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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기)

[대구지법 2011. 1. 25. 선고 2010가합2484 판결 : 항소]

【판시사항】

甲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되어 혁명재판소에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형 집행 중 특별사면된 사안에서, 국가는 甲과 그 가족에 대하여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고,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甲이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중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되어 혁명재판소에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형 집행 중 특별사면된 사안에서,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하여 甲을 체포·구속·재판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아니하고 위 특별법을 소급 적용하는 등 일련의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甲과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고, 위 혁명재판소 판결에 관한 재심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甲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단, 지연손해금은 사실심 변론종결일부터 기산함).

【참조조문】

민법 제2조,
제166조 제1항,
제393조,
제750조,
제751조,
제763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제8조,
국가재정법 제96조


【전문】

【원 고】

【피 고】

대한민국

【변론종결】

2010. 12. 28.

【주 문】

 
1.  피고는 원고 1에게 450,000,000원, 원고 2에게 300,000,000원, 원고 3, 4, 5, 6, 7에게 각 100,000,000원, 원고 8, 9에게 각 4,500,000원, 원고 10, 11에게 각 3,000,000원 및 각 이에 대하여 2010. 12. 28.부터 2011. 1. 25.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2.  원고들의 각 나머지 청구를 각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50%는 원고들이, 50%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1에게 5억 원, 원고 2에게 4억 원, 원고 3, 4, 5, 6, 7에게 각 3억 원, 원고 8에게 3,125만 원, 원고 9에게 9,375만 원, 원고 10, 11에게 각 6,250만 원 및 각 이에 대하여 1962. 1. 19.부터 이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이 유】

1. 기초 사실
 
가.  원고 1의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이하 ‘한교조’라고만 한다) 활동
(1) 원고 1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이하 ‘경대사대부고’라고만 한다)의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60. 7. 17. 한교조의 사무국장으로 선출되었다.
(2) 한교조는 1961. 3. 내지 같은 해 4월경, 당시 정부에서 입법을 추진 중이던 반공임시특별법안과 데모규제법안(이하 ‘2대 법안’이라고 한다)에 대하여, 비판문을 작성·배부하고, 그 철회를 위한 전국교원의 동시연가투쟁 결의에 참가하는 등의 비판활동을 진행하였다.
 
나.  원고 1의 구속 기소 및 면직
(1) 5·16 군사정변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1961. 5. 18. 원고 1은 경대사대부고에서 수업을 하던 도중, 그 전날인 같은 달 17일 발령된 인신구속에 관한 특별조치인 포고령 제10호에 의하여 법관의 영장 없이 수사관들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2) 원고 1이 위와 같이 체포된 이후인 1961. 6. 21. 법률 제630호로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이 제정되었고, 그 다음날인 같은 달 22일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하 ‘이 사건 특별법’이라고 한다)이 법률 제633호로 제정되었다.
(3) 이 사건 특별법 제6조는, “정당, 사회단체의 주요간부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국가보안법 제1조에 규정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그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동조하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위 법률 부칙에서는 “본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3년 6월까지 소급하여 적용한다.”라고 규정하여 형벌의 소급 적용을 인정하고 있다.
(4) 원고 1은 1961. 10. 25. 위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에 의해 설치된 혁명검찰부에 의하여 이 사건 특별법 위반으로 역시 위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에 의해 설치된 혁명재판소에 기소되었는바, 그 공소사실의 요지는 ‘ 원고 1은 2대 법안이 공산간접침략을 분쇄하고 치안을 유지하여 반공의 국기를 공고히 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것임을 인식하고 있어 위 법의 제정 반대가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괴뢰집단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① 1961. 3. 19. 대구 도원동 소재 노동회관에서 개최된 경북교원노동조합연합회(이하 ‘경북교조’라고 한다) 대의원대회에서 2대 법안의 취지를 왜곡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는 방법으로 그 입법 취지를 왜곡 선전하고, ② 같은 해 3. 25.경 대전에서 한교조 제7차 중앙투쟁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2대 법안에 대한 비판문을 기안·등사하여 산하 교원노조 각 도연합회에 배부하는 방법으로 그 입법 취지를 왜곡 선전하고, ③ 같은 해 4. 2.경 대구역 앞에서 2대 법안의 반대를 위한 데모를 감행하는 방법으로 2대 법안 제정반대투쟁에 가담하고, ④ 같은 해 4. 5. 경북교조 사무실에서 2대 법안의 취지를 왜곡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는 방법으로 그 입법 취지를 왜곡 선전하고, ⑤ 같은 해 4. 9. 대구여자중·고등학교 강당에서 교원노조전국대표자회의를 개최하여 약 600명의 대표자와 함께 2대 법안의 철회요구 및 동 요구관철을 위한 전국교원의 동시 연가투쟁을 결의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괴뢰집단 및 그 구성원의 활동을 각 고무·동조하여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하였다’(이하 ‘이 사건 공소사실’이라고 한다)라는 것이었다.
(5) 한편 원고 1은 위와 같이 체포된 이후로서 위 공소제기 전인 1961. 7.경 당시 교원징계에 관한 교육공무원법과 그 징계령에 의하지 않고, 또한 징계사실을 고지받지도 못하여 소명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정·공포한 최고 회의령 제18호의 내용을 근거로 작성되어 경대사대부고에 발송된 문교부 및 특별시·도의 징계지시 공문에 의하여 강제로 면직되었고, 이후 복직하지 못하였다.
 
다.  혁명재판소의 판결 및 형의 집행
(1) 혁명재판소는 1961. 11. 16.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원고 1이 사회단체인 한교조의 주요간부로서 이 사건 공소사실 제2항 내지 제5항과 같은 2대 법안 반대투쟁을 통하여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고무·동조하였다는 이유로 이 사건 특별법 위반죄를 인정하여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다만 이 사건 공소사실 제1항에 대하여는 당시 원고 1이 그에 관여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2) 이에 원고 1은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상소를 제기하였으나, 혁명재판소 상소심판부는 1962. 1. 19. 북괴활동에 동조하여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는 이유로 상소를 기각하여 위 판결이 확정되었다(이하 위 혁명재판소 및 혁명재판소 상소심판부의 각 판결을 통틀어 ‘이 사건 혁명재판소 판결’이라고 한다).
(3) 한편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에 의하면 혁명재판소의 제1심 심판부는 재판장 1명(국군현역장교), 법무사 1명(군법무관), 심판관 3명(군법무관, 법관, 변호사 각 1명)으로 구성되며, 제2심인 상소심판부는 재판장 1명(국군현역장교), 법무사 1명(군법무관), 심판관 5명(법관 2명 및 국군현역장교, 군법무관, 변호사 각 1명)으로 구성된다.
(4) 원고 1은 이 사건 혁명재판소 판결에 따라 형 집행 중이던 1965. 12. 25.경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라고 한다)의 조사
진실화해위는 원고 1의 신청에 따라 2007. 7. 24. 위 사건에 관하여 조사개시 의결을 하고 2년여 간 조사를 진행한 후, 2009. 10. 13. “5·16 군사정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등이 원고 1을 예비검속하여 장기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조사한 후 혁명재판소에 기소하여 원고 1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정을 인식하고 북한에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재판소가 소급법인 이 사건 특별법을 적용하여 원고 1을 유죄로 처벌한 것으로 사실규명된바, 피고는 원고 1에 대하여 재심절차를 취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절차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라는 취지로 결정을 하였다.
 
마.  재심판결
(1) 이에 원고 1은 이 법원에 이 사건 혁명재판소 판결에 관하여 재심청구를 하였고, 이 법원은 2010. 2. 11. 재심개시결정을 하였으며, 이에 따라 개시된 이 법원 2009재고합7 재심사건에서 위 법원은 2010. 4. 21. ① 이 사건 공소사실 제1항은 원고 1이 이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② 이 사건 공소사실 제2항 내지 제5항은, ⅰ) 원고 1이 한교조의 사무국장으로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2대 법안에 대한 반대운동을 한 사실 자체는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나, 이는 비록 당시 정부의 태도와는 반대되는 입장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당연히 보장되는 범위에 속하는 행위라고 보아야 하고, 그와 같은 원고 1의 행위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고무,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ⅱ) 나아가 원고 1이 그 행위가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인식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2) 위 판결에 대하여 검사가 항소하였으나 항소기각되었고( 대구고등법원 2010. 6. 24. 선고 2010노177 판결), 상고하였으나 상고기각되어( 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도8530 판결) 위 판결은 2010. 11. 11. 확정되었다.
 
바.  가족관계
(1) 원고 2는 원고 1의 처이고, 원고 3, 4, 5, 6, 7은 원고 1의 자녀들이다.
(2) 망 소외 1(1964. 5. 30. 사망)은 원고 1의 남동생이고, 원고 8은 망 소외 1의 처, 원고 9는 망 소외 1의 장남으로서 호주상속인이며, 망 소외 2(1954. 2. 12.생, 1965. 6.경 사망신고) 및 원고 10, 11은 망 소외 1의 아들들이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1 내지 7, 10, 11, 14, 15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1) 피고는 국가로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의무가 있고, 원고 1이 체포되어 혁명재판소의 판결을 받을 당시의 우리 헌법(1962. 12. 26. 헌법 제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의하더라도,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 단, 범죄의 현행범인의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사기관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후에 영장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 누구든지 체포, 구금을 받은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그 당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보장된다.”라고, 제22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의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제23조는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하여 소추를 받지 아니하며, 또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두 번 처벌되지 아니한다.”라고 각 규정하여 국민의 신체의 자유 및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었다.
(2) 수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위 기초 사실에 의하면, ① 피고 소속 수사관들은 원고 1을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하였는바, 비록 당시 구 계엄법(1981. 4. 17. 법률 제344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13조 및 군사혁명위원회(1961. 5. 19.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가 1961. 5. 17. 공포한 포고령 제10호에 의하여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비상계엄지역 내에서 법관의 영장 없는 체포·구금이 가능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계엄법 제13조는 ‘군사상 필요할 때에만’ 법관의 영장 없는 체포·구금이 가능하다고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할 것이고, 위 포고령은 모법인 계엄법의 위임 한계를 일탈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인데, 한교조의 사무국장인 원고 1이 한교조 등의 2대 법안 반대 활동에 참가하여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동조 범행을 방조하였다는 피의사실만으로는 영장 없는 체포·구금이 허용될 정도로 군사상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 1에 대한 법관의 영장 없는 체포가 위 계엄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또한 피고는 1961. 5. 27. 비상계엄이 해제되고 경비계엄이 선포된 뒤에도 법관의 영장을 다시 발부받는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다), 원고 1에 대한 체포는 적법절차를 지키지 아니하여 위법하고, ② 또한 당시 구 형사소송법(1961. 9. 1. 법률 70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02조 내지 제205조에 의한 최장 구속기간은 30일임에도 원고 1은 체포된 1961. 5. 18.부터 기소된 같은 해 10. 25.까지 무려 161일에 걸쳐 장기간 구금되어 있었으므로, 불법구금에 해당한다.
(3) 재판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위 기초 사실에 의하면, ① 피고는 원고 1을 체포한 후에 이 사건 특별법을 제정하여 위 법 제정 전의 행위에 관하여 처벌하였고, ② 또한 헌법상 법원은 법령의 해석·적용권한을 갖고 있고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여야 하므로, 법원은 당사자의 신청 여하에 불구하고 사실을 확정하고 법률을 적용함에 있어 그 상위법인 헌법에 비추어 그 뜻을 해석하고 이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검토하여야 하고, 이는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하기 위하여 헌법이 법원에게 부여한 고유의 권한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한바, 이 사건 혁명재판소판결을 한 재판관들은 이 사건 특별법이 무려 3년 6개월을 소급 적용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한 위헌적 소지가 다분한 법률임이 비교적 명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그 합헌성을 인정하고 이를 적용하여, 결국 원고 1에 대하여 징역 10년의 무거운 형을 선고·확정하였는바, 이 사건 혁명재판소 판결이 재판상의 직무행위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당시 혁명재판소는 5·16 군사정변을 정당화하고, 교원노조를 탄압하고자 하는 조직적인 국가권력의 불법행위에 편승하여 이 사건 특별법의 위헌성 판단을 현저히 해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4) 면직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위 기초 사실에 의하면, 원고 1은 한교조 사건으로 기소되기도 전인 1961. 7.경 불법체포·구금상태에서 정식의 징계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여 아무런 소명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채 교육공무원법에 의하여 신분이 보장되는 교육공무원직에서 강제면직되었는바, 이는 위법한 면직처분에 해당한다.
(5) 그렇다면 피고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하여 오히려 원고 1을 체포·구속·재판하는 과정에서 (2), (3), (4)항 기재와 같은 일련의 불법행위(이하 ‘이 사건 불법행위’라 한다)를 저질렀으므로(원고들은, 피고가 원고 1의 가석방 후 1993. 9.경까지 원고 1을 근거 없이 감시하여 왔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이 부분 불법행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 피고는 이로 인하여 원고 1과 그의 처, 자녀 및 남동생인 망 소외 1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그들 본인 또는 상속인들인 원고들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및 국가재정법의 규정에 따라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하므로 살피건대, 국가에 대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의 종료일로부터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제1항에 정한 5년의 기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는바, 원고들의 이 사건 소는 이 사건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1961년으로부터 50년이 경과한 2010. 3. 9. 제기되었음은 기록상 명백하다.
그러나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35572 판결 등 참조).
위 기초 사실에 의하면, 원고 1은 국가기관에 의하여 불법 체포·구금당하였고, 당시 이 사건 특별법 위반 사건에 관하여 검찰 및 법원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혁명검찰부 및 혁명재판소에서 무죄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죄임이 확정되었는바, 그 판결이 재심에 의하여 취소되지 않은 채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단지 군사정권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섰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가해자인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과거의 유죄판결이 잘못된 판결이라는 것을 밝히는 재심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 피해자이자 채권자인 원고들이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35572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혁명재판소 판결에 관하여 원고 1에 대한 재심판결이 확정된 2010. 11. 11.까지는 원고들이 피고에 대해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항변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위 항변은 이유 없다.
 
3.  위자료 액수의 산정 
가.  위자료의 산정
나아가 위자료의 액수에 관하여 보건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이 사건 불법행위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이루어진 점, ② 이로써 원고 1은 1961. 5. 18. 체포되어 1965. 12. 25.경 석방되기까지 무려 4년 6개월이라는 장기간 동안 수감됨으로써 자유를 구속당하였고, 교원공무원직에서 부당하게 강제면직되어 이후 복직되지 못하였으며, 석방된 뒤에도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반국가단체인 북한 또는 그 구성원을 찬양·고무·동조한 자라는 전과를 가지고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은 점, ③ 원고 1의 처, 자녀 역시 반국가단체인 북한 또는 그 구성원을 찬양·고무·동조한 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를 받으며 각종 사회적, 경제적인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④ 특히, 원고 2는 사회경험이 많지 않던 부녀자로서 원고 1의 갑작스러운 체포 및 수감으로 인하여 4년 6개월이라는 장기간 동안 다섯 자녀들의 생계를 홀로 책임져야만 했던 점, ⑤ 망 소외 1은 원고 1의 남동생으로서 원고 1의 갑작스러운 체포 및 수감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정신적인 충격을 입었을 것으로 보이나, 그로 인하여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고, 달리 원고 1 가족의 생계유지에 별다른 도움을 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 점, ⑥ 피고인 국가가 원고 1 및 그의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무려 45년이 경과한 점 등을 참작하여, 위자료의 액수를 다음과 같이 정한다.
(1) 원고 1 : 4억 5,000만 원
(2) 원고 1의 처인 원고 2 : 3억 원
(3) 원고 1의 자녀인 원고 3, 4, 5, 6, 7 : 각 1억 원
(4) 원고 1의 형제인 망 소외 1 : 1,500만 원
 
나.  상속관계
(1) 망 소외 1이 1964. 5. 30. 사망하여 구 민법(1977. 12. 31. 법률 제305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1009조에 의하여 망 소외 1의 위자료 1,500만 원에 대하여 장남인 원고 9가 450만 원(1,500만 원 × 3/10), 아들들인 망 소외 2, 원고 10, 11이 각 300만 원(1,500만 원 × 2/10), 처인 원고 8이 150만 원(1,500만 원 × 1/10)을 각 상속하였다.
(2) 미혼인 망 소외 2가 1965. 6.경 사망함(원고들은 망 소외 2가 실제로는 출생 직후인 1954. 3.경 사망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으로써 구 민법 제1000조에 의하여 망 소외 2의 모인 원고 8이 망 소외 2의 재산을 상속하여 원고 8의 상속분 합계액은 450만 원(망 소외 1에 대한 상속분 150만 원 + 망 소외 2에 대한 상속분 300만 원)이 되었다.
 
다.  소결
따라서 피고는 위자료로서, 원고 1에게 4억 5,000만 원, 원고 2에게 3억 원, 원고 3, 4, 5, 6, 7에게 각 1억 원, 원고 8, 9에게 각 450만 원, 원고 10, 11에게 각 300만 원 및 각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사실심 변론종결일인 2010. 12. 28.부터(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35572 판결 참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11. 1. 25.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각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각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각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강동명(재판장) 류준구 임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