 후견인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 원심이 피고의 배우자나 생모인 소외 1 이외의 직계혈족이 없다고 확정하면서도 삼촌인 배운기를 정당한 법정후견인으로 보고 피고 법정대리인의 표시정정을 허용하거나 그 법정대리권의 보정들을 명함이 없이 이 사건 소송절차를 진행한 조처는 결국 미성년자의 법정후견인 및 소송대리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을 저질렀다고 할 것이고 이는 소송촉진등에 관한 특례법 제12조가 규정한 파기사유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이러한 취지를 포함하는 논지는 이유있다.
 
2.  피고 소송대리인의 상고이유와 피고 법정대리인의 상고이유 제1점을 본다.
원심판결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택한 증거를 종합하여, 피고의 망부 소외 2가 1980.10.3 소외 홍정석에게 액면 금 50,000,000원, 지급기일 1981.10.4 지급지, 지급장소 모두 서울 성북구 종암2동 7의 35, 발행지 광주시로 된 약속어음 1매를 발행하여, 위 홍정석은 1981.10.1 이를 다시 원고에게 배서하였고, 또 소외 2는 1981.4.19 원고에게 액면 금 30,000,000원, 지급기일 1981.10.20 지급지, 지급장소, 발행지 모두 광주시 북구 중흥동 745의 29로 된 약속어음 1매를 발행하여 원고는 위 각 약속어음의 소지인이 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이 든 증거중 갑 제7호증의 1(기록송부서), 2(기록표지), 4(결과통지), 5(보고서)는 모두 그 내용이 피고의 삼촌되는 소외 배운기가 원고등을 상대로 이 사건 약속어음이 위조되었다고 수사기관등에 고소등을 한데 대하여 당시 금 500,000,000원짜리 약속어음을 망인을 대신하여 작성하였다는 40대 남자의 말을 들어보기 전에는 위 고소사실의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하여 기소중지결정을 한 수사기관의 서류들이고, 갑 제7호증의 8(강구자에 대한 진술조서)의 기재나 원심증인 강구자의 증언내용은 1981.4.경 원고의 집에서 원고를 만난 사실이 있는데 원고가 재일교포에게 금 30,000,000원을 빌려주려고 한다면서 현금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이며, 갑 제7호증의 11(배상기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과 제1심증인 배 상기의 각 증언은 망 소외 2가 1980.10. 초경 원고를 통하여 상당한 돈을 차용하였다고 하고, 또 1981.4. 중순경도 원고인지는 모르나 누구인지로부터 금30,000,000원을 차용하면서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주었다는 이야기를 소외 2로부터 들은 일이 있으며, 1983.1.초경 같은 내용의 말을 원고로부터도 들은 바 있고 또 그때 원고가 위 망인 발행명의의 이 사건 액면 금 30,000,000원짜리 약속어음을 보여주어서 안다는 내용이며, 갑 제7호증의 13(을 제9호증의 16, 김상현에 대한 진술조서)의 각 기재에 의하면 위 김상현은 소외 홍정석의 남편으로서 위 돈은 그가 1980.7.경 퇴직하여 받은 퇴직금 2,600여만원에다가 집에 있던 2,400여만원을 합한 것으로서 1980. 가을경 그의 처인 위 홍정석이 이를 남에게 빌려 준다고 광주에 가지고 간 사실을 아는데 그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고 그 증표로서 약속어음을 받아왔다고 해서 본 일은 있으나, 그 어음의 발행자의 이름도 기억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고, 원심증인 유명렬의 증언은 증인은 소외 2는 모르고, 1980.9.경 광주시 서구 월산동 1038의 15(이 사건 약속어음상 발행인인 망 소외 2의 주소와 동일)의 대지와 건물을 소외 배상기(위 망인의 4촌 동생)에게 매도하였는데 그시 매매계약서는 복덕방에서 이름은 알수 없으나 재일교포가 작성하였다 하고 또 그때 소외 2가 이후 위 배상기에 대한 연락처는 위 새로 매입한 위 주소로 하겠다고 하면서 주소를 써 달라고 하여 써준 사실이 있다는 내용이며, 김포공항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장에 대한 사실조회 회보결과는 이 사건 각 약속어음 발행일자 당시 위 각 어음발행 명의인인 소외 2는 국내에 체류중이었다는 내용이고, 갑 제5호증의 1 내지6(각 감정서), 원심감정인 이익주의 감정결과는 이 사건 각 어음의 필적이 소외 배상기의 필적과는 다르다는 감정내용인바, 위에서 본 각 증거의 내용은 모두 위 망 배춘기가 이 사건 어음들을 발행하였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할 뿐 그가 이를 발행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그밖에 원심이 든 증거중 위 망인이 이 사건 어음들을 발행하였다는 점을 인정하는 직접증거로 볼 수 있는 것은 갑 제7호증의 7,10,12(황정순에 대한 진술조서와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기재와 원심에서의 원고 본인 신문결과, 을 제9호증의 8(홍정석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과 원심 및 당심에서의 위 홍정석의 증언등이 있는 바, 먼저 위 황정순(원고)에 대한 위 각 조서내용이나 그에 대한 본인신문결과는 원고가 1980.10.초경 재일교포인 위 소외 2로부터 금 50,000,000원의 차용을 부탁받고 친구인 위 홍정석에게 연락하여 현금 50,000,000원을 가지고 광주로 내려오라 하여 자기보증 아래 위 망인에게 월 3푼으로 대여하면서 그로부터 이 사건 액면 금 50,000,000원짜리 약속어음을 발행 교부받아 위 홍정석에게 주었다가(어음작성은 망인을 수행한 40대 남자가 하고 망인은 날인만 하였다고 한다) 후에 위 홍정석으로부터 그 추심을 위임받아 배서형식을 갖추어 자기가 소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또 1981.4.19경 위 망인에게 금 30,000,000원을, 이자는 월 3푼, 변제기는 같은해 10.20으로 하여 대여하면서 망인이 이미 작성 날인해 온 같은 액면 상당의 약속어음을 교부받았다는 내용이고, 을 제9호증의 8(홍정석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나 위 홍정석의 원심 및 당심에서의 증언은 1980.10.3 금 50,000,000원을 원고의 알선으로 위 망 소외 2에게 대여하면서 그 액면 상당의 이 사건 어음을 위 망인으로부터 교부받았다는 것이며, 그 작성 날인 및 이를 원고에 배서한데 대하여는 위 원고에 대한 조서등의 기재와 같은 내용이다(원심은 이 사건 각 어음중 액면 금 50,000,000원짜리 어음(갑 제1호증의 1)의 진정성립은 위 증인 홍정석의 증언에 의하여 인정하고 있고 액면 금 30,000,000원짜리 어음(갑 제1호증의 2)은 위 갑 제1호증의 1과 그 발행인의 인영이 동일함이 인정되므로, 그 진정성립이 추정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이 사건 서증에서 진술자로 되었거나 증인으로 나온 소외 홍정석은 그가 망 소외 2에게 한 금 50,000,000원의 대여는 원고를 통하여 그의 보증아래 이루어진 것이어서 망인으로부터 받은 이 사건 50,000,000원짜리 어음을 원고에게 배서한 것은 망인을 잘 아는 원고로 하여금 그 채권추심을 하도록 한 방편에 지나지 아니한 것이라 하고 있고, 그 점에 대하여는 원고도 같은 취지로 이야기하고 있는 바,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위 홍정석은 비록 사건 당사자는 아니지만 원고 청구중 금 50,000,000원 부분에 관한 한 사실상 원고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볼 것이어서 그의 진술을 이 사건 증거로 함에 있어서는 그러한 점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다할 것이다. 나아가 원심이 원고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앞서 든 원고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나 원고본인신문결과를 자세히 보면 1980.10.3 망 소외 2가 금 50,000,000원짜리의 약속어음을 발행할 당시 그 자리에는 소외 배상기가 없었다고도 하다가(갑 제 7호증의 7) 또 있었다고도 하여(같은 호증의 12) 일관성이 없고, 금 50,000,000원을 알선 대여한 1980.10.4 이후 1981.4.경까지 월 3푼의 약정이자를 받은바 없어 그해 4.19 그동안 밀린 6개월분 이자 금 9,000,000원에다 현금 21,000,000원을 합하여 망인에게 금 30,000,000원을 대여하는 것으로 하여 동액상당의 약속어음을 받은 것이라고 진술하나 위 금 50,000,000원의 실질상 채권자라는 위 홍정석의 진술에 의하면 위 금 50,000,000원에 대하여는 1981.4.경까지는 이자를 모두 받았다고 하고 있어 (을 제9호증의 8, 이에 대하여는 홍정석의 남편인 김 상현의 진술도 같다. 갑 제 7호증의 13) 서로 모순되는 바, 위 망인에 대하여 사실상 같은 권리자라고 할 수 있는 원고와 홍정석의 이자수령에 관한 진술이 다르다는 것 자체가 수긍이 되지 아니하며, 또 원고말대로 위 망인이 금 9,000,000원 정도의 이자를 연체하고 있는데 다시 금 21,000,000원을 담보없이 선뜻 대여한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위 홍정석의 진술기재나 그의 증언을 보면 1980.10.2 밤 원고로부터 금 50,000,000원을 놓을데가 있으니 구해오라는 시외전화를 받고 집에 보관되어 있던 남편퇴직금 26,000,000원과 평소 놀리던 24,000,000원을 1만원권 다발로 만들어 그 이튿날 오후 2시경 서울에서 광주행 버스를 타고 광주에 내려가 그날 저녁 원고의 보증아래 위 망인에 대여하고 이 사건 약속어음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때 망인을 처음보았다는 것인바(위 홍정석의 남편인 김 상현의 진술에 의하면 위 퇴직금은 1980.7. 경 수령하여 집에 보관해 놓고 있었던 것이라 한다) 돈을 놓아준다는 친구의 전화 한마디로 반나절 사이에 적지 아니한 금액인 금 50,000,000원을 마련하여 처음보는 사람에게 선뜻 빌려줄 사람이 26,000,000원 남짓이나 되는 돈을 2,3개월 동안 현금으로 집안에 쌓아 둔다고 하는 것도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위 배상기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등과 그의 증언내용을 보면 위 배상기는 망 소외 2가 1980.10. 초순경 당시 광주시 주월동에 소재한 배상기의 집으로 원고를 데리고 와서 승용차 속에 있는 그를 가리키며 자기에게 돈을 빌려준 여자라고 소개를 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인바, 그렇다면 갑 제 1호증의 1(액면 금 50,000,000원짜리 약속어음)의 발행일인 1980.10.3 당시에는 배상기의 주소가 광주시 주월동임이 명백하다 할 것임에도 위 어음발행인의 주소가 현재의 배상기의 주소인 광주시 서구 월산동 1038의 15로 기재되어 있는 점도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증인 강구자의 증언과 그의 진술을 보면 1981.4.19경 원고가 재일교포한테 빌려준다고 현금 30,000,000원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나, 원고의 말에 의하더라도 그때 위 망인에게 실제로 대여 교부한 현금은 21,000,000원 뿐이며 9,000,000원은 그동안 못받은 이자라는 것이므로 그 점에서도 두 사람의 진술에 차이가 있다.
또 김포출입국 관리소장의 회보결과를 기록에 대조하여 보면 망 소외 2는 1981.4.27 일본으로 건너간 뒤 한국에 온 바가 없고, 거기서 지내다가 이듬해 8.24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는 바, 원고가 이 사건 청구원인에서 이 사건 어음들의 각 지급기일인 1981.10.4과 같은해 10.20에 국내에 있는 각 어음기재 지급장소에서 위 망인에게 지급제시를 하였다는 것도 사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위와 같이 망 소외 가 이 사건 어음들을 발행하였다고 하는 점에 부합하는 듯한 원고 및 홍정석의 진술이 나 배상기의 진술등은 그 각 진술자체에 있어서나 그 상호간에 있어서 서로 어긋나는 점이 많고 또 우리의 일상 경험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정들이 게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에도 그와 같은 사정들에 관하여 좀더 심리하여 보지도 않고서 만연히 이를 위 사실인정의 자료로 채택하여 원고주장을 인용한 원심판결은 결국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였거나 채증법칙에 위배하여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할 것이므로 이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있다.
 
3.  이리하여 다른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하여 사건을 원심인 광주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오성환(재판장) 강우영 윤일영 김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