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광고
【판시사항】
가. 방송출연계약의 의의와 신의칙상의 의무
나. 방송출연계약에 위반하여 제작내용의 일부를 무단 삭제하여 방송한 경우, 적극적 계약침해와 불법행위의 성립
다. 헌법상 방송의 자유와 편성권
라. 개인의 표현의 자유 및 저작권과 방송사의 편성권
마. 매체의 관리자로서 방송법인의 지위
바. 방송법상 편성규범의 법적 의의와 효력
사. 논란되는 공적 쟁점에 관한 공정성의 요건
아. 인격권침해시의 구제수단
자. 패소사실의 방송명령과 양심의 자유
【판결요지】
가. 방송출연계약의 당사자 쌍방은 계약의 원만한 이행을 위해 상호협력의무를 부담하게 되는데, 제작자인 방송법인은 제작하게 될 프로그램의 편성의도와 제작목적 및 주제, 출연계약의 상대방이 제작출연에 기여하게 될 형태(인터뷰 또는 토론)와 내용, 생방송되는가 또는 녹화방송되는가의 여부, 녹화방송시에는 프로그램의 편집 여부와 삭제와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취지 및 정도, 프로그램 내에서 출연자의 순번, 비중, 주어질 질문의 내용, 범위 등을 소상히 설명하고 출연자로 하여금 예상하지 못한 취급으로 기만당하였다고 느끼게 하여서는 아니 될 신의칙상의 의무를 부담하며, 출연자로서는 제작자측으로부터 방송내용에 관해 법적 책임이 발생할 부분이 있어 방송에 부적합한 내용의 삭제 또는 수정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그에 응하여 수정편집에 협력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신의칙상의 의무가 있다.
나. 방송출연계약에 따라 60분 간 방송하기로 한 프로그램을 위해 63분에걸쳐 강연을 녹화하였으나 강연자가 연술한 내용 중 23분에 해당하는 중요부분의 내용을 방송사가 임의로 삭제수정하여 40분 간 방송하였다면 방송사는 강연자와의 그 출연계약을 적극적으로 침해함과 동시에 강연자의 저작인격권(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방송사는 그 고의에 의한 불완전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인하여 강연자가 입은 손해를 전보할 의무가 있다.
다. 헌법상 방송의 자유란 방송주체의 존립과 활동이 국가권력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함을 의미할 뿐 아니라 국가권력 이외에 방송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회 제 세력에 대하여도 그 효력을 주장할 수 있으나, 그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상 국민의사결정의 원리에 따라 다양성원칙과 공정성의무에 의해 구속받는 제도적 자유이며,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체제 아래서 방송의 자유 내지 편성권의 주체는 전파법상 허가를 받고 방송을 행하는 방송국을 경영하는 방송법인이고, 방송법인이 이러한 방송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특히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을 위요한 제 권한은 법령상 방송법인을 대외적으로 대표하고 대내적으로 업무를 통괄하는 방송법인의 기관이 담당하게 된다.
라. 방송법인이 국가 이외의 제3자에 대해서도 방송의 자유(편성권)를 주장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편성권을 행사하여 특정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내부적 계획을 세운 후 방송사의 소속원이 아닌 제3자와 출연계약을 맺게 된 경우에는 그 당사자의 일방인 방송법인은 그 사법상의 출연계약에 특별히 약정한 바가 없다면 그 계약의 내용에 따라 제작하고 방송할 의무를 부담할 뿐 그 방송법인이 갖는 편성권이 제3자인 출연자의 저작권을 임의로 침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마. 방송매체를 관리하는 방송법인은 그 운영 방송채널을 통하여 송출한 내용 전반에 관하여 관리자로서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구체적인 경우에 프로그램의 종류와 제작형태에 따라서 법적인 책임의 귀속과 부담의 정도는 달라진다. 매체가 단지 타인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 불과한 순수한 채널 내지 의견의 시장으로서만 기능하는 경우에는 방송법인이 방송내용을 검토하여 이를 수정한다거나 삭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러한 경우 방송법인에 대하여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면 방송의 매체로서의 전파기능을 저해하고 방송을 통한 언론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표현된 제3자의 표현내용에 대하여 방송법인에게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다. 방송사 소속 임·직원의 표현내용이 법적으로 문제되는 경우에 이를 수정 삭제할 권한이 방송법인의 기관에게 인정되는 것은 물론이다. 방송국의 경영자인 방송법인은 형사상의 처벌법규에 위반하는 표현내용을 방송하거나 그 방송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을 침해한 경우 그 실제상의 행위자와 함께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됨이 원칙이라 할 것이고, 이러한 법리의 당연한 귀결로서 방송법인은 편성과 방송을 행함에 있어서 방송내용에 관하여 심사할 권한과 의무를 갖게 된다. 사외의 제3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이나 저명한 인사 등이 스스로 출연하여 일정 주제에 관하여 개인적 소견을 진술하는 프로그램에 있어서 그 내용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원칙상 제작자 또는 원진술자인 제3자에 귀속되고 매체의 관리자인 방송공사가 위 제3자의 표현행위로 인해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 즉, 외부의 제3자가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방송법인이 편집제작하여 방송한 진술내용이 예컨대 명예훼손, 음란 또는 내란선동 등 다른 법익을 침해하는 것인 경우에 이를 전파한 방송법인은 그것이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면책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방송법인은 그 방송내용으로 인하여 방송법인에게 법적 책임이 부과될 사항을 심사하고 이를 배제할 수 있는 일반적인 관리자의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바.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며, 사회정의의 전파, 국민의 기본권옹호 및 국제친선의 증진에 기여하여야 하고 특정한 정당, 집단, 이익, 신념 또는 사상을 지지 또는 옹호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방송법 제5조는 방송이 공공의 소유라고 생각되는 유한한 자원인 전파를 사용하여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불가결한 여론의 형성에 기여하는 중대한 기능에 비추어 방송에 부과되는 공정성의 원칙이라고 하는 헌법적인 요청을 법률로써 명문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성의 원칙이란 방송법인이 방송할 사항을 편성함에 있어서는 인간의 존엄, 존중이라는 헌법상의 기본적 합의를 토대로 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구성원의 의견과 이익이 다양함을 전제로 하여 각계각층의 관심사 중 논란되는 현안의 쟁점을 주제로 선택하고 그에 관련되는 모든 이해관계의 입장이 실제상의 중요성에 상응하도록 합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질 것을 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같은 조 제1항에 규정된 이러한 원칙은 의견이 대립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프로그램을 편성 또는 제작함에 있어서 적용되는 것이며, 이러한 편성규범은 방송주체를 수명자로 하여 명령된 규정이어서 방송법인 및 그의 편성권행사를 보조하는 소속 임.직원은 편성을 행함에 있어서 이러한 법적인 기준에 구속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헌법상 의견표현의 자유를 보호받는 방송사 외의 기고자나 참여자와 같은 제3자는 이러한 방송법상의 의무를 지킬 의무가 없다.
사. 방송법인은 여론형성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 논란되는 공적 쟁점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편성해야 할 뿐 아니라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주제에 관하여는 공정성원칙에 따라 사회 내의 찬반입장 또는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실제상의 비중에 따라 의견이 표현되도록 프로그램을 편성하여야 하는 것인데, 이러한 공정성요건을 충족하려면 다수의 견해가 동시에 주장되고 반박됨으로써 토론이 이루어지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바람직하고, 반박과 토론이 있을 수 없는 개인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부득이 개인주장프로그램의 형식을 취하려면 여러 입장의 다양한 견해를 가진 다수 인사의 의견을 실제적 중요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함께 또는 시리즈의 형태로 편성하는 방법으로 다양성과 공정성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아. 불법행위에 의해 인격권이 침해되는 경우, 현행법상으로는 금전배상의 원칙만이 인정될 뿐 원상회복청구권 내지 이른바 만족청구권은 명문으로 규정되고 있지 않지만, 인격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명예가 훼손된 경우 현행 민법 제764조가 법원이 명예회복을 위한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저작권법 제95조가 고의 또는 과실로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는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과 지배적인 학설이 일반적 인격권에 대하여 배타적 지배권으로서 대세적 효력을 인정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법원은 피해자가 바라는 경우 금전으로 손해배상을 명하는 이외에 원상의 회복을 위한 조치 또는 피해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발전하는 법질서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해구제수단을 다양화하여 형평을 기하는 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자. 원고가 이른바 만족청구권의 한 형태로서 피고 방송법인이 약정과 달리 원고의 강연내용을 부당히 삭제하여 방송함으로써 원고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점에 관하여 법원으로부터 패소판결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피고가 관리하는 매체를 통하여 방송할 작위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의 내용을 고지할 것을 구하는 것일 뿐 피고의 양심에 반하여 주관적 의사표명으로서 사과를 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반하지 아니한다.
【참조조문】
민법 제2조, 제390조, 제750조, 헌법 제21조, 제22조, 방송법 제2조 제4호, 제3조, 저작권법 제2조 제8호, 제10조, 제13조, 방송법 제2조 제4호, 제4조, 제30조의2, 제32조, 제45조 제1항 제4호, 헌법 제21조, 방송법 제5조, 민법 제764조, 저작권법 제95조, 헌법 제19조, 방송법 제41조
【전문】
【원고, 피항소인】
원고
【피고, 항소인】
한국방송공사
【원심판결】
제1심 서울지법 남부지원(1992.5.14. 선고 90가합1404 판결)
【주 문】
1. 원심판결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가. 피고는 이 판결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피고가 관리하는 제2텔레비전의 일요일 오후 10시 내지 11시 사이의 스테이션 브레이크에 다음 인용부 안에 기재된 내용을 구술로 방송하되, 그중 2개의 문단을 각 독립적인 프레임으로 하고 매 프레임을 각 30초 간으로 하여 1회 방송하라.
"본 방송국이 1989년 10월 29일 오후 7시 ‘21세기 강좌’에서 방송한 서울대학교 원고 교수의 ‘중민화의 길’이라는 강의프로그램은 원래 60분간 방송할 예정으로 녹화되었으나 지나친 편집으로 20분 간의 강의내용이 삭제된 채 40분 내용만 실제로 방송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본 방송사는 법원으로부터 위 20분 간의 강의내용의 삭제로 말미암아 원고 교수의 중민이론 중 21세기의 주역으로 등장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민의 개념, 역할 등의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게 되어 위 강연내용에 대한 원고 교수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였다는 내용의 패소판결을 선고받았으므로 위 판결에 의한 의무의 이행으로 위와 같이 고지합니다."
나.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1,2심 모두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3. 제1의 가.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KBS 텔레비전 채널 중 매주 일요일 오후 7시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도입부에 별지목록 제1항 기재와 같은 내용을 같은 목록 제2항 기재와 같은 방식으로 방송하라.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 유】
1. 사실관계
공성부분의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1호증의 6(내용증명),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1호증의 7, 9(각 중재조서), 원심증인 소외 1의 증언에 의해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 제1호증의 8(강의초록), 갑 제2호증의 1(녹화테이프), 같은 호증의 2(녹취서)의 기재와 위 증인과 증인 소외 2, 소외 3 및 당심증인 소외 4의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증인 소외 2, 소외 1의 일부증언은 이를 믿지 아니하고 달리 반증이 없다.
가. 원·피고간의 방송출연계약
원고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인데, 1980년 이후 대두되고 있는 사회변혁론과 관련하여 전진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신중산층, 근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층, 그리고 청년학생세대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른바,‘중민이론’을 주창하여 왔다.
피고 공사는 한국방송공사법(1972.12.30. 법률 제2418호)에 의해 설립된 정부 출자 공익법인으로서 국내외의 방송을 실시하고 방송문화의 보급과 이에 수반하는 사업을 행함으로써 공공복지의 증진, 사회정의의 실현, 국민의 기본권옹호, 교육혁신과 문화의 창달, 국민체육의 진흥 및 국제협력의 증진에 기여할 목적으로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을 실시하는 방송법인으로서 텔레비전방송은 교양정보채널의 제1텔레비전, 가족오락채널의 제2텔레비전, 교육채널의 제3텔레비전으로 구분방송하여 왔는데, 제3텔레비전 채널은 1990.12.27. 교육부 산하 교육개발원에 이관되었다.
피고 공사는 1989년 가을 텔레비전 프로그램 개편에 즈음하여 제3 텔레비전의 교양프로그램으로서 서기 2000년에 펼쳐질 우리 나라 사회 각 분야의 미래상을 조명하는 ‘KBS 21세기 강좌’을 신설하여 같은 해 10. 경부터 피고 공사는 제3텔레비전 방송을 통하여 매주 일요일 오후 7:00부터 8:00까지 1시간씩 방송하기로 하였다. 위 프로그램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사람씩 출연하여 그 전공분야의 시각에서 강좌형식으로 진행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이었다.
피고 공사는 그 일환으로 같은 해 10.14.피고 공사 교양국 제작 3부장이자 위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인 소외 2를 통하여 원고와의 사이에 원고가 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회학적 측면에서 본 서기 2000년대의 우리 나라 미래상에 대한 60분짜리 강연을 하기로 하는 방송출연계약을 체결하고 피고는 원고의 강연을 녹화제작하여 10.29.60분에 걸쳐 방송하기로 약정하였다.
나. 원고의 강좌내용
그에 따라 원고는 10.24. 피고 공사에서 약 63분 동안 ‘중민화의 길’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요지의 강연을 녹화하였다.
(1) 서 론
21세기를 앞둔 현재 선진국으로의 진입 등을 이루기 위하여 종래의 정부 지도력에 의한 사회조직에서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확립할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2) 21세기에 접근하는 방법
해방 이래 우리 나라는 국가가 중심이 되었는데 이를 관료적 권위주의로 표현할 수 있으며(관료적 권위주의의 일반적 특징을 지적하고-삭제 1), 우리 나라는 그중 부정적 측면이 많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근대화한 성공적인 관료적 권위주의에 해당한다. 성공한 관료주의의 국가들은 산업화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기존의 강압적 정치 사회체제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정체되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고(우리 나라도 사회의 체질개선 내지 체제변혁이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삭제 2), 미래사회의 주역을 둘러싼 경쟁모델로서 과거에 이미 주창되어 온 부르조아와 기층민중이라는 집단과 구별되는 이른바 중민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3) 21세기 주체세력의 분석
원고가 21세기 주체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중민의 개념에 포섭되는 계층은 자영업에 종사하는 구 중간계급과는 다른 광의의 화이트칼라 계층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신중간층, 노동자계급과는 다른 핵심공업에 종사하는 고학력의 진취적인 근대적 노동자, 청년학생세대들인데 이들의 고학력화 및 수적인 증가를 통계자료에 의하여 논증하고(학생청년세대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삭제 3), 위 각 집단을 중민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한다.
(4)중민의 성격 및 21세기 전망(원고의 강의초안에는 4,5,6장으로 나누어져 있음)
중민의 개념은 기층민중만을 의미하는 민중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계급분류에 의한 "중산층"과 중민의 개념상의 차이 및 중민의 역사주체화를 막는 장애와 그 극복방법을 주장-삭제 4)
(미래의 중심화의 이념축의 기반에 대하여 설명-삭제 5)
(5)결론(원고의 강의초안에는 7장으로 되어 있음)
역사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실천적인 능력에 의하여 만들어지는데(현시점에서 중민화의 길이 최선의 대안임을 강조-삭제 6),
다. 원고의 저작물에 대한 피고의 수정 및 방송
피고 공사는 1989.10.29. 오후 7:00부터 원고의 위 강연내용을 제3텔레비전에 방송함에 있어서 위 인정의 녹화내용 중 23분의 분량에 해당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삭제하고 나머지 부분만을 40분에 걸쳐 방송하였다.
(삭제 1)
관료적 권위주의는 ⓛ 지지기반이 상류층이고, ② 군, 정보기관 등 억압수단이 권력의 핵심이며, ③ 민중이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④ 권력의 정당성이 취약하며, ⑤ 경제적 분배구조가 악화되고, ⑥ 국민경제의 탈민족화, ⑦ 사회문제의 탈정치화 등의 특징이 있다.
(삭제 2)
우리 나라도 지배층의 신뢰가 하락하여 미래 사회의 주역에 대하여 부르조아 세력, 기층민중이라는 견해 등이 있으나 이와 다른 "중민"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삭제 3)
청년학생세대는 고유한 민중성으로 독특한 민중문화를 형성하면서 사회변혁의 전위로서 활동하여 1987년 6월 항쟁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고 기성 사회에 진입하여 우리 사회의 신중산층에 민중성을 제공하여 미래의 핵심적 변수를 차지하고 있다.
(삭제 4)
21세기 전망에서 기존의 중산층은 21세기에는 권력연합에 포섭되는 중산층과 민중연합에 포섭되는 중산층으로 분화되는데, 그중 변화를 요구하며 젊고 근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민중연합에 포섭되는 중산층인 중민이 역사의 주인이다. 우리 사회에 있어 이들 중민의 전진을 막는 장애요소는 ① 관료적 권위주의 체질의 국가기구, ② 군대의 역할 등 구시대의 유산, ③ 상류 특권층의 기득권 집착, 정당의 지역화, 사당화 등 왜곡된 정당구조 등이고 그 극복방법으로는 ① 중민구성 집단간의 연대 확보, ② 기층민중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연계, ③새로운 정치문화, 정당구조의 확립 등이다.
(삭제 5)
중민은 민주주의 기본에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통합하고 통일을 위한 민족주의를 지켜야 하는 중심화의 이념축의 기반을 확립해야 한다.
(삭제 6)
중민화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기득권 세력이 양보하지 않고 민중의 저항을 억압하는 파시즘체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2. 원고의 청구원인
가. 원고의 주장
원고는 이 사건 청구원인으로서 피고는 원고가 연술하여 제작한 이 사건 강좌프로그램을 60분 간 방송하기로 약정하였음에도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원고의 강좌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과 결론 등을 자의적으로 삭제방송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볼 때 강의의 균형과 체계성이 심각히 훼손되고 강좌의 중요한 메시지가 희석되거나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원고가 연술한 이 사건 어문저작물의 동일성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원고의 중민이론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왜곡된 형태로 소개된 결과 논리의 비약과 핵심내용의 부재로 인해 중민이론가로서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주장한다.
나. 출연계약과 신의성실의 원칙
살피건대 원·피고 간에 이루어진 이 사건 출연계약은 원고는 그의 정신적 저작내용을 정리하여 연술하고 피고는 그에 대한 대가로서 일정액의 출연료를 지급함과 동시에 그의 방송시설과 기술인력을 이용하여 방송물을 제작하고 그 제작물을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채널을 통하여 방송할 의무를 부담하는 이른바 유상 쌍무계약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방송출연계약은 당사자 일반의 일회적 급부로서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상호간에 긴밀한 협조가 요청되는 계약이고, 그러한 계약일수록 계약의 원만한 이행을 위해 상호협력의무를 부담한다. 즉, 제작자인 피고 공사로서는 제작하게 될 프로그램의 편성 의도와 제작목적 및 주제, 출연계약의 상대방이 제작출연에 기여하게 될 형태(인터뷰 또는 토론)와 내용, 생방송되는가 또는 녹화방송되는가의 여부, 녹화방송시에는 프로그램의 편집 여부와 삭제와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취지 및 정도, 프로그램 내에서 출연자의 순번, 비중, 주어질 질문의 내용, 범위 등을 소상히 설명하고 출연자로 하여금 예상하지 못한 취급으로 기만당하였다고 느끼게 하여서는 아니될 신의칙상의 의무를 부담하며, 출연자인 원고로서도 녹화방송임을 예상하였고 녹화된 부분 중 적어도 기술적 조정이 필요하리란 것은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고, 피고측으로부터 방송내용에 관해 법적 책임이 발생할 부분이 있어 방송에 부적합한 내용의 삭제 또는 수정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그에 응하여 수정편집에 적극협력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신의칙상의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이 사건 원고의 저작물은 피고의 요청으로 제작되었고 저작권 성립과정에서부터 피고측의 기여가 컸던 점 및 피고는 공공의 소유라고 생각되는 유한한 전파를 사용하는 공적 매체로서 법령상 그 편성과 제작에 있어서 다양성의 요청과 공정성을 준수할 의무가 있음에 비추어 보면 비록 원고의 이 사건 저작물이 원고의 개인적인 학자로서의 소신을 피력한 저작물이고 원고가 사계의 전문가로서 학문적 권위를 향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공공매체를 타고 국민에게 공표되는 경우 원고의 저작자로서의 개인적인 동일성유지권이 완전히 관철될 것을 요구할 수는 없고, 매체를 관리하는 자의 협조 요청에 응하여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원. 피고의 이 사건 출연계약을 둘러싼 신의칙상의 의무위반정도는 원고에게 부여될 구제수단의 종류, 정도 및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참작하기로 한다.
다. 불완전이행 및 불법행위의 성립
제1의 나.항에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피고 공사와의 방송출연계약에 따라 학술의 범위에 속하는 이 사건 강연물로서 녹화된 위 인정의 내용에 대하여 저작권을 갖게 되었으며 저작권자로서 그 저작물의 내용에 대하여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위 제1의 나. 항에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피고는 60분 간 방송하기로 한 프로그램을 그 녹화내용대로 방송하지 아니하고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을 일관성 없이 23분 분량의 내용을 임의로 삭제수정하여 40분 간 방송함으로써 원고와의 위 출연계약을 적극적으로 침해함과 동시에 배타적 지배권으로서 대세적 효력을 갖는 원고는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였다 할 것이므로 피고는 그 고의에 의한 불완전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전보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라. 명예훼손이 있었는가?
원고는 이미 여러 논문과 강의, 방송,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이른바 중민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발표하여 학계나 사회로부터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학문적 업적도 인정받아 왔는데, 원고의 강연내용 중 중민이론의 핵심 및 결론부분이 일방적으로 삭제됨으로써 강의의 흐름이 중단되고 논리의 비약이 심했으며 부분적으로는 원고의 의사가 왜곡되어 시청자에게 전달되었고, 그로 인하여 원고의 학자적 권위와 명예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피고가 원고의 저작내용을 일부 삭제수정하여 방송한 행위는 원고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손상시켰다기보다는 원고가 창도하여 꾸준히 연구 발표해 온 이른바 중민이론의 이론적인 체계성과 동일성을 손상케 하였고, 나아가 원고가 자기의 이론에 대하여 갖는 신념과 확신을 훼손하여 결국 학자로서 또는 저술가로서 원고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고, 피고의 위와 같은 행위로 원고의 사회적 평가에 다소간의 손상이 야기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원고의 저작인격권의 침해에 흡수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3. 피고의 항변
저작권법 제13조는 저작자는 그 저작물의 내용, 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지나(동조 제1항), 다만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에 비추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변경에 대하여는 그것이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이 아닌 한, 이의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바(동조 제2항 제3호), 이 사건 제작된 프로그램의 성질, 이용의 목적 및 형태에 비추어 피고의 위 삭제변경행위가 부득이한 것이었는가의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가. 방송기술상 불가피한 제한이라는 항변
이에 대하여 피고는 먼저 위‘KBS 21세기 강좌’는 그 방송시간이 60분으로 짜여 있었으나 그 속에서 순수한 원고의 강연 내용 외에 5분 내지 6분 정도가 소요되는 스테이션 브레이크(Station Break,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방송주체를 알리는 것), 스포트(Spot, 막간을 이용한 짧은 내용의 고지방송), 다음 방송예고, 프로그램 전후의 타이틀 백(Title Back) 등이 포함되어 결국 순수한 원고의 이 사건 강좌프로그램의 방송시간은 54분 정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는데, 원고의 위 강연은 제한시간을 초과하는 분량이어서 부득이 그중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건대 이 법원이 믿지 아니하는 증인 소외 2의 일부 증언 이외에는 60분 분량으로 편성된 이 사건 강좌프로그램의 순수한 방송시간이 스테이션 브레이크 방송 등으로 인하여 피고 주장과 같이 54 내지 55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실제 방송된 내용 중 스테이션 브레이크는 1분에 불과하였다), 가사 그와 같은 스테이션 브레이크 방송 등으로 인하여 이 사건 강좌의 순수한 방송시간이 피고 주장과 같이 54 내지 55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방송출연계약 당시나 이 사건 강좌 녹화시 이를 원고에게 고지하고 이 사건 강좌 내용을 54 내지 55분 분량으로 하여 줄 것을 요구하여 그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그러한 고지도 없이 원고의 위 강연을 63분에 걸쳐 녹화한 후 임의로 23분에 걸친 강좌내용을 삭제할 수는 없다 할 것이므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삭제수정이 방송의 자유로서 편성권의 행사범위에 속한다는 주장
피고는 원고의 이 사건 강좌를 녹화한 후 이를 편집함에 있어 그 내용의 일부를 삭제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방송운영의 주체인 피고가 고유한 권리로서 보유하는 편성권에 기한 것이며, 피고 공사가 방송법 제3조에 따라 편성권의 행사로서 행한 위와 같은 삭제는 정당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살피건대 방송법 제3조는 방송편성의 자유는 보장되고, 누구도 방송순서의 편성, 제작이나 방송국의 운영에 대하여 간섭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이른바 헌법상 언론자유조항에 근거한 방송의 자유 중 가장 핵심적인 편성의 자유를 법률로써 구체화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1)헌법상 방송의 자유와 편성권
원래 헌법상 방송의 자유란 방송의 편성 및 운영 등 방송주체의 존립과 활동이 국가권력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함을 의미하는 데 그 주안점이 있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국가권력 이외에 방송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회 제 세력에 대하여도 그 효력을 주장할 수 있다고 하는 데 학설이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에서 방송의 자유는 방송의 설립 및 조직과 운영 편성 등 방송활동 일체에 관한 여러 국면에서 방송의 운영주체 및 그 종사원 등 관계자가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되는 한편 자유민주주의 헌법상 국민의사 결정의 원리에 따라 다양성원칙과 공정성의무에 의해 제한되는 제도적 자유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체제 아래서 제도적 자유로 이해되는 방송의 자유 내지 편성권의 주체는 전파법상 허가를 받고 방송을 행하는 방송국을 경영하는 방송법인(전파법 제4조, 방송법 제2조 제4호)이라 할 것이고, 방송법인이 이러한 방송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특히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을 위요한 제 권한은 법령상 방송법인을 대외적으로 대표하고 대내적으로 업무를 통괄하는 방송법인의 기관이 담당한다고 할 것이다(이와 같이 편성권이란 헌법상 보장되는 방송의 자유의 한 가지 개념으로서 보아야 할 것이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방송 등 언론에 대한 통제경향에 대항하여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주로 언론인들에 의해 주창되어 온 정치적 항의적 개념으로 논의되게 되었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편집권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논쟁으로 진전되어 언론계 또는 특정 언론기업의 내부에서 기업주와 기자그룹 간의 논쟁을 유발하게 된 바 있었으나, 이는 이른바 방송의 내적 자유에 관한 문제로서 이 사건과는 무관하므로 상술을 요하지 않는다).
(2)개인의 표현의 자유 및 저작권과 방송사의 편성권 간의 관계
이와 같이 피고 공사가 방송법인으로서 편성권을 가지며 그것을 국가 이외의 제3자에 대해서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편성권을 행사하여 특정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내부적 계획을 세운 후 방송사의 소속원이 아닌 제3자와 출연계약을 맺게 된 이 사건의 경우에는 그 당사자의 일방인 피고 공사는 그 사법상의 출연계약에 특별히 약정한 바가 없다면 그 계약의 내용에 따라 제작하고 방송할 의무를 부담할 뿐 피고가 갖는 편성권이 제3자인 원고의 저작권을 임의로 침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주장 자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다. 위법한 것이어서 삭제수정이 정당하다는 주장
(1) 피고의 주장
피고는 방송프로그램의 편집, 편성권은 방송사에 있을 뿐 아니라 방송법 제5조에 의하면 방송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며 사회정의의 전파, 국민의 기본권 옹호 및 국제친선의 증진에 기여하여야 하고 계층 간, 지역 간의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인데, 원고는 위 강연에서 관료적 권위주의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우리 나라에는 전문 억압집단이 있고 그 예로 군, 안기부, 정보기관을 거론하는 한편 학생운동의 전위적 선도적 역할과 그 민중적 성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급진적 학생운동을 찬양 고무한 부분이 있었고, 한반도의 통일정책에 관하여 남북한 정책을 비교설명하면서 남한의 통일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한 부분이 있어 북한에 이용당할 우려가 있었고, 새로운 정당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 당시 새로이 태동하고 있는 민중을 대변할 정당에 기대되는 바가 크다는 요지 등이 들어 있어서 당시의 특정 혁신정당을 지지 선전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방송하는 경우 피고 공사가 방송법 제5조 제1항, 제3항에 위반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송을 하지 않거나 특정한 집단 또는 정당을 옹호하거나 비판한다는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었고, 공공이익에 반하게 되므로 피고가 위와 같은 녹화내용을 일부 삭제편집하여 방송한 것은 방송의 공공성요청에 비추어 적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매체의 관리자가 방송내용을 심사할 수 있는 여부와 정도는 그 위법사항이 범죄 또는 불법행위를 구성하는가의 여부 또는 단순한 편성상의 원칙규범을 위반한 것인가의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제3자가 관여하게 되는 프로그램의 성질과 형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음에 순차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 매체관리자로서 피고의 지위
피고 공사는 매체의 관리자인 방송법인으로서 방송내용을 심사하고 수정할 권한을 갖는다는 피 고의 위와 같은 주장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우선 방송한 내용에 대하여 방송법인이 어떠한 법적인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방송매체를 관리하는 방송법인은 그 운영 방송채널을 통하여 송출한 내용전반에 관하여 관리자로서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구체적인 경우에 프로그램의 종류와 제작형태에 따라서 법적인 책임의 귀속과 부담의 정도는 달라진다.
방송되는 모든 내용에 대하여 방송법인에게 법적인 책임을 지운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방송의 매체로서의 전파기능을 저해하고 방송을 통한 언론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매체가 단지 타인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 불과한 순수한 채널 내지 의견의 시장으로서만 기능하는 경우, 예컨대 국회의 회의나 기타 공개토론 등 공적 행사를 생중계하는 경우에는 피고가 방송내용을 검토하여 이를 수정한다거나 삭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거기에서 표현된 제3자의 표현내용에 대하여 방송사에서 책임을 지우게 되는 경우란 생각할 수 없다.
방송사 소속 임·직원의 표현내용이 법적으로 문제되는 경우에 이를 수정 삭제할 권한이 방송법인의 기관에게 인정되는 것은 물론이다. 방송국의 경영자인 방송법인은 형사상의 처벌법규에 위반하는 표현내용을 방송하거나 그 방송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을 침해한 경우 그 실제상의 행위자와 함께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됨이 원칙이라 할 것이고(전파법 제77조, 제79조, 제80조, 제87조 및 방송법 제30조의2, 제32조, 제45조 제1항 제4호 참조), 이러한 법리의 당연한 귀결로서 방송법인은 편성과 방송을 행함에 있어서 방송내용에 관하여 심사할 권한과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사외의 제3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이나 저명한 인사 등이 스스로 출연하여 일정 주제에 관하여 개인적 소견을 진술하는 프로그램에 있어서 그 내용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원칙상 제작자 또는 원진술자인 제3자에 귀속되고 매체의 관리자인 방송공사가 위 제3자의 표현행위로 인해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외부의 제3자가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방송법인이 편집제작하여 방송한 진술내용이 예컨대 명예훼손, 음란 또는 내란선동 등 다른 법익을 침해하는 것인 경우에 이를 전파한 방송법인은 그것이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면책될 수는 없다. 이 경우에도 방송법인은 그 방송내용으로 인하여 방송법인에게 법적 책임이 부과될 사항을 심사하고 이를 배제할 수 있는 일반적인 관리자의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사건 원고가 연술한 강연내용에 관하여 보면 거기에 범죄가 될 내용이라든가 불법행위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음을 인정할 증거는 없으니 이를 이유로 삭제 또는 수정할 수는 없었다 할 것이다(앞서 본 피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의 강좌내용 중 문제가 된 것은 한국의 정치적 장래의 전망과 관련하여 특정 계층 내지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을 뿐 그 자체가 어떠한 형벌법규에 위반된다거나 또는 불법행위로 인해 피고 공사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는 주장이 없다).
(3) 방송법상 편성규범의 법적 의의
다음 원고의 강연내용이 방송법상의 공정성원칙 등 편성규범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였다는 피고 주장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우선 방송법상 편성규범의 법적 성질 및 효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송법 제5조는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며, 사회정의의 전파, 국민의 기본권 옹호 및 국제친선의 증진에 기여하여야 하고 특정한 정당, 집단, 이익, 신념 또는 사상을 지지 또는 옹호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것은 방송이 공공의 소유라고 생각되는 유한한 자원인 전파를 사용하여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불가결한 여론의 형성에 기여하는 중대한 기능에 비추어 방송에 부과되는 헌법적인 요청을 법률로써 명문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공정성의 원칙이란 방송법인이 방송할 사항을 편성함에 있어서는 인간의 존엄존중이라는 헌법상의 기본적 합의를 토대로 한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구성원의 의견과 이익이 다양함을 전제로 하여 각계각층의 관심사 중 논란되는 현안의 쟁점을 주제로 선택하고 그에 관련되는 모든 이해관계의 입장이 실제상의 중요성에 상응하도록 합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질 것을 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방송법 제5조 제1항에 규정된 이러한 원칙은 의견이 대립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프로그램을 편성 또는 제작함에 있어서 적용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여론형성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방송법 제4조 제2항 참조) 방송법인은 프로그램편성에 있어서 이렇게 논란되는 공적 쟁점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편성해야 할 뿐 아니라 방송법인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주제에 관하여는 위에서 본 공정성원칙에 따라 사회 내의 찬반입장 또는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실제상의 비중에 따라 의견이 표현되도록 프로그램을 형성하여야 하는 것인데, 이러한 공정성요건을 충족하려면 다수의 견해가 동시에 주장되고 반박됨으로써 토론이 이루어지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바람직하고, 반박과 토론이 있을 수 없는 개인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부득이 개인주장프로그램의 형식을 취하려면 여러 입장의 다양한 견해를 가진 다수 인사의 의견을 실제적 중요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함께 또는 시리즈의 형태로 편성하는 방법으로 다양성과 공정성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성원칙 등 방송법이 규정하는 여러 가지 편성규범은 방송주체가 편성권을 행함에 있어서 헌법상 요청되는 원칙을 명문화한 것으로서 방송주체인 방송법인 및 그의 편성권행사를 보조하는 소속 임·직원은 편성을 행함에 있어서 이러한 법적인 기준에 구속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러한 방송법인의 의무는 국민일반에 대한 공법상의 의무로서 방송위원회 및 국회 등 감독기관의 감독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방송법상 편성과 제작에 있어서 일응의 기준과 지침을 제시하는 추상적인 편성규범은 방송법인 및 그 소속 임·직원을 수명자로 하여 명령된 규정일 뿐 헌법상 의견표현의 자유를 보호받는 원고 개인이 이를 지킬 의무가 있다 할 수는 없으므로 피고 공사는 이러한 조항들을 내세워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은 개인주장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수정 삭제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만약 피고가 이러한 조항을 내세워 방송에 참여하는 모든 제3자의 표현내용을 검열하고 수정할 수 있다면 의견의 시장으로서 자유롭고 공개적인 토론에 의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방송의 공적 과업은 저해되고, 방송을 통한 정보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일실되고 말 것이다.
(4) 이 사건 원고 출연프로그램의 성격
피고가 제작한 원고의 이 사건 강연프로그램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장래에 사회계층 중 그 중심세력의 소재와 그 역할에 관한 원고 개인으로서의 견해를 밝히는 프로그램이어서 이른바 개인적 관점의 프로그램이라 할 것인바, 위에서 확정한 그 내용에 의하면 그 주제는 우리 사회의 장래에 대한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음이 명백하고, 피고가 기획한 위 21세기의 한국이라고 하는 시리즈 내에 위 원고의 주장에 반대되는 입장의 의견이 표현된 프로그램이 별도로 편성되었는가의 여부는 기록상 명백하지 아니하다.
그러나 피고가 일단 개인주장프로그램의 형식으로 이 사건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하고 원고와 프로그램의 제작 및 방송계약을 맺은 이상, 그리고 사전에 또는 계약에 즈음하여 피고의 제작의도와 편집에 의한 수정삭제권을 유보하지 않은 이상, 설사 피고 공사가 편성권을 행사한 결과 제작된 원고의 강연내용이 논란되는 공적 쟁점문제에 관하여 피고 주장과 같이 편향된 주장을 담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종전 그의 주장과 학설내용에 비추어 방송의 중립성을 저해할 내용으로 판단된다면 애당초부터 편성을 하지 않던가, 아니면 원고의 주장내용을 반박 또는 대응하는 타 학자의 의견이 제시될 수 있도록 별도의 프로그램을 시리즈 내에 편성할 수 있을 뿐 주관적인 의견의 제시가 특징인 이 사건 원고의 개인주장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수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피고가 방송법이 규정하는 편성원칙에 어긋나 이를 삭제하였다는 부분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다른 법익을 침해하여 불법행위나 범죄행위를 구성한다고 인정할 자료는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받아들일 수 없다.
라. 원고가 수정에 동의했다는 주장
피고 공사는 이 사건 강좌를 녹화한 후 이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원고에게 그 녹화내용 중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일부 내용을 삭제하여 방송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원고도 이에 동의하였으며, 설사 원고가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소외 2가 편집에 앞서 사전에 원고에게 위와 같은 문제점에 관하여 지적하고 편집에 대한 양해와 함께 공동으로 편집할 것을 2차례에 걸쳐 제의하였으나 원고는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면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응답하였는바, 이러한 정황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결국 삭제 편집에 관하여 묵시적으로 승낙한 것이라는 취지로 항변한다.
그러나 이 법원이 믿지 아니하는 갑 제1호증의 7,9의 각 기재 및 증인 소외 2의 증언 이외에는 원고가 피고의 수정행위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 공사의 제작 담당 소외 2는 이 사건 프로그램을 녹화한 후 10.27. 원고에게 전화로 일부 삭제편집이 불가피함을 고하고 원고의 양해를 구했으나 원고는 이튿날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면서 30분에 걸쳐 통화한 사실이 인정되나, 원고는 위 소외 2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피고가 임의 수정할 때에는 그 법적인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표시한 사실이 인정될 뿐이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어느 것이나 이유 없다.
4. 결 론
가. 불완전이행과 불법행위의 효과
위에서 확정한 사실에 의하면 피고는 60분 간 방송하기로 한 프로그램을 그 녹화내용대로 방송하지 아니하고 임의적으로 삭제수정하여 40분 간 방송함으로써 적극적으로 계약을 침해함과 동시에 배타적 지배권으로서 대세적 효력을 갖는 원고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였다 할 것이므로 피고는 그 고의에 의한 불완전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전보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채무의 본지에 좇지 않은 불완전한 이행이 이루어진 경우 채권자는 다시 완전한 이행을 구할 권리가 있음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손해가 있는 경우 금전으로 재산적 및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구할 수 있음은 물론이지만, 원고는 이러한 구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피고가 그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의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법원으로부터 패소판결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피고가 관리하는 매체를 통하여 방송할 작위의무의 이행을 구하고 있으므로 원고의 청구의 당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나. 부적법한 청구라는 피고의 주장에 대한 판단
이에 대하여 피고는 먼저 원고의 이 사건 청구가 사죄광고를 구하는 것이어서 피고 공사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부적법하다고 항변하나,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피고 공사가 원고의 저작물에 대한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여 이 법원으로부터 패소판결을 받았다는 객관적 사실의 내용을 피고 공사의 텔레비전에 방송하여 줄 것을 구하는 것이지 피고 공사에 대하여 그의 양심에 반하여 원고에게 동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한 주관적 의사표명으로서 사과를 구하는 것이 아님이 청구취지 자체에 의하여 명백하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다. 인격권침해시의 구제수단
불법행위에 의해 인격권이 침해되는 경우 현행법상으로는 금전배상의 원칙만이 인정될 뿐 이른바 원상회복청구권 내지 이른바 만족청구권은 명문으로 규정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격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명예가 훼손된 경우 현행 민법(제764조)은 법원이 명예회복을 위한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것을 보거나, 지배적인 학설이 일반적 인격권에 대하여 배타적 지배권으로서 대세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에 비추어 보더라도 법원은 피해자가 바라는 경우 금전으로 손해배상을 명하는 이외에 원상의 회복을 위한 조치 또는 피해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발전하는 법질서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해구제수단을 다양화하여 형평을 기하는 데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저작권법은 저작권 그 밖의 이 법에 의해 보호되는 권리를 가진 자는 그 권리를 침해하는 자에 대하여 침해의 정지를 청구할 수 있으며 그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하여 침해의 예방 또는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고(동법 제91조 제1항), 고의 또는 과실로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는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동법
제95조).
라. 이 사건에서 적절한 원고의 구제수단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피해자는 원상회복이나 만족을 위한 조치를 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인바, 이 사건에서 원고가 청구취지로 구하는 바에 대하여 원심은 2차례에 걸쳐 피고가 관리하는 제2 텔레비전 채널을 통하여 이 사건 소송에서 패소한 사실을 각 1분 간 고지방송할 것을 명하고 있다. 이것은 원심이 원고에게 이른바 만족청구권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인용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원심의 이러한 조치는 기본적으로 옳았다고 보이나, 그 인용의 정도에 있어서는 다음에 설시하는 여러 정황에 비추어 필요 이상의 만족을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즉, 이 사건 방송출연계약의 이행을 둘러싼 원·피고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신의칙위반의 정도, 이 사건 강좌내용의 일부 삭제의 경위 및 정도, 피고는 방송내용의 보존의무(방송법 제36조)를 위반하여 분쟁이 제기된 이 사건 녹화테이프의 편집 이전의 테이프를 말소 폐기한 사실,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기일에서 중재부장은 피고 공사로 하여금 재녹화하여 방송할 것을 권고하고 피고의 대리인도 이에 응할 뜻을 표시하였으나 원고는 피고 공사측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면서 재녹화의 제의를 거부한 사실, 원고는 피고의 일방적 삭제로 지성인으로서 감내키 어려운 수모를 느꼈다고 진술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금전배상을 구하지 아니하고 청구 취지와 같은 판결을 구하고 있는 사실, 이 사건 원고의 강연프로그램이 방송된 요일과 시각 및 이 사건 방송 후 피고 공사 제3텔레비전 채널이 교육개발원의 교육방송으로 전환되고 제1 및 제2텔레비전 채널만 보유하고 있는 점, 이 사건 프로그램 방송 당시 교육채널이었던 제3텔레비전의 시청률과 현행 제2 텔레비전의 같은 시간대의 시청률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볼 때, 피고 공사는 그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원고에게 그의 만족을 위하여 피고 공사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제2 텔레비전 일요일 오후 10시 내지 11시 사이의 스테이션 브레이크에 주문기재와 같은 내용을 그 기재와 같은 방식으로 방송하도록 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된다.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원심판결은 이와 일부 결론을 달리하여 그 범위 내에서 부당하므로 당원은 피고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주문과 같이 변경하기로 하고,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지생략]