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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정보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손해배상(기) 등

[부산지법 2007. 2. 2. 선고 2000가합7960 판결 : 항소]

【판시사항】

[1]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한 사례
[2] 외국법원에 소가 제기되어 있는 경우,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우리나라 법원에 제소하는 것이 중복제소에 해당하는지 여부(한정 적극)
[3]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동일한 사건이 일본국 최고재판소에 소송 계속중이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법원에 위 소를 제기하는 것이 중복제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4] 사인(私人)이 국제법에 근거하여 다른 국가 또는 그 국민을 상대로 직접 특정 청구를 할 수 있는 경우
[5]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위 기업의 국제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사례
[6]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우리나라 현행 민법의 불법행위에 관한 규정을 준거법으로 결정한 사례
[7]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위 손해배상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1]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위 기업이 일본법에 의하여 설립된 일본 법인으로서 그 주된 사무소를 일본국 내에 두고 있으나 대한민국 내 업무 진행을 위하여 설치한 연락사무소가 소 제기시에도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구 민사소송법(2002. 1. 26. 법률 제6626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4조 제2항에 따라 대한민국 법원에 위 기업의 보통재판적이 인정되고, 당사자 또는 분쟁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인 관련이 있으며,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사자 간의 공평을 현저히 해하거나 재판의 적정, 신속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2]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은
민사소송법 제217조 각 호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이 인정되고,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 위 승인요건을 구비하는 경우에는 이와 동일한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 다시 제기하는 것은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되지 않으므로, 외국법원에 소가 제기되어 있는 경우 그 외국법원의 판결이 장차
민사소송법 제217조에 의하여 승인받을 가능성이 예측되는 때에는
민사소송법 제259조에서 정한 소송계속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이와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우리나라 법원에 제소한다면 중복제소에 해당하여 부적법하다.

[3]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동일한 사건이 일본국 최고재판소에 소송 계속중이라고 하더라도 위 법원의 판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다수의 과거 일본국 재판소의 판결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일본국 최고재판소의 판단이 대한민국의 법원과 그 견해를 달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향후 일본국 재판소가 결론내린 확정판결의 효력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익이나 정의관념 및 국내법질서 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는 결과를 전혀 예상 못 할 바 아니어서, 대한민국 법원에 위 소를 제기하는 것이 중복제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4] 사인(私人)이 실제로 국제법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개개의 조약, 국제관습법에서 정한 규범의 내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특히 사인(私人)이 국제법에 근거하여 다른 국가 또는 그 국민을 상대로 직접 어떤 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각 조약 등 국제법 자체에서 해당 규범의 위반행위로 인하여 권리를 침해당한 사인(私人)에게 그 피해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 및 그에 관한 구체적인 요건, 절차, 효과에 관한 내용을 규정한 경우나 그 국제법에 따른 사인(私人)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국내법적 입법조치가 행하여진 경우에 가능하다.
[5]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강제노동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조약과 뉘른베르그(Nurnberg) 국제군사재판소 조례 및 당해 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승인된 국제법의 제 원칙의 각 규정에 강제노동 및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인(私人)에게 강제노동을 실시한 주체나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직접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노예제로 피해를 입은 사인(私人)이 노예제 금지를 위반한 주체를 상대로 직접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국제관습법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위 기업의 국제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사례.
[6]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구 섭외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 국제사법으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13조 제1항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권의 성립과 효력은 그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의 법에 의하도록 되어 있는바, 위 기업의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등의 불법행위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일본국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계속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우리나라 민법의 규정은 준거법이 될 수 있고, 나아가 현행
민법 부칙 제2조의 규정에 의하면 위 법은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위 법 시행일 전의 사항에 대하여도 이를 적용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결국 우리나라 현행 민법의 불법행위에 관한 규정은 위 기업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준거법이 된다고 본 사례.

[7] 일제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일본국 내 기업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대한민국 국민이 위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에서, 위 손해배상채권이 인도에 반하는 전쟁 범죄에 관련된 손해배상채권이라는 사정만으로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고, 위 손해배상청구는 불법행위가 행하여진날로부터는 물론 그 후 대한민국과 일본국의 국교가 정상화된 날로부터 기산하더라도 10년이 경과하여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고, 대한민국과 일본국의 국교 수립과 동시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의 존재 또는 대일 민간청구권의 소멸을 규정한 일본 국내법의 제정·시행 등의 사정만으로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구 민사소송법(2002. 1. 26. 법률 제6626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1조(현행
제1조 참조),
제4조(현행
민사소송법 제5조 참조)
[2]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259조
[3]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259조
[4]
헌법 제6조 제1항
[5]
헌법 제6조 제1항
[6]
구 섭외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 국제사법으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13조 제1항(현행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 참조),
민법 부칙(1958. 2. 22) 제2조
[7]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전문】

【원 고】


【피 고】

미쓰비시(三菱)중공업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청률 담당변호사 최창용)

【변론종결】

2006. 12. 15.

【주 문】

 
1.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 100만 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 유】

1. 기초 사실
 
가.  소외 1과 원고 2, 3, 4(항소심 판결의 제1심 공동원고 4), 5(대법원 및 항소심 판결의 공동원고 4), 6(대법원 및 항소심 판결의 공동원고 5)의 강제징용과 피폭 피해 경위
(1) 소외 1과 원고 2, 3, 4, 5, 6(이하 ‘원고 등’이라고 한다)은 모두 1923년경부터 1926년경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 충남 등지에서 거주하고 있던 자들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1910. 8. 22. 대한제국과 사이에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한 후 1937년 일어난 중일전쟁과 1941년 일어난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 생산 등에 있어 국가적인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8. 4. 1.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1944년 9월부터는 국민징용령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강제징용을 실시하였다.
(2) 이에 따라 원고 등은 1944년 9월경부터 같은 해 10월경 사이에 일본 정부에 의하여 강제징용되어 각자의 주거지를 떠나 부산항으로 이송된 다음 연락선을 이용하여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한 뒤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그곳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의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 노무자로 배치되었는데, 위와 같은 이송 및 배치 과정은 일본군, 일본경찰 및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소속 담당자의 통제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3) 그 후 원고 등은 각자의 작업장에서 월 2회의 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철판을 자르거나 동관을 구부리는 일, 배관일 등에 종사하였고, 하루 작업을 마치면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가 마련한 숙소인 료로 돌아가 숙식을 해결하였는데, 식사의 양이나 질은 현저히 부실하였고 다다미 12개 넓이의 방에 10명 내지 12명의 피징용자들이 함께 생활하였다. 또한 숙소 주변에는 철조망이 처져 있었고 근무시간은 물론 휴일에도 헌병, 경찰 등에 의한 감시가 삼엄하여 생활의 자유는 거의 없었으며,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의 서신 교환도 사전 검열에 의하여 그 내용이 제한되었다.
(4) 그런데 1945. 8. 6.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에 따라 위 기계제작소와 조선소 및 료 등이 모두 파괴되어 작업이 중단되었고, 그 와중에 원고 등은 부상을 입은 채 각자 일용 노동 등으로 귀국 비용을 마련하여 1945. 8. 15. 일본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종료된 직후인 1945년 8월 말경부터 같은 해 10월 말경 사이에 원고 3은 UN군의 선박을 이용하여, 4는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에서 마련한 배편을 이용하여, 소외 1과 나머지 원고들은 밀항선 등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5) 원고 등은 귀국 후 강제징용 이전에 다니던 직장을 잃는 등 종래의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 채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최근까지도 전신권태감, 호흡 곤란, 피부질환, 시력 감퇴 등의 각종 신체적 장해에 시달리고 있다.
 
나.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의 상황
(1) 대일평화조약의 체결
태평양전쟁이 종전된 후 1951. 9. 8. 미국 샌프런시스코시에서 미국, 영국 등을 포함한 연합국과 일본국은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위 조약 제4조 (a)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위 조약 제2조에 규정된 지역에 존재하는 일본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그리고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을 상대로 한 청구권과 일본국에 존재하는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 소유의 재산, 그리고 위 지역의 통치 당국 및 그 국민의 일본국 및 일본국 국민들에 대한 청구권의 처리는 일본국과 위 지역의 통치 당국 간의 특별 협정이 규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정하였다.
(2)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조약과 부속협정의 체결
대일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취지에 따라 1951년 말경부터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국교정상화 및 전후 보상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65. 6. 22.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이라고 한다)이 체결되었는데, 청구권협정은 제1조에서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함과 아울러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또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은 위 제2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a) ‘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g) 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위 합의의사록에 적시된 대일청구 8개 요강에는, 일본으로 반출된 지금(地金) 및 지은(地銀), 조선총독부 체신국에 대한 각종 저금, 채권 등, 1945. 8. 9. 이후 일본인이 한국의 은행으로부터 인출해 간 예금액, 대체 또는 송금된 금품, 한국 법인의 재일 재산, 한국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있던 일본의 유가증권, 은행권 등과 함께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전쟁에 의한 피징용자의 피해에 대한 보상, 한국인의 대 일본국정부 청구 은급(恩給)관계, 한국인의 대 일본인 또는 법인 청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3) 청구권협정에 따른 후속조치
위 청구권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은 1965. 12. 17. 법률 제144호로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하여 일본 국내적으로 청구권협정 제2조에 규정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청구권을 소멸시켰고, 한편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수입되는 자금을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 사항을 정하기 위하여 1966. 2. 19.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것에 이어 1971. 1. 19.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10개월간 국민의 대일청구권을 신고받은 결과 총 10만 9,540건의 신고가 접수되었는바, 위 신고분에 대한 실제 보상을 집행하기 위하여 1974. 12. 21.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1975. 7. 1.부터 1977. 6. 30.까지 사이에 총 83,519건의 신고분에 대하여 총 9,187,693,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고, 위 각 법률은 1982. 12. 31. 모두 폐지되었다. 그런데 위 각 법률은 일본국에 의한 강제징용 피해자 중 피징용사망자에 대한 보상만을 규정하였을 뿐이고 피징용부상자의 보상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하지 아니하여 원고 등은 현재까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4) 피고의 설립
한편,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이후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는 1946년 일본에서 제정·시행된 회사경리응급조치법 및 기업재건정비법상 특별경리주식회사로 지정되어 1950. 1. 11. 해산한 다음, 그 현물을 출자하여 중일본중공업 주식회사, 동일본중공업 주식회사, 서일본중공업 주식회사가 각 설립되었고, 이 중 중일본중공업 주식회사가 1964. 6. 30. 위 나머지 2개 회사를 흡수합병하여 피고가 설립되었다(이하 위 해산 전의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를 ‘구 미쓰비시’라고 한다).
 
다.  이 사건 소의 제기
(1) 원고 4를 제외한 원고 등은 1995. 12. 11. 일본국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에 이 사건 피고를 상대로 구 미쓰비시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과 강제노동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이하 ‘이 사건 전소’라고 한다), 위 재판소는 1999. 3. 25. 위 손해배상금청구가 일본 민법 제724조 후단 소정의 20년의 제척기간을 도과하여 제기되었고 미지급 임금청구 역시 1년 또는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이미 소멸되었다는 이유로 청구기각의 판결을 선고하였고, 이에 위 소송의 원고들이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항소 역시 기각됨에 따라 위 원고들의 상고로 현재 이 사건 전소는 일본국 최고재판소에서 계속중이다.
(2) 그런데 원고 등은 일본국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의 위 1심판결 선고 이후인 2000. 5. 1. 이 법원에 이 사건 전소에서 주장한 위 청구원인과 동일한 내용을 청구원인으로 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고, 한편 이 사건 소가 계속중이던 2001. 2. 24. 원고 등 가운데 소외 1이 사망하여 그 상속인들 중 원고 1이 소외 1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 등 재산을 단독 상속하게 됨에 따라 소외 1의 소송절차를 수계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이 없거나 명백한 사실, 갑 제1 내지 6, 10 내지 20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원고 4 본인신문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들의 주장
(1) 구 미쓰비시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주장
원고들은, 구 미쓰비시는, 일본국의 침략전쟁에 편승하여 원고 등을 강제연행한 다음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하였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 일본인 노무자들에 대하여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한 것과는 달리 원고 등에 대하여는 피난장소나 식량 등을 전혀 제공하지 않은 채 피폭 현장에 방치하였으며, 일본 정부의 국민징용령에 의한 징용 사유가 종료한 후에는 원고 등을 대한민국에 안전하게 귀환시킬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환에 필요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아니하였는데, 구 미쓰비시의 이러한 행위는 국제법적으로는 노예제를 금지하는 국제관습법과 1930년 체결된 강제노동 폐지를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조약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뉘른베르그(Nurnberg) 국제군사재판소 조례 및 당해 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승인된 국제법의 제 원칙(이하 ‘뉘른베르그 제 원칙’이라고 한다)에서 정한 전쟁 범죄 및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고, 국내법적으로도 우리 민법 제750조 소정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피고로서는 구 미쓰비시가 원고 등에게 가한 위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각 1억 원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2) 미지급 임금 청구에 관한 주장
또한 원고들은, 구 미쓰비시가, 원고 등을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하면서 약정된 월급의 절반을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직접 송금하겠다고 약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약속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원고 등에게 직접 지급하던 월급에서 국민저금 명목으로 공제했던 돈을 강제징용 사유가 종료한 뒤 원고 등에게 반환하지 않았으며, 원고 등에게 직접 지급하던 월급도 1945. 6. 21.경 이후부터는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이에 따라 아래 기재 각 돈의 합계액을 원고들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는데, 위 합계액을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원고들 1인당 적어도 100만 원을 초과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으로 각 100만 원의 지급을 구한다.
① 송금약속 상당액 : (당시 후생연금법 규정의 평균임금에서 기숙사비와 식비의 합계 13엔 및 피보험자 부담의 보험료를 공제한 금액) × 1/2 × 가동월수
② 국민저금 상당액 : 최소 50엔
③ 1945. 6. 21.부터 1945. 8. 31.까지의 임금 상당액 : (당시 후생연금법 규정의 평균임금에서 기숙사비와 식비의 합계 13엔 및 피보험자 부담의 보험료를 공제한 금액) × 1/2 × 2.33개월
 
나.  피고의 주장
이에 대하여 피고는, 본안전 항변으로 이 사건 소는 ① 국제재판관할권이 없는 대한민국 법원에 제소되었고, ② 국제적 중복소송에 해당하므로 부적법하여 각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본안에 관하여는 원고들에 대한 구 미쓰비시의 손해배상금 내지 임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다투면서 설령 구 미쓰비시의 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 피고는 구 미쓰비시와 동일성이 없을뿐더러 구 미쓰비시의 채무를 승계한 바도 없어 구 미쓰비시의 원고들에 대한 채무를 이행할 의무가 없고, ㉯ 원고들의 구 미쓰비시에 대한 이 사건 각 채권은 청구권협정 제2조 및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에 규정된 내용에 따라 소멸되었거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모두 소멸하였으며, ㉰ 구 미쓰비시는 1948. 9. 7.경 원고 등을 위하여 미지급 임금과 국민저금 상당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탁하였으므로 적어도 원고들의 임금 채권은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3.  본안전 항변에 관한 판단 
가.  대한민국 법원의 이 사건 소에 관한 국제재판관할권의 인정 여부
섭외적 사건에 관하여 국내의 재판관할을 인정할지의 여부는 국제재판관할에 관하여 조약이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상의 원칙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고 이에 관한 우리나라의 성문법규도 없는 이상 결국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을 기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라 조리에 의하여 이를 결정함이 상당하다 할 것이고, 이 경우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의 토지관할에 관한 규정 또한 위 기본이념에 따라 제정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위 규정에 의한 재판적이 국내에 있을 때에는 섭외적 사건에 관한 소송에 관하여도 우리나라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인정함이 상당하다( 대법원 1992. 7. 28. 선고 91다41897 판결 등 참조). 한편 구 민사소송법(2002. 1. 26. 법률 제6626호로 개정되기 이전의 것) 제4조 제1항은 법인 등의 보통재판적은 그 주된 사무소 또는 영업소에 의하고 사무소와 영업소가 없는 때에는 그 주된 업무담당자의 주소에 의할 것을 규정하고, 제2항제1항의 규정이 외국법인 등의 보통재판적에 관하여 대한민국에 있는 사무소, 영업소 또는 업무담당자의 주소에 적용됨을 정하고 있는바, 위 구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하면 외국법인 등이 대한민국 내에 사무소, 영업소 또는 업무담당자의 주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그 사무소 등의 주소에 보통재판적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므로, 증거수집의 용이성이나 소송수행의 부담 정도 등 구체적인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그 응소를 강제하는 것이 민사소송의 이념에 비추어 보아 심히 부당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그 분쟁이 외국법인의 대한민국 내 사무소 등의 영업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하는 것이 조리에 맞는다 할 것이다( 대법원 2000. 6. 9. 선고 98다35037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은 법리에 따라 이 사건에서 보건대, 피고는 일본법에 의하여 설립된 일본 법인으로서 그 주된 사무소를 일본국 내에 두고 있으나 1987년경 대한민국 부산 중구 중앙동 4가 53-11 소재 동아일보빌딩 8층에 피고의 대한민국 내 업무 진행을 위한 부산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여 일본인 직원 1명을 비롯한 5명의 직원을 두었고, 원고 등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당시에도 위 부산 연락사무소가 존재하고 있었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바, 위 부산 연락사무소가 상법의 규정에 따른 대표자 선정이나 영업소 설치등기를 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위 부산 연락사무소를 구 민사소송법 제4조 제2항에서 말하는 사무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고, 또한 피고의 주장처럼 위 부산 연락사무소가 실질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않았던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의 보통재판적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고, 달리 대한민국의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사자 간의 공평이나 재판의 적정, 신속을 해치는 등 조리에 반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오히려 원고들이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사실의 인정을 위한 일본 내의 물적 증거는 거의 멸실된 반면 가장 중요한 소송자료라고 할 수 있는 원고 등 본인들이 모두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고, 사안의 내용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치적 변동 상황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당사자 또는 분쟁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인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고, 원고들과 피고의 객관적인 소송수행능력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 법원에 대한 재판관할권의 인정이 당사자 간의 공평을 현저히 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일본국 재판소에서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이미 한번 증거조사를 완료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뒤에서 살펴 볼 중복제소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부정할 만큼 재판의 적정, 신속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사정을 들어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다투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소송에 관하여 대한민국 법원인 이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인정된다.
 
나.  중복제소 해당 여부
이 사건 변론 종결일 현재 이 사건 전소가 일본국 최고재판소에 계속중인 상태임은 앞서 본 바와 같은바, 이 사건 전소보다 후에 제기된 이 사건 소가 후소로서 국제적 중복소송에 해당하여 각하되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살피건대, 국제적 중복소송의 인정 여부 및 그 처리 방법에 관하여 조약이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상의 원칙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고 이에 관한 우리나라의 성문법규는 없으나,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규정에 의하면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은, (ⅰ) 대한민국의 법령 또는 조약에 따른 국제재판관할의 원칙상 그 외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되고, (ⅱ) 패소한 피고가 소장 또는 이에 준하는 서면 및 기일 통지서나 명령을 적법한 방식에 따라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송달받았거나(공시송달이나 이와 비슷한 송달에 의한 경우를 제외한다.) 송달받지 아니하였더라도 소송에 응하였으며, (ⅲ) 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고, (ⅳ) 상호보증이 있는 경우, 위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이 인정되고,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 위 승인요건을 구비하는 경우에는 이와 동일한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 다시 제기하는 것은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되지 않으므로( 대법원 1989. 3. 14. 선고 88므184, 191 판결 등 참조), 외국법원에 소가 제기되어 있는 경우 그 외국법원의 판결이 장차 민사소송법 제217조에 의하여 승인받을 가능성이 예측되는 때에는 민사소송법 제259조에서 정한 소송계속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이와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우리나라 법원에 제소한다면 중복제소에 해당하여 부적법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전소에 대한 외국법원인 일본국 재판소의 판결이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제217조에 의하여 승인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보건대, 이 사건 전소가 제기된 일본국 재판소가 위 사건에 대한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이 사건 전소의 원고들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변호사들을 대리인으로 선임하여 스스로 위 재판소에 이 사건 전소를 제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척기간 도과 내지 시효 소멸을 이유로 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일본 재판소의 판결이 그 이유만으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비록 우리나라와 일본국 사이에 양국의 확정판결에 관하여 상호보증을 명시한 조약 등은 없으나 일본 민사소송법 제118조에서 규정한 외국법원의 확정판결 승인요건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여 실질적으로 상호보증이 있는 경우와 다름이 없음은 피고가 주장하는 바 그대로 인정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직 이 사건 전소에 대한 일본국 최고재판소의 상고심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일본국 최고재판소가 향후 어떠한 법적 논리를 전개하여 위 원고들의 청구를 판단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고, 아울러 이 사건 전소에 대한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의 판결 이외에 다수의 과거 일본국 재판소의 판결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일본국 최고재판소가 위 원고들과 같은 재한 피징용자들의 손해배상 등 청구에 관한 판단을 함에 있어 그 판단의 기초가 되는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나 일본국 또는 그 국민에 의하여 자행되었던 과거의 행위에 대한 평가, 법령의 적용 및 해석 등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법원과 그 견해를 달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전소에 관하여 일본국 재판소가 결론내린 확정판결의 효력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익이나 정의관념 및 국내법질서 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는 결과를 전혀 예상 못할 바 아니므로, 결국 이 사건 전소에 대한 일본국 재판소의 확정판결이 대한민국에서 당연히 승인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전소가 일본국 최고재판소에 계속중이라는 사정만으로 곧 이 사건 소가 중복제소에 해당하여 부적법하다고 할 수 없다(피고의 주장과 같이 원고 등이 스스로 일본에서 제기한 이 사건 전소에서 불리한 내용의 판결을 선고받자 다시 대한민국 법원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것은 국제소송 절차의 남용이라고 볼 여지도 없지 않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국 재판소의 확정판결에 대한 승인가능성이 불명확한 점, 1995년 이 사건 전소가 제기된 이후 재판이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원고들의 대한민국에서의 소권 행사가 재판상 보호받지 못할 만큼의 소권의 남용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4.  본안에 관한 판단 
가.  구 미쓰비시의 국제법적 손해배상책임 여부에 대한 판단
원고들은 구 미쓰비시가 노예제를 금지하는 국제관습법, 강제노동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제29호 조약, 뉘른베르그 제 원칙 등 국제법의 규정을 위반하였으므로 이에 따른 구 미쓰비시의 손해배상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법상 사인(私人)의 주체성 인정 여부에 관하여 국가만이 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국제법상 사인의 주체성을 부정할 근거가 부족하고, 다만 사인이 실제로 국제법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개개의 조약, 국제관습법에서 정한 규범의 내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특히 사인이 국제법에 근거하여 다른 국가 또는 그 국민을 상대로 직접 어떤 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각 조약 등 국제법 자체에서 해당 규범의 위반행위로 인하여 권리를 침해당한 사인에게 그 피해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 및 그에 관한 구체적인 요건, 절차, 효과에 관한 내용을 규정한 경우나 그 국제법에 따른 사인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국내법적 입법조치가 행하여진 경우에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이 사건에 돌아와 살피건대, 강제노동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제29호 조약과 뉘른베르그 제 원칙의 각 규정에, 강제노동 및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인에게 강제노동을 실시한 주체나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직접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원고들의 주장처럼 노예제 금지가 국제법적 강행규정으로 간주된다고 하더라도 나아가 노예제로 피해를 입은 사인이 노예제 금지를 위반한 주체를 상대로 직접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국제관습법의 성립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원고들은 그 주장과 같은 구 미쓰비시의 과거 행위에 대하여 국제법적 손해배상책임을 물어 피고에게 그 배상금의 지급을 구할 수는 없다 할 것이므로, 이 부분 원고들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가 없다.
 
나.  구 미쓰비시의 국내법적 불법행위책임에 따른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판단
(1) 피고와 구 미쓰비시의 동일성 인정 여부
구 미쓰비시가 1950. 1. 11. 일본국 국내법에 따라 해산하고 그 현물 출자에 의하여 3개의 제2회사가 설립되었다가 다시 합쳐져 현재의 피고가 설립된 사정은 앞서 본 바와 같은데, 피고의 주장에 따라 그 구체적 경위를 살펴보면, 일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항복을 선언한 직후 일본 내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에 의한 재벌 해체 정책의 추진과 더불어 패전으로 인하여 일본 기업들이 부담하게 될 엄청난 액수의 배상 및 노무자들에 대한 미지급 임금 채무 등의 해결을 위하여 일본국은 1946년 법률 제7호와 제40호로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을 제정·시행하였고, 위 각 법률에 따라 구 미쓰비시는 1946. 8. 11. 오전 0시를 기준으로 하여 신 회계계정과 구 회계계정을 분리한 후, ‘회사의 목적인 현재 행하고 있는 사업의 계속 및 전후 산업의 회복 진흥에 필요한 동산, 부동산, 채권 기타 기존 재산 등’을 신 회계계정에 속하도록 한 후 위 재산을 현물 출자하여 3개의 제2회사를 설립하였고, 그 외 그 때까지 발생한 채무를 위주로 한 구 회계계정상의 재산과 채무는 능중 주식회사에게 승계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능중 주식회사에게 승계된 구 회계계정상의 채무의 처리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나 대책을 세우지 않은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별다른 다툼이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앞서 본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 등 일본 국내법은 전후 처리를 위한 특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술적인 입법에 불과하고, 오히려 갑 제6호증의 1, 2, 갑 제10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보면, 구 미쓰비시가 피고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회사의 인적, 물적 구성에는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사실이 인정되므로, 비록 위와 같이 일본국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구 미쓰비시가 해산과 제2회사 3사의 설립 및 흡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피고로 변경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 미쓰비시와 피고 사이에는 그 법인격의 동일성이 유지되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는 앞서 든 증거에서 나타나듯이 피고 스스로도 구 미쓰비시를 피고의 기업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2) 준거법의 결정
구 섭외사법(1962. 1. 15. 법률 제966호로 제정되었다가 2001. 4. 7. 법률 제6465호로 전문 개정되기 이전의 것) 제13조 제1항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권의 성립과 효력은 그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의 법에 의하도록 되어 있는바, 원고들이 주장하는 구 미쓰비시의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등의 불법행위는 대한민국 내 원고 등 각자의 거주지역으로부터 일본 내 히로시마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계속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우리나라 민법의 규정은 준거법이 될 수 있고, 나아가 현행 민법 부칙 제2조의 규정에 의하면 위 법은 특별한 규정 있는 경우 외에는 위 법 시행일 전의 사항에 대하여도 이를 적용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결국 우리나라 현행 민법의 불법행위에 관한 규정은 구 미쓰비시의 불법행위에 의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준거법이 된다.
(3) 구 미쓰비시의 불법행위에 의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여부
(가) 판단의 순서
이 부분 당사자들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판단순서는 구 미쓰비시가 원고 등 각자에게 행한 행위의 태양을 확정한 후 그 행위가 우리 민법 제750조 소정의 불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판단한 다음 그것이 인정되는 경우 피고의 주장에 관하여 나아가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 할 것이나, 원고들이 이 부분 청구원인으로 주장하는 사실은 모두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부터 1945년 일본국의 패전 전후에 이르는 극도의 혼란기에 발생한 사실들이고, 그 발생으로부터도 60년 이상의 세월이 경과한 관계로 그에 대한 충분한 입증이 어려워 원고 등의 당사자 진술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원고들이 이 사건 청구원인으로 주장하는 사실관계의 존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원고들의 이 부분 청구원인이 사실로 인정되더라도 그에 따른 원고들의 손해배상채권이 이미 시효 소멸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에 관하여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나) 시효 소멸에 대한 당사자들의 주장
피고는, 이 사건 소가 원고들이 주장하는 불법행위시로부터 50여 년이 경과하여 제기되었고, 설령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대한민국과 일본국의 국교가 단절된 상태였던 1965. 6. 22. 이전까지는 원고들의 권리행사에 법률상 장애가 존재하였다고 보아 소멸시효 기산점을 1965. 6. 22.로 보더라도 소 제기 당시 이미 30여 년이 경과되었으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은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구 미쓰비시의 불법행위는 인도에 반하는 전쟁 범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시효제도가 적용되지 않고, 만일 시효제도가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의 국교 단절, 그 후 국교 수립과 동시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의 존재, 대한민국 국민의 대일 민간청구권을 소멸시킨 일본 국내법 제144호의 시행 등 법률상 장애사유로 인하여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던 중,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전면 공개된 후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 의견이 표명됨에 따라 책임주체에 대한 권리행사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진 2005. 8. 26.부터 비로소 진행하게 되었으므로 아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며, 그 동안 원고들의 끊임 없는 배상청구에 대하여 피고가 지금까지 보여온 태도에 비추어 피고가 이제 와서 시효 소멸의 항변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이나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다) 판 단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이 구 미쓰비시의 인도에 반하는 전쟁 범죄에 관련된 손해배상채권이라는 사정만으로는 그와 같은 채권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에도 소멸시효 제도는 적용된다 할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채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할 것인데( 민법 제766조 제2항), 원고들이 주장하는 이 사건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는 물론 피고의 주장과 같이 그 이후 대한민국과 일본국의 국교가 정상화된 1965. 6. 22.로부터 기산하더라도 원고들의 이 사건 소가 그로부터 10년이 이미 경과된 후인 2000. 5. 1. 제기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은 위 소 제기 이전에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할 것이다(한편, 원고들의 주장 자체에 의하더라도 원고 등을 비롯한 재한 피폭자들은 일본과의 국교가 수립된 직후인 1967년경부터 사단법인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를 설립하고 1974년 그 하부조직으로 한국원폭피해미쓰비시징용자동지회를 설립하여 같은 해 8월경 그 회원들이 피고를 방문하여 강제징용으로 인한 배상금 및 미수금의 지급을 촉구하였다는 것인바, 원고 등은 늦어도 그 무렵에는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보여지므로, 그 때로부터 기산하더라도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
또한,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인바(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그 동안 청구권협정 제2조 및 그 합의의사록의 규정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의 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 것인지, 혹은 우리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도 포기된 것인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어 왔고, 원고들이 위 청구권협정의 명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믿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청구권협정의 존재 또는 대일 민간청구권의 소멸을 규정한 일본 국내법의 제정·시행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들의 권리 행사를 저지하는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에 대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2005. 8. 26.이라는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경우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 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다고 할 것인데(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피고가 대한민국과 일본 간 국교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국교 수립시까지 기다리자고 하였고, 국교 수립 후에는 피고의 직접적인 배상의무는 부정하면서 다른 기업들이 피징용피해자들에 대하여 보상을 할 움직임을 보이면 원고 등에게도 성의를 보이겠다는 태도를 보인 사정만으로 피고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원고들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이 인도에 반하는 전쟁 범죄에 관련된 손해배상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의 시효 소멸의 항변 자체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원고들의 이 사건 손배배상채권이 이 사건 소 제기 이전에 이미 시효 소멸하였다는 피고의 항변은 이유가 있다.
 
다.  미지급 임금 청구에 대한 판단
원고 등이 구 미쓰비시의 노무자로서 강제노동을 하고 대한민국으로 귀환할 당시 구 미쓰비시로부터 지급받지 못하고 남은 임금의 합계액이 적어도 각 100만 원이 넘는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관하여, 원고 4 본인신문결과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설령 위와 같은 원고들의 임금 채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앞서 살펴본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과 마찬가지로 원고들의 위 임금 채권 역시 최장 10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하여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으므로, 어느 모로 보나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5.  결 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각 청구는 당사자들의 나머지 주장에 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모두 이유가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승호(재판장) 류재훈 황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