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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알선수재)피고사건

[서울형사지법 1994. 3. 14. 선고 93노7745 제4부판결 : 상고]

【판시사항】

피고인( (성명 생략)) 등의 참여 없이 이루어진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의 적부

【판결요지】

형사소송법 제221조의2 제5항에 의하면 판사는 수사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할 때에는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에게 같은 조 제1항 또는 제2항의 증인신문에 참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의 참여는 필요적 조건이 아니므로 그들에게 참여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다 하여 그것만 가지고 같은 조의 규정에 의한 증인신문이 위법이라고 할 수 없다.

【참조조문】

형사소송법 제221조의2

【참조판례】

대법원 1991.12.27. 선고 91도2527 판결(공1992, 816), 1992.6.23. 선고 92도682 판결(공1992, 2316)


【전문】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및 검사

【원심판결】

제1심 서울형사지법(1993.11.5. 선고 93고단4839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1년 6월에 처한다.
원심판결 선고 전의 구금일수 중 165일을 위 형에 산입한다.
피고인으로부터 금 600,000,000원을 추징한다.

【이 유】

피고인 및 변호인들의 항소이유 제1점의 요지는, 아래의 주장에서와 같은 이유로 원심은 증거능력을 흠결한 증거와 전혀 신빙성이 없는 증거들을 채택하여 피고인이 그 판시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사실을 그릇 인정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범하였고, 제2점의 요지는 원심의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데 있으며, 검사의 항소이유의 요지는 원심의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데 있다.
Ⅰ. 먼저 피고인 및 변호인들의 항소이유 제1점에 관하여 본다.
 
1.  원심이 유죄의 증거로 채택한 증인 1에 대한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
피고인 및 변호인들은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21조의2의 규정은 피고인과 변호인의 참여권이 박탈된 채 행해진 증인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위 조항은 위헌이고 따라서 이에 터 잡은 증인 1에 대한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으며 가사 위 조항이 위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형사소송법 제163조에 의하면 증인신문시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참여권 및 신문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증거보전절차에 있어서는 당사자의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피고인의 참여 없이 이루어진 위 증인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살피건대, 먼저 위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하여는 어느 법률이 위헌이냐의 여부는 헌법 제111조 제1항헌법 제113조 제3항에 근거한 헌법재판소법 제2조(관장사항)에 따라 이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고 법원은 헌법재판소법 제41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해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때에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결정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의 심판을 제청할 수 있을 뿐인바, 기록에 의하면 원심은 1993.11.5. 위 조항에 대한 피고인의 위헌심판제청을 기각하였고 피고인은 위 기각결정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을 제기하여 헌법재판소에서 1993.12.8. 재판부에 회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변호인들이 위 조항에 관하여 위헌제청신청을 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여 변호인들의 위 주장은 결국 위 조항에 대하여 당심이 직권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에 대하여 판단하면, 위 조항에 의하여 피고인의 참여가 없이 증인신문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러한 증인신문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1조에 의하여 증거능력만이 부여되는 것이고 그 내용의 신빙성은 오직 법관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것이므로 법관은 동 조항에 의하여 피고인의 참여 없이 이루어진 위 증인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이 부여되더라도 다른 증거들을 종합하여 보아 신빙성이 없으면 이를 채택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이는 결국 법관의 개개의 증거에 대한 증거판단에 관한 문제이지 본안 판단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동 조항이 반드시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재판의 전제가 된다고 볼 수 없어 변호인들의 위 주장은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가 없이 이유 없고, 나아가 서울형사지방법원 93초2072 제1회 공판기일 전 신문사건의 기록에 의하면 검사가 이 사건 제1회 공판기일 전에 증인 1의 신문을 청구한 것은 위 증인이 공판기일에 전에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과 다른 진술을 할 염려가 있고 위 진술이 범죄의 증명에 없어서는 아니될 것임을 이유로 한 것임을 알수 있는바, 이는 형사소송법 제184조에 의한 증거보전을 청구한 것이 아니고 같은 법 제221조의2 제2항에 의한 증인신문을 청구한 것임이 분명하며, 위 조문 제5항에 의하면 판사는 수사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할 때에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에게 위 조문 제1항 또는 제2항의 증인신문에 참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의 참여는 필요적 요건이 아니므로 그들에게 참여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다 하여 그것만 가지고 위법이라고 할 수 없어 변호인들의 나머지 주장도 이유 없다.
 
2.  다음으로, 원심은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쳐 채택한 원심에서의 증인 2, 증인 3, 증인 4, 증인 5, 공소외 2, 증인 6의 각 일부진술, 검사가 동인들에 대하여 작성한 각 진술조서의 원본 및 사본의 각 일부 진술기재와, 피고인이 원심에서 한 일부진술,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일부진술기재 및 이 법원 93초2072호 증인 1에 대한, 93초2375호 증인 3에 대한 각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에 따라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심의 피고인에 대한 위 범죄사실인정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관하여 본다.
가) 먼저 피고인은 위 범죄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반면 증인 3, 증인 2, 증인 1은 검찰 이래 원심, 당심(단 증인 1은는 검찰 및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절차에 의한 진술만 있다)까지 이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어 원심의 사실인정이 타당한가의 문제는 원심이 유죄의 증거로 채택한 위 증거들을 믿을 수 있고 이에 의하면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나) 당시의 객관적 상황
이 사건 당일인 1990.10. 초순 12:00경 피고인과 증인 3, 증인 1이 평창동 증인 1의 집에서 만나 다과를 함께 나눈 사실에 대하여는 피고인도 이를 인정하고 있고, 원심의 증인 2, 증인 3, 공소외 2의 각 일부 진술과 검사가 동인들에 대하여 작성한 각 진술조서의 원본 및 사본의 각 진술기재 및 당심의 증인 3, 증인 2의 각 진술에 의하면, 증인 2 형제들이 1990.4.경부터 국가안전기획부, 검찰, 경찰, 은행감독원, 감사원, 국세청 등으로부터 내사를 받게 되자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이던 공소외 3 등의 도움으로 이를 면해보려고 시도하였으나 끝내 1990.9.26. 청와대 특명사정반이 주도하는 서울지방국세청의 특별세무사찰을 받게 된 사실, 이번 사찰은 청와대 특명사정반의 공소외 4 사정비서관 주도로 시작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피고인이나 변호인들은 위 세무사찰이 청와대 특명사정반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이외에 당시 증인 2 형제에 대하여 서울지방 국세청의 특별세무사찰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하여는 이를 인정하고 있는바, 위 세무사찰이 청와대 특명사정반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검사가 공소외 2에 대하여 작성한 진술조서사본 및 원심의 증인 공소외 2의 진술에 의하면 이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당시의 객관적 상황에 대한 위 사실은 이를 인정할 수 있다.
다음, 증인 2 형제들이 위 세무사찰을 면하기 위하여 피고인을 선택한 경위에 대하여, 원심은 증인 2, 증인 3에 대한 검찰과 원심에서의 각 진술을 종합하여, 증인 2 형제들은 위 세무사찰을 면하거나 또는 세금을 경감받고 아울러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던 중 위 공소외 4 사정비서관에게 잘 통할 수 있는 인물을 통하여 세무사찰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그 대상자를 물색하다가 당시 실력자인 피고인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건대, 이러한 증인 2 형제에 대한 세무사찰경위, 증인 2 형제들이 위 세무사찰 무마 내지는 세금액의 감경과 형사고발을 면하기 위하여 피고인을 선택하게 된 경위에 관하여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 각 증거들 사이에 사소한 점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본질적인 부분에 관하여 자연스럽고 일관성이 있게 이에 부합하는 진술이 되어 있어 원심이 위 증거들을 믿고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여 증인 2, 증인 3의 진술을 신뢰한 것은 타당하다.
다만 변호인들이 위 증거들 사이(특히 증인 2와 증인 3에 대한 위 증거)에 모순점 및 번복된 사항이 많아 이러한 동인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부분에 대하여 살펴본다.
(가) 당시의 객관적 상황에 대한 원심에서의 증인 2, 증인 3의 각 진술과 검사가 동인들에 대하여 작성한 각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사이에 모순점 및 번복된 사항이 많아 위 증거들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1) 먼저 1990.10. 초순경은 피고인에게 세무사찰건에 대하여 부탁할 시점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하여
증인 2 형제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는 1990.9.26. 시작되었던 사실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이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증인 2가 검찰에서 한 진술 중 세무조사시기에 대한 진술이 원심에서 증인으로 한 진술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여 동인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취지로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세무사찰시기에 대하여 앞에서 본 원심에서의 증인 공소외 2의 진술의 취지는 "증인 2에 대한 세무조사는 1990.9.24. 기안해서 같은 달 26. 정씨 형제들이 경영하는 호텔, 업소 등을 덮쳐 관련 장부, 통장을 압수하면서 시작되었다"(원심 공판기록 1350쪽)라는 것이고, 반면 검사 작성의 증인 2에 대한 제1회 진술조서의 진술기재에 의하면 세무사찰시기에 대하여 "1990.8.경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느닷없이 저에게 세무사찰을 하였다"(수사기록 115쪽)고 진술하였다가 원심에서 증인 2가 증인으로 나와서는 "날짜 착오인지 구속될 때까지는 1990.7월 또는 8월인지 알았으나 1990.9.경이 맞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어 검찰과 원심에서의 진술이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증인 2의 이러한 각 진술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점에 관하여 보건대, 증인 2가 검찰에서 진술할 당시는 이 사건 세무조사가 시작된 때로부터 2년 8개월 정도가 지난 때이고 그 정도의 시기가 경과되었다면 보통의 경우 자기가 경험한 일 가운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중요한 사항, 즉 이 건에 있어서는 어느 무렵인지는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지만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나와 장부 및 통장 등을 압수해 갔다는 것에 관한 것이고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경험한 일의 구체적인 일시는 기억하기 어렵다고 봄이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며, 더욱이 검사 작성의 공소외 2에 대한 진술조서사본의 진술기재에 의하면 세무조사반장으로 위 세무조사를 시작한 공소외 2도 증인 2에 대한 탈세조사시기에 대하여 1990.9.26.이라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고 "정확한 기억이 안 나지만 1990.9. 하순경 서울지방국세청장의 명에 의하여 세무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수사기록 102쪽)고 진술한 점에 비추어도 더욱 그렇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미세한 부분에 대한 진술의 차이를 탓하여 동인의 진술에 대하여 신빙성을 탄핵하는 변호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하겠다.
또한 변호인들은 1990.10. 초순은 세무조사 초기 단계로서 구체적인 세금탈세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검찰에서 증인 2가 1990.10. 초순에 예상한 세금 추징액과 형사고발건에 대하여 한 진술은 믿을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검사 작성의 증인 2에 대한 진술조서의 진술기재에 의하면 증인 2는 "90.9. 하순경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저에게 700억 원 정도의 세금을 추징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대책을 논의하다가 1990.10. 초순경 피고인에게 청탁하게 되었다"(수사기록 115쪽, 116쪽)라는 취지로 진술한 반면 원심에서의 증인진술에서는 검사 및 변호인의 각 신문시 "장부라던가 통장을 일절 압수 당하고 나서 자기 나름대로 수소문을 해 본 결과 몇 사람들이 몇 백억 원의 추징이 나올 것이라고 하고 나중에는 검찰에 통보가 되어 형사처벌받을 것이라는 등의 말을 하길래 당시 자기의 수입규모로 보아 그에 상응하는 세금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나름대로 판단하여 그렇게 진술하였다"(원심 공판기록 528쪽, 529쪽), "국세청 직원이라든가 그 계통에 있는 전문세무사라든가 특정인에게 들은 얘기가 아니고 자기가 그런 일을 당하니까 주위사람들 말이 보통사찰이 아니고 특별사찰은 기둥뿌리를 싹 다 빼가는 것이어서 증인의 경우는 1, 2백억으로 될 게 아니라는 등등의 얘기를 하여 우리끼리 판단하기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원심 공판기록 547쪽)라고 진술하고 있고 당심에서의 증인진술에서도 대체로 원심의 진술과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으며, 검사 작성의 증인 3에 대한 제1회 진술조서에 의하면 "서울국세청에서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형( 증인 2를 지칭함)이 '큰일 났다.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 우리가 야당에 정치자금을 줬다고 청와대사정에서 지시한 모양--'"(수사기록 260쪽)이라고만 되어 있고 추징액 700억 원이라는 진술이 없다가 원심에서의 증인진술에서 "그것은 오래된 일이라서 저희 형이 약간 혼동한 것 같다. 700억 원 이야기는 내가 한 것이고 그 시기는 세무조사가 거의 마감되는 무렵"이고 그렇게 이야기한 경위로서 "세무조사가 시작되어 약 4, 5개월이 지난 후에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하는 말이 '당신네 원래 제대로 조사하면 한 7, 8백억 원쯤 된다. 그런데 이 정도 선에서 끝내기로 하고 이것을 납부고지할 테니까 여기에 대한 이의를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을 들었는데 고지된 세금에 대하여 형이 이의신청을 하자 내가 이게 제대로 하면 7, 8백억 원정도가 나온다는데--그대로 납부합시다'라고 말을 하였는데 형이 앞 뒤의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원심 공판기록 699쪽, 700쪽)고 진술하고,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도 "1990.10. 초는 세무조사가 시작되는 무렵인데 추징액수가 나올 수 없다"(원심 공판기록 758쪽), "형님이 그렇게 진술한 것은 형님이 앞 뒤를 모르고 진술한 것이다"(같은 기록 759쪽)라고 진술하고 있으며 당심에서의 증인진술에서는 검사나 변호인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는 신문을 하지 않아 이에 대한 진술이 없다. 한편 검사 작성의 공소외 2에 대한 진술조서에 의하면 "앞에서 본바와 같이 증인 2 형제의 사업장에서 영치한 관계서류나 장부가 부실하게 정리되어 있어 탈세 여부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어 약 20일 간을 허송하였다"(수사기록 103쪽, 104쪽)라고 진술하고 있고, 원심에서의 증인진술에서는 가명계좌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경위 및 세액 산출방법에 대한 진술 뒤에 "정씨 형제들이 포탈세금 추징 통보를 받은 후 국세청에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실제로 과세하면 700억 원이 넘는다는 증인(공소외 2을 지칭) 말에 바로 이의신청을 포기하고 자진납부하였다"(원심 공판기록 1352쪽)고 말하였고,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도 "1990.10. 초순에는 700억 세금추징설에 대하여 말한 사실이 없다"(같은 기록 1354쪽)고 진술하면서도 정씨 형제들이 세금고지에 대한 이의신청의 취하 경위에 대하여는 검사 신문시의 진술과 같은 취지로 진술(같은 기록 1365쪽)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 진술들을 종합하여 판단해 보면, 증인 2가 당시 이러한 추징금액에 대한 정보를 언제 알았느냐에 대한 동인의 진술에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700억 원이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하여는 증인 3, 공소외 2의 원심에서의 각 진술이 부합하고 있어 증인 2가 검찰에서 진술한 700억 원이라는 말이 증인 2가 만들어 낸 가공의 것이 아닌 점, 이 사건 발생시점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된 뒤에 검찰조사가 이루어진 점 등을 모두어 보면 동인의 위와 같은 검찰에서의 진술은 "장부라던가 통장을 일절 압수 당하고 나서 자기의 수입규모로 보아 그에 상응하는 세금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주관적으로 판단한 상태에서 나름대로 알아본 내용 즉 "이번 사찰은 보통사찰이 아니고 특별사찰은 기둥뿌리를 싹 다 빼가는 것이어서 증인의 경우는 1, 2백억으로 될 게 아니다"는 얘기 및 "나중에는 검찰에 통보가 되어 형사처벌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사실을 토대로 기억나는대로 진술한 것일 뿐 그것이 증인 2가 만들어 낸 허위의 진술이라고는 보여지지 아니하여 이러한 사소한 모순을 탓하여 동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2) 이 사건 세무조사가 사정비서관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당시 피고인이 세무사찰을 청탁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는 원심이 인정한 객관적 상황설정이 불명확하다는 점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먼저 위 세무조사가 청와대 사정비서관인 공소외 4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살피건대, 원심이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쳐 채택한 검사 작성의 증인 2, 증인 3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원본 및 사본, 원심에서 한 동인들의 각 진술에 의하면, 증인 2 형제들이 1990.9.26.경에 시작된 세무조사를 무마 또는 세금액을 경감시키고 형사고발을 막기 위하여 청탁의 대상자로 피고인을 선택한 이유로 1990.9.26. 청와대 특명사정반이 주도하는 서울지방국세청의 특별세무사찰을 받게 되자 이번 사찰은 이미 동인들이 경험한 것과는 성질이 다른 정치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 및 위 세무사찰은 청와대 특명사정반의 공소외 4 사정비서관이 주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인에게 잘 통할 수 있는 인물을 물색하다가 당시 실력자인 피고인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되어 있고 이를 배척할 만한 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데다가, 특히 증인 2 형제에 대한 특별세무사찰의 실무자로서 세무조사를 담당하였던 공소외 2의 원심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검사의 "위 세무사찰은 당시 청와대 특별사정 반장이던 공소외 4 사정비서관의 주도로 시작된 것이지요"라는 신문에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하였고, 검사가 동인의 위 진술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당시 공소외 4 사정비서관의 밑에는 국세청직원인 공소외 5가 파견나가 있었고 그가 서울지방국세청과 청와대를 오가며 증인 2 형제들에 대한 탈세조사 연락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지요"라고 추가로 묻자 "예"라고 대답(원심 공판기록 1350쪽)하여 위 세무사찰이 청와대 특별사정반의 주도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고 위 진술에 대한 변호인들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판사의 신문에 "흔하지 않게 위 세무조사를 위한 압수과정에 치안본부 특수대 요원들이 동원되어 이번 세무조사는 무겁구나", "공소외 5라는 사람을 아는데 그 무렵에는 청와대에 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원심 공판기록 1373쪽)라고 대답하는 등 세무사찰시작 경위에 대한 동인에 대한 검사신문시의 답변을 뒷받침하는 말을 그대로 진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의 세무사찰이 청와대 특명사정반에 의하여 주도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다음 피고인이 당시 세무사찰에 대하여 청탁할 지위에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하여는 6공화국 중반 무렵의 피고인은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실권자의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이 사건 이후 두 달도 안 되어 체육청소년부장관으로 입각하여 축구와 탁구 등의 남북 단일팀을 성사시키는 등 실권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들을 성사시켰다는 점만 보더라도 쉽게 이를 인정할 수 있다.
다) 다음으로 원심은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쳐 원심의 증인 2, 증인 3, 증인 4, 증인 5, 공소외 2, 증인 6의 각 일부 진술, 검사가 동인들에 대하여 작성한 각 진술조서의 원본 및 사본의 각 일부진술기재와 피고인이 원심에서 한 일부 진술, 검사가 피고인에 대하여 작성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일부 진술기재 및 이 법원의 93초2072 증인 1에 대한, 93초2375 증인 3에 대한 각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를 채택하고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증인 2 형제들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에게 접근할 방도를 모색하던 중 피고인과 증인 1이 매우 밀접한 사이임을 알아내고 먼저 증인 3을 통하여 동녀에게 접근 당시 자기들이 대대적인 세무사찰을 받고 있어서 매우 어렵게 되었으니 도와 달라는 취지의 운을 뗀 다음 1990.10. 초순 18.:00경 리베라호텔 라운지 커피.에서 증인 2, 증인 3, 증인 1이 만나 세무사찰을 받아 매우 곤란하게 되었으니 위 세무사찰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하여 피고인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고, 이를 승낙한 동녀는 1990.10. 초 피고인에게 전화로 증인 3 형제가 탈세조사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으니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느냐는 취지의 전화를 하자 피고인은 이에 응하여 다음날 증인 1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실, 증인 2는 피고인에게 돈을 제공하여 위 세무사찰을 면해 보려 하였기 때문에 동인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었던 증인 4에게 매장의 돈을 모아 2억 원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20년 동안 동업하고 있는 증인 7의 동생 (성명 생략)(실제 이름은 증인 6이고 통용되는 이름은 오진용인데 주위에서는 그냥 (성명 생략)으로 부르고 있음)에게 전화하여 3억 원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고 그 후 증인 4가 스스로 매장에서 수금한 돈 2억과 (성명 생략)이 가지고 온 3억을 합쳐 돈 5억 원을 쇼핑백에 넣어 리베라 호텔 로비 라운지로 가져왔기에 이를 자신의 차 트렁크에 있던 007 가방에 쇼핑백채 넣은 뒤 증인 3을 그 곳으로 불러 이를 동인에게 건네 주었는데 위 돈은 대부분 헌 수표(한 번 이상 사용된 수표라는 의미임)이고 현금도 조금 있었던 것으로 이야기 들었던 사실, 그 다음날 증인 3은 007가방 안에 있던 쇼핑백을 치우고 돈만 가방 안에 넣은 뒤 만나기로 약속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 (상세주소 생략) 소재 증인 1의 집으로 찾아가 그 곳에 온 피고인에게 세무사찰을 완화시켜 주고 형사고발을 막아 달라는 취지로 부탁하면서 위 돈가방을 피고인에게 건네준 사실, 한편 증인 3은 세무사찰을 당할 무렵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상호 생략)호텔 사장 증인 5가 피고인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피고인에게 위 세무사찰건을 부탁해 보겠다고 제의를 해 왔으나 그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망설이고 있다가 증인 1을 통하여 피고인과의 접촉을 도모하기로 결정하고 증인 1의 주선으로 피고인을 만났는데 피고인과의 만남을 모르는 증인 5가 다시 피고인과의 접촉을 주선해 주겠다고 제의를 해와 이를 거절하였으며, 증인 5에게는 1990.10. 중순경, 같은 달 말경, 같은 해 11. 중순경 각 200만 원, 200만 원, 300만 원 도합 700만 원의 용돈을 주면서 피고인이 자신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하는지를 잘 들어 주고, 만일 피고인이 증인 3에 대하여 말이 없으면 좋은 말을 하여 달라고 부탁한 사실, 그 후 증인 3은 피고인에게 부탁한 세무사찰 무마건의 진행 정도 및 계속적인 관심을 유발시킬 목적으로 증인 5로부터 피고인이 (상호 생략)호텔 사우나에 자주 온다고 들은 바가 있어 같은 해 11월경부터 위 호텔 사우나에 가서 피고인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다가 3-4차례는 피고인이 일행과 같이 있어 그냥 목례만 하고 지나치고 1990.11. 중순과 하순 각 1회씩 2번은 피고인이 혼자 옷을 입고 있어 그에게 다가가 양복상의 안주머니에 돈을 넣은 다음 이를 피고인의 뒷편에서 입혀 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건대, 위 원심인정사실은 이 사건의 실체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바, 이와 같은 증인 2 형제가 증인 1을 통하여 피고인과 접촉을 도모한 이유, 자금조성경위, 피고인에게 돈을 건네준 과정, 그 후 증인 3이 추가로 돈을 건네 준 경위, 과정 및 정황 등에 관한 증인 2, 증인 3, 증인 4, 증인 5, 증인 6 등의 검찰 이래 원심 및 당심에 이르기까지의 각 진술들이 모두 상호 일치하고 있고 이에 대한 중대한 모순점이나 의심점을 발견하기가 어려워 이를 증거로 채택하여 위 사실을 인정한 원심의 사실인정은 타당하고 변호인들의 사실오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다만 변호인들의 위 증거들 사이(특히 증인 2, 증인 3, 증인 1에 대한 위 증거들)에 모순점 및 번복된 사항이 많고 그 진술에 상당한 의심이 있어 이러한 동인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이에 대하여 살펴본다.
(가) 피고인과 증인 3이 만날 당시에는 5억 원이 준비될 수 없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증인 2가 증인 4에게 위 돈 5억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시점과 조성에 소요된 기간에 관한 검찰에서의 증인 2의 진술과 증인 1의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에서의 진술, 증인 3, 증인 4의 검찰 이래 원심 및 당심에서 한 각 진술을 종합해 보면 증인 3이 피고인을 만난 날에는 돈 5억이 마련될 수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검사 작성의 증인 2에 대한 진술조서에 의하면 "증인 2는 1990.10. 초순경 리베라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증인 3, 증인 1과 만나고 난 뒤 증인 4에게 돈 2억 원의 조성을 지시하였고"(수사기록 117쪽)라고 진술되어 있고, 검찰 작성의 증인 4에 대한 진술조서에 의하면 "증인 4는 1990.10. 초 증인 2의 지시를 받고 오락실매장에서 5-6일간 모든 돈과 (성명 생략)으로부터 받은 3억을 모아 증인 2에게 갖다 주었다"(수사기록 197쪽)라고 진술되어 있는 반면, 검찰 작성의 증인 3에 대한 진술조서, 원심의 증인진술, 증인 1에 대한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에 의하면 증인 3이 피고인을 만난 날은 위 리베라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증인 2와 함께 증인 1을 만난 3일 후라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변호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검찰에서의 증인 2의 진술에 의하면 증인 3이 피고인과 만나던 날까지는 돈의 준비가 될 수 없었던 것이 되나, 원심의 증인 2의 진술에 의하면 이점에 대한 검사신문시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날짜와 그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진술한 것인데 당시 증인 3이 증인 1을 데리고 온다고 하기에 증인 1을 만나기 전에 증인 4에게 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기억한다"(원심 공판기록, 532쪽)는 취지로 진술하여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하고 있고 변호인의 반대신문에도 같은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앞에서 설시한 바와 같이 증인 2가 검찰에서 진술할 때는 이 사건이 발생한 후 2년 8월 정도가 경과된 상태에서 피고인과의 접촉경위 및 과정을 전체적으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그 자금의 마련을 증인 4에게 시켰다는 사실 자체에 중점을 두어 진술한 것일 뿐 그 시점에 대하여 별의미를 두지 아니한 채 진술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검찰에서의 증인 2와 증인 4의 진술에 의하면 증인 2가 증인 4에게 2억 원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 증인 4가 5-6일 정도 걸린다고 답변한 것이 아니라 증인 2가 먼저 5-6일 정도 오락실 수입을 모으면 2억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어 증인 4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는 것이고, 앞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당시는 청와대 특명사정반의 주도에 의한 국세청의 특별세무사찰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증인 2의 입장으로서는 증인 1과 안면이 있는 증인 3에게 증인 1과 만나 피고인과의 접촉을 도모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증인 3이 증인 1과 안면이 있어 일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되어 증인 1을 만나기 전에 피고인에게 줄 세무사찰 무마를 위한 자금을 미리 마련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원심에서의 증인 2의 진술이 보다 설득력이 있고 이 또한 믿을 수 있다 할 것이므로 원심에서 진술을 바꾸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더 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를 고려하면 이 부분에 대한 변호인들의 탄핵은 별 의미가 없다 할 것이다.
(나) 헌 수표뭉치를 준비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당시 증인 2 형제의 가명계좌는 영치가 되지 않아 이를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매장의 헌 수표를 모아 가지고 줄 이유가 없으며 그 이유에 대한 검찰에서의 증인 2, 증인 3, 증인 4의 각 진술과 원심에서의 증인 3, 증인 2, 증인 4의 각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진술을 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위 증거들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살피건대, 검찰에서 증인 2, 증인 3이 한 각 진술에 의하면 돈 5억의 조성경위에 대하여 "위 돈 5억 원은 증인 2의 돈이고 그 돈의 조성지시도 증인 2가 당시 동인의 경리담당인 증인 4에게 지시한 것이고 증인 3은 조성된 돈을 피고인에게 전해 주었을 뿐이다"라는 취지로 진술되어 있을 뿐 그 외에 매장에서 헌 수표로 5억을 모은 이유에 대하여는 검사가 조사를 하지 않아 그에 대한 진술이 없고, 다만 증인 3이 각 5,000만 원씩 2회에 걸쳐서 피고인에게 준 1억 원을 헌 수표로 준 이유에 대하여만 "그 당시 세무사찰중이었으므로 은행을 이용할 수 없어 보관하고 있던 매장수입금 중 100만 원권 수표만 골라서 주었다"(수사기록 276쪽)라고 진술되어 있고, 검사 작성의 증인 4에 대한 진술조서에 위 돈 5억의 조성경위에 대하여 "그 당시 막 세무조사가 시작되어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장부와 통장을 모두 압수해 갔을 때라 은행도 이용할 수 없을 때라 회장님의 지시를 받고 매장수입금으로 2억 원과 (성명 생략)으로부터 받은 3억 원을 합해 도합 5억 원을 만들었다"(수사기록 196쪽, 197쪽)라고 진술되어 있다.
그러다가 증인 2가 헌 수표를 모은 이유에 관한 최초의 진술은, 동인이 원심에서 증인으로 진술할 때로서 검사의 신문에 "통장과 장부를 다 빼앗긴 상태여서 그때는 '겁이나 은행에 갈 생각도 못하고'있었고 그냥 매장에 있는 대로 현찰을 모았습니다"(원심 공판기록, 535쪽)라고 진술을 하였고,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시에 "단지 그때 그런 돈밖에 줄수 없어 그렇게 하였다"(원심 공판기록, 545쪽)라고 진술을 한 다음 재차 변호인이 헌 돈을 마련한 이유가 통장이 전부 압수되어서 그런 것이냐고 추궁하자 "전부 다 뺏기고 제 자신도 '겁이나 은행 문 앞을 못 갔을 때'이고 급해서 그때는 있는 돈만 모아서 사용할 때이다"(같은 공판기록, 545쪽),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당시가 세무사찰중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원심 공판기록, 559쪽)라고 진술하고 있는바, 위 진술들을 종합하면 증인 2가 헌 수표를 모으게 된 이유에 대한 최초의 진술에서는 새 수표로 5억 원을 마련하지 못한 주된 이유로 "은행을 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반복하여 진술하고 있고, 모든 통장과 장부를 압수당하였다는 진술부분은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특별한 의미 없이 진술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또한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증인 2가 가명계좌의 존재를 숨긴 것은 동인이 지금까지도 조세포탈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가명계좌에 대한 내용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검찰에서의 증인 4에 대한 진술내용도 같은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 그 이후의 변호인들의 증인 2에 대한 반대신문이나 원심에서의 증인 4에 대한 반대신문은 모두 헌 수표 모집이유를 증인 2 및 증인 4의 위 진술 중 특별한 의미 없이 그때의 상황을 설명한 "통장 및 장부가 전부 압수"되었다는 부분을 부각시켜 검사 작성의 공소외 2에 대한 진술조서사본과 원심의 증인 공소외 2에 대한 진술 및 그 당시 가명계좌에 대한 추적결과를 가지고 그 당시 가명계좌가 압수되지 않았음을 밝히며 증인 2와 증인 4의 진술을 탄핵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건대, 증인 3은 5억 원의 조성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동인의 진술은 자기가 조성한 1억 원에 대한 것 이외는 증인 2와 증인 4의 위 진술을 나름대로 추측하여 보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할 것이고, 이에 대한 것은 직접 자금의 조성을 지시하고 자금을 조성한 증인 2와 증인 4의 진술인데, 동인들의 진술의 요지는 요컨대, 그 당시 동인들의 가명계좌가 살아 있었고 일부 가명계좌를 통한 은행거래도 하기는 하였지만 그 당시가 조세포탈혐의로 세무사찰을 받으면서 장부도 압수되고 은행통장도 압수된 비상상황이고, 가명계좌의 노출을 꺼려 은행가기도 겁나는 상태에서 고위 공직자이고 실력자인 피고인에게 줄 세무사찰의 무마를 위한 로비자금을 가명계좌 등 은행을 통한 돈으로 마련한다는 것이 겁나서 그냥 있는 돈을 모아서 갔다 준 것이라는 취지로서 동인들의 이러한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며, 동인들이 그 당시 가명계좌를 포함한 모든 통장이 압수되었다거나 가명계좌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진술은 동인들이 모두 변호인들의 집요하게 반복되는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고인에게 헌 수표를 가져다 준 이유를 좀 더 합리화시키고 설득력있게 보이기 위하여 나름대로 둘러 댄 것에 불과하여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판단되므로 이러한 증인 2나 증인 4의 진술과 달리 그 당시 압수되지 않은 가명계좌가 있었고, 일부 가명계좌를 통한 은행거래를 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증인 2나 증인 4의 진술전체를 믿지 못할 사유로 삼기 어렵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세무사찰이 시작된 이후 가명계좌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세무사찰이 시작된 1990.9.26.부터 증인 2가 금 5억 원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1990.10.초(원심의 증인 4의 진술에 의하면 1990.10.4. 무렵이라고 함)까지 매장수입금을 모았을 것이고 하루 매장수입금을 최소한 5,000만 원으로 계산해도 몇 억이 되고 위 돈은 금고에 남아 있어야 되는데 왜 증인 4는 증인 2로부터 금 2억 원을 마련하라고 지시받았을 때 3,000만 원 내지 4,00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고 진술하였을까 라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증인 4는 검사로부터 아무런 조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원심의 증인으로 장시간 진술하다가 증인신문 마지막 무렵에 있었던 변호인의 질문에 그 이유를 진술하였는데, 처음에는 3,000만 원 내지 4,000만 원은 자기의 비상금이었다고 진술하다가 나중에는 세무사찰팀이 있는 주거래은행인 중소기업은행 압구정지점 이외의 다른 은행과는 가명계좌로 거래하였기 때문에 수입금을 입금시켰고 그 당시 가지고 있던 것이 3,000만 원 내지 4,000만 원이라는 취지로 진술을 바꾸었다가 변호인이 그러면 위 거래은행의 가명계좌를 이용하여 금원을 마련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라고 이전의 진술과 다른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 등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였으나 이에 대한 검사의 심문에서 세무사찰중인 1990.9. 말경에도 동업자에 대한 지분을 증인 2에게 주었으며 당시가 추석무렵이라 종업원에 대한 월급, 추석 보너스 등 보통 보다 많은 경비가 지출되었다는 취지로 대답하고 있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증인 4는 장시간에 걸친 중복, 유도신문으로 인하여 매우 피로한 상태(동인에 대한 증인신문조서의 정수로 보아 미루어 짐작이 간다)에서 변호인의 갑작스런 질문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다가 검사의 신문에서야 비로소 애매하지만 어느 정도 타당한 답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며, 또한 이 사건이 있은 후 2년 11개월만에 진술하면서 그 당시의 모든 것을 기억해 낸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므로 동인의 진술에 약간의 애매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동인의 모든 진술을 믿지 못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다) 그러면, 고위 공직자인 피고인과의 첫 만남의 자리에서 수천 장의 헌 수표로 자금이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가
우선 당시의 객관적 상황이 위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증인 2 형제들은 1990.4.부터 수개의 사정기관에서 내사를 받아 오다가 급기야는 1990.9.26. 대대적인 특별세무사찰이 개시되었고 이는 기존의 세무사찰과는 성격이 다른 청와대 특명사정반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던바, 증인 2 형제들은 자신들의 사활이 걸린 위 세무사찰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 방법을 강구하려 했을 것이고 그 해결책으로 동인들이 전부터 사용한 유력자와의 접촉을 도모하려 했을 것임은 쉽게 납득이 간다.
그러한 상황하에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과의 만남이 우연한 만남이 아니고 증인 1을 통한 은밀하고 계획적인 접근을 통하여 은밀한 장소에서 어렵게 성사된 만남이므로 증인 2 형제의 입장으로서는 어떻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고, 첫 만남의 어색함이나 피고인과의 신분이나 나이 차이에서 오는 청탁의 어려움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메우려 했을 것이며 피고인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만남이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증인 1의 주선으로 이루어졌고 그 만남의 장소가 은밀한 자리였으며, 이미 학교선배인 공소외 1을 통하여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만남이 이루어진 점에 비추어 첫 대면에서도 청탁과 금원의 교부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더욱이 첫 만남에서 청탁과 금원이 교부되었다고 판단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증인 1 집에서의 만남 이후에 증인 3이 추가로 돈 1억 원을 전달해 줄 때 이외는 피고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고인과 친분관계가 있었던 증인 5가 세무사찰 무마에 관하여 피고인과의 접촉을 알선해 주겠다고 제의했음에도 이를 거절하고 단지 피고인에게 좋은 인상만 심어달라고 부탁한 점으로 이는 피고인과의 첫 만남에서 증인 3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을 반증한다 하겠다.
(라) 증인 3이 추가로 1억 원을 제공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사전의 약속이 없는 상태에서 공개되어 있는 사우나에 찾아와 추가로 금 1억 원을 제공하였다는 증인 3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살피건대, 원심이 채택하고 있는 증인 3 및 증인 5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금원이 제공되게 된 경위와 필요성 및 제공 전후의 주변상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나아가 증인 3이 피고인에게 금원을 제공하였다는 위치는 피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곳이 아니어서 증인 3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원심의 증인 5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의 전용 옷장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원심의 증인 5,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이 지적하는 곳은 피고인이 주로 이용하였다는 지점에 불과하므로 이로써 증인 3이 지적하는 곳에서의 금원 제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가 위 증인들과 피고인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마) 증인 1의 역할에 모순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증인 3이 공소외 1이나 증인 5의 제의를 거절하고 굳이 증인 1을 통해 피고인과 접촉했던 것치고는 증인 1의 역할이 피고인과 증인 3의 만남을 1회 주선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동녀의 역할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그 자리에서는 우선 피고인에게 좋은 인상만 심어 주는 것에 그쳤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검사 작성의 증인 3에 대한 제2회 진술조서, 검사 작성의 증인 5에 대한 진술조서나 원심의 증인 3, 증인 5의 각 진술 및 당심에서의 증인 3의 진술에 의하면, 증인 3은 증인 5로부터 피고인과의 접촉을 주선하겠다는 제의가 있었으나 증인 5를 신뢰하기 어려워 생각중이었는데 피고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증인 1을 생각해 내고 증인 1을 통하여 피고인과의 접촉을 도모하게 된 것이고 피고인과의 접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1990.10. 중순경 증인 5의 제의를 거절하였다라고 진술하고 있고, 증인 5도 1990.10. 중순경에 증인 3에게 피고인과의 접촉을 주선하겠다고 제의하였는데 증인 3이 거절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증인 3이 증인 5의 제의를 거절한 이유에 납득할 만한 점이 있는 데다가 증인 1이 피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증인 3이 피고인과의 만남을 원한다는 사정을 설명해 주고 피고인으로부터 만남의 약속을 받아 낸 후 피고인을 자신의 집으로 오게하여 증인 3과 은밀하게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준 점과 피고인과 증인 1 간의 흔치 않은 친분관계로 그 날의 만남이 매우 부드럽고 편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이 가므로 증인 1의 역할이 결코 미미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게 한다.
(바) 세무조사의 3차 연장과 127억 원이 추징된 점에 비추어 피고인이 청탁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피고인은 서울지방국세청이나 청와대 관계비서실에 위 세무조사에 관하여 청탁한 일이 없고 세무조사가 엄정하게 집행된 점에 비추어 보면 증인 2 형제가 금원을 제공하였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비록 세무조사가 3차 연장되어 130여 억 원이라는 거액의 세금이 추징된 점은 인정할 수 있으나, 검사 작성의 공소외 2에 대한 진술조서사본의 진술기재나 원심의 증인 공소외 2의 진술에 의하면, 세무사찰과정에서 4개 은행의 가명계좌만 밝혀 냈을 뿐 그 이외는 밝혀 내지 못하였고 자기 생각에는 더 있을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는 점 및 원심의 증인 2, 증인 3, 증인 4의 각 진술에 의하여 나타난 그들의 수입규모와 정도 등을 종합해 보면 위 금액이 그들의 수입을 모두 적발해 내어 세금을 추징한 것으로 볼 수 없는데다가, 국세청에서 증인 2 형제에 대하여 거액의 조세를 포탈한 사실을 확인하였으면 당연히 동인들을 검찰에 고발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위 세무조사가 반드시 엄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사) 후속 접촉의 부존재
증인 3이 피고인에게 돈을 주고 동지하기로 했다면 그 후 2년 6개월여 동안 피고인과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경험칙에 반한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검사 작성의 증인 3의 진술조서, 원심 및 당심의 증인 3의 각 진술에 의하면, 증인 3은 증인 1의 집에서 피고인과의 만남 이후 피고인과 관련된 한통협에 가입하였고, 증인 5에게 돈을 제공해 가며 동인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피고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청탁한 내용을 환기시켜 주기 위하여 추가로 금원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에 의하면 증인 3이 피고인과 전혀 무관하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피고인에 대하여 계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고, 추가로 1억 원을 피고인에게 전달한 이후에 만남이 없었던 것은, 증인 3 측이 적극적으로 피고인과 만남을 추진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점 및 고지된 세금을 납부하고 난 이후에는 눈앞에 닥친 현안이 없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과의 후속접촉을 하지 않은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겠다.
(아) 증인 2, 증인 3, 증인 4, 증인 6의 진술에 모순 및 번복된 것이 많다는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증인 2, 증인 3, 증인 4, 증인 6의 검찰에서의 각 진술과 원심 및 당심에서의 각 진술사이에 모순 및 번복이 있어 이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나 변호인들의 장시간에 걸친 중복, 유도신문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실체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는 일관되고 서로 일치하고 있으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소한 부분에 관한 일부 진술의 모순 및 번복은 3년 가까이 지난 사건에 관한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와 증인들의 자기보호본능상 불가피한 것이므로 이를 이유로 그 진술 전체를 모두 믿을 수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겠다.
(자) 증인 1 진술의 임의성 의혹 및 일관성을 상실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들은 증인 1의 진술이 임의성이 없는 측면이 있고 일관성을 상실하였다는 취지로 주장을 하나, 원심은 동녀에 대한 검찰에서의 각 자술서 및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오직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만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였으므로 이와 관련하여서만 판단하면, 위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은 판사실에서 판사, 법원주사보, 검사가 참여한 가운데 판사 앞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임의로 진술한 것으로 임의성이 있다 할 것이고 다만 그 내용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보면, 증인 1은 증인 2의 이 사건에 관한 최초의 조사가 있은 다음날인 1993.5.13. 검찰에 소환되어 3회에 걸쳐 자술서를 작성하고 검사로부터 제1회 조사를 받은 후 그 다음날인 같은 해 5.14.에 4회에 걸쳐서 조사를 받고, 그 다음날인 같은 해 5.15.에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을 받았으며 1993.5.21.에 1회, 다음날인 같은 해 5.22.에 증인 3과의 대질을 거쳐 같은 날 피고인, 증인 3, 증인 1 간의 대질신문을 받았다.
증인 1은 소환되어 작성한 최초의 자술서에서부터 증인 2 형제로부터 세무사찰에 대한 대책으로 피고인의 알선을 부탁받은 경위 및 피고인과 증인 3의 만남을 주선하는 과정 등에 관하여 증인 2의 최초 진술과 일치하는 진술을 하고, 피고인과 증인 3이 만난 당일에 관하여는 증인 3이 피고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단둘이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여 현관 옆방에 안내하여 둘이서만 그곳에서 이야기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고 피고인과 증인 3 간에 금원이 수수된 것은 못보았다고 금원의 존재와 목격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2차례 더 자술서를 작성한 후 그날 검사로부터 처음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돈을 주는 것은 보지 못하고 다만 증인 3과 피고인이 현관 옆방에서 이야기하는 도중 차와 과일을 준비하여 그 방에 들어 가니 증인 3 옆에 헌 수표뭉치가 들어 있는 사각형의 가방과 누런봉투가 있었고 차와 과일을 피고인과 증인 3 중간에 놓고 나왔다고 진술하여 수표의 존재에 대하여 진술하였고, 그 다음날의 2-4회까지의 진술에는 이 사건과 무관한 내용의 진술이 있다가 제5회 진술시에 증인 3이 피고인을 배웅하고 들어오면서 몇 억 원인가를 주었다는 말을 하였다고 진술하였고, 그 다음날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에서는 지금까지 검찰에서 진술한 대로 피고인과 알게 된 경위, 증인 2, 증인 3을 알게 된 경위, 세무사찰과 관련하여 피고인의 알선을 부탁받은 경위 및 피고인과 증인 3 간의 만남을 주선하는 과정, 현관 옆방에서 가방을 목격하게 된 경위, 증인 3이 피고인을 배웅하고 들어오면서 한 이야기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는바, 그녀와 피고인과의 관계 및 피고인과 증인 3과의 만남을 주선한 동녀의 가담 정도에 비추어 최초의 자술서 작성시에 금원의 존재 및 목격사실을 밝히지 않은 점은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여겨질 뿐만 아니라 1993.5.22.에는 피고인과 증인 3 및 증인 1 간의 3자 대질을 하면서 변호사 자격이 있는 피고인으로부터 충분한 반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및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에서 한 피고인과 증인 3과의 만남을 주선하게 된 경위, 만남 당일 현관 옆방에서 목격한 내용에 관하여 종전의 진술과 동일한 내용으로 시종 일관성 있게 진술한 이상 증인 1의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에서 한 위 진술은 믿을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변호인들은 피고인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과정과 이 사건 현장상황에 대하여 증인 1과 증인 3의 진술에 차이가 있어 증인 1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나 앞에서도 설시한 바와 같이 이 사건 실체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실에 관하여 증인 1, 증인 3의 진술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는 이 사건이 최초의 조사시부터 2년 8개월 전의 일이고 인간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하겠으며, 따라서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탓하여 증인 3의 검찰, 원심에서의 각 진술 및 증인 1의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 절차에서의 진술 전체를 믿을 수 없다는 변호인들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변호인들은 금원수수의 유일한 목격자인 증인 1의 법정에서의 진술을 듣기 전에는 이 사건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을 하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증인 1의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에서 한 진술은 증인 3이 피고인에게 금원을 지급하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것이 아니고 헌 수표가 든 가방을 보았다는 것이므로 이는 피고인이 돈을 받아갔다는 점에 대한 직접증거가 아니고 오히려 피고인이 돈을 받아 갔다는 점에 대한 직접증거는 돈을 준 검찰에서의 증인 3의 진술과 원심 및 당심에서의 진술이라 할 것이고, 증인 1은 증인 2, 증인 4, 증인 6 등과 함께 증인 3의 그 부분 진술을 신빙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황증거에 불과하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증인 1의 법정에서의 진술이 없더라도 다른 증거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다.
 
3.  결 론
그러므로 보건대, 위와 같은 이유로 증인 1에 대한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있고, 원심이 적법한 증거조사절차를 거쳐 채택한 증인 2, 증인 3, 증인 4, 증인 5, 증인 6, 공소외 2의 각 일부 진술, 검사가 동인들에 대하여 작성한 각 진술조서 원본 또는 사본의 각 일부 진술기재 및 증인 1, 증인 3에 대한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 등은 이 사건 실체에 관한 부분에 있어 모두 일관되고 상호 일치하며 중대한 모순점이나 의심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앞에서 본 바와 같은 그 당시의 객관적 상황과도 부합하므로 이를 믿을 수 있고 위 각 증거들에다가 당심의 증인 2, 증인 3, 증인 4의 각 일부 진술과 피고인이 원심 및 당심에서 한 일부 진술, 검사가 피고인에 대하여 작성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일부 진술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어 원심의 사실인정은 타당하고 피고인 및 변호인들의 항소논지는 이유 없다.
Ⅱ. 다음으로 피고인 및 변호인들의 항소이유 제2점 및 검사의 항소이유에 관하여 판단하면, 그 동안 피고인이 우리 나라의 정치발전 및 남북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하여왔다는 점, 피고인의 성행, 직업과 환경, 범행의 동기 및 수단과 결과 그리고 범행 후의 정황 및 특히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다른 사건들과의 처벌의 형평성 등 이 사건에 나타나 있는 양형의 조건들을 참작하여 보면 원심이 피고인에 대하여 선고한 형량은 가볍다기 보다는 오히려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보여지므로 피고인 및 변호인들의 항소만이 이유 있다.
이에 본원은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본원이 인정하는 범죄사실 및 그에 대한 증거의 요지는 모두 원심판시와 같으므로 같은법 제369조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1990.12.31. 법률 제4291호로 개정되기 전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3조(징역형 선택)
 
2.  미결구금일수산입
형법 제57조
 
3.  추 징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13조

【양형의 이유】

피고인이 고위 공직자임에도 국민들의 신뢰를 배반하고 폭력조직의 자금원으로 알려진 슬롯머신업자인 증인 2 형제로부터 금 6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받은 점, 당심에 이르기까지 범행일체를 부인함으로써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점 등 정상이 나쁜 면이 있으나 그 동안 우리 나라의 정치발전 및 남북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하여 왔다는 점, 이 번 판결이 확정되면 일정기간 공직에 나아갈 수 없다는 점 및 피고인의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 등을 참작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과중하여 부당하고, 비록 새 정부출범 이후 뇌물 등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고위 공직자들 대부분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기는 하였으나 앞서 본 나쁜 정상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여겨져 본 재판부는 심사숙고한 끝에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성기창(재판장) 윤성원 박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